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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강서구 '카페뮤제오 아울렛'

by 집너구리 2021. 4. 25.

한국의 커피 마니아들이라면 처음 커피 취미를 시작할 때 한 번쯤은 네이버 쇼핑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름이 있다. 다양한 커피 용품들(살짝 마니악한 것들까지)을 총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카페뮤제오'가 그것이다. 이름도 생소한 나폴리타나 포트바끼 에스프레소 추출기 같은 녀석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몇 안 되는 커피용품 전문 회사인데, 며칠 전에 염창동에서 운영하던 쇼룸의 문을 닫는다는 공지와 함께 쇼룸 자리에서 아울렛 형식으로 예약제 할인판매를 진행한다는 공지가 떴다. 서울 시내를 다 뒤집어엎어도 커피 전문 용품점이라고는 손에 꼽을 만큼밖에 없는 상황에서 몇 안 되는 오프라인 쇼룸이 문을 닫는다니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언제 다시 쇼룸을 열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여, 이런 기회에 한번 방문해서 내 지갑의 돈으로 보탬이라도 해 드리겠다는(그리고 저렴한 가격에 뭔가 많이 쟁여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까지 더한) 마음으로 토요일 오후 방문 예약을 신청했다.

 

약 1시간이 못 되는 시간 동안 한정된 인원만을 입장시킨다. QR 코드 체크인과 체온 측정은 물론, 손소독과 장갑 착용까지 요청받는다.

대략 열댓 명쯤 되는 인원이 토요일 오후 4시 방문객의 전부였다. 매장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최대한 인원을 제한해 받는 듯했다. 줄을 서서 체온 측정을 한 뒤 손 소독을 하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채로 기다리면, 정시가 되기 직전쯤에 입장할 수 있도록 안내를 받는다. 직원들이 쇼핑용 장바구니를 건네 주면, 이걸 받아서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동행자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별도로 예약을 해야 같이 입장할 수 있고, 선물용 쇼핑백이나 부직포 가방은 준비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물건을 담아 갈 수 있도록 자기 가방을 준비해 올 것을 요청받는다. 나도 맨날 장 보러 갈 때 쓰는 배낭과 만일에 대비한 장바구니 한 개를 가져갔다.

 

제법 넓은 공간 안에는 한가운데 서너 개의 큰 테이블이 놓여 있고, 벽으로는 진열 선반이 준비되어 있다. 원두와 드립백 등의 기본적인 물품들은 물론이고, 회사에서 테스트용으로 썼거나 반품받았지만 테스트 결과 사용에 큰 제약이 없는 제품들 등이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물론 새 제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새 제품들의 가격 또한 파격적으로 낮아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여기서 수십만 원은 가뿐하게 쓰고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원두와 드립백.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커피용 각설탕도 있었다. 텀블러도 다수 준비돼 있다.
한가운데에 있는 테이블에는 테스트용으로 쓰거나 반품받았지만 큰 이상이 없는 제품들이 싼 값에 놓여 있다.
예쁜 찻잔과 모카포트들도 낮은 가격에 전시되어 있다. 모카포트 덕후 회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과연 인터넷 쇼핑몰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답게, 이제까지 다녀 봤던 커피용품 전문점들 가운데 가장 다양한 품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휴대용 에스프레소 메이커인 나노프레소나 레버프레소는 물론이고, 다양한 종류의 그라인더와 드리퍼, 도기제 찻잔 등도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자타가 공인하는 모카포트 덕후 회사(?)의 이미지답게, 비알레띠 사의 모카포트 라인업 대부분을 갖다 놓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모카포트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비알레띠뿐만 아니라 지안니니, 일사 등의 스테인리스 모카포트, 심지어는 도자기 회사 안캅의 제품들까지도 상당히 낮은 가격에 전시되어 있었다. 눈이 반쯤 뒤집혀서 안캅에서 나온 모카포트와 데미타스 세트를 주워담고 나서 잠깐 정신이 든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뭔가 궁금한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커피 초심자로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점원들이 여기저기에 상주하면서 소비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최대한 열심히 대답해 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기가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 질문을 받더라도,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거나 자기보다 더 잘 아는 다른 점원을 불러와 설명해 주는 식으로 상당히 열의 있게 소비자의 궁금증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저쪽에서 그라인더에 대해 날의 종류와 용도에 따른 용법까지 열심히 설명해 주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나폴리타나 포트의 사용법과 일반적인 모카포트와의 차이점에 대해서까지 꼼꼼하게 알려 주는 직원이 이쪽에 있는 식이다. 다들 눈밖에 안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의 눈과 태도에서 엿보이는 커피와 차에 대한 열정만큼은 정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덕분에 벼르고 있던 질문 몇 가지에 대한 답을 점원들에게서 상당히 깊이 있게 얻을 수 있어 참 고마웠다.

 

정신없이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4시 40분쯤이 되니 마감 시간이 다가왔음을 점원이 소비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부랴부랴 마지막으로 살 것들을 주워담아 계산대로 향했다. 몇 가지 사지 못한 것들이 있어(눈독을 들였지만 다른 사람들이 벌써 채갔기 때문이다) 아쉽긴 했는데, 구매 목록을 보고 나니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거의 20만 원 정도를 쓴 것 같다! 사고 싶은 것들을 다 샀다면 더 출혈이 컸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매장을 나와서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강 건너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강공원을 자전거로 지나가야 했는데, 새삼스레 한강이 정말 크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독 맑고 따뜻한 날씨 덕분에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페달을 밟았다.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등에는 뭔가 많이 실려 뿌듯한 느낌이었다.

 

앗... 아아...
양화 한강공원을 달린다. 이렇게 맑고 푸른 하늘은 오랜만이다.
오늘 산 물건들.

집에 와서 사 온 물건들을 정리해 보았다. 아내를 위한 유기농 캐모마일 티, 카페뮤제오의 블렌딩 원두 두 팩, 평소에는 비싸서 엄두도 못 낼 안캅 사의 모카포트와 데미타스 세트, 그리고 보덤의 가정용 그라인더를 업어오는 데 성공했다. 안캅 모카포트와 보덤 그라인더는 1회 사용한 뒤 전시해 놓은 물건이라 거의 반값 수준으로 팔고 있던 것들이었기에, 나로서는 새것이나 다름없는 물건을 값싸게 구할 수 있어서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렛을 언제까지 운영할지는 모르겠지만, 커피 마니아로서 기회가 된다면 닫기 전에 한 번쯤 다녀오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