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근처에 산다는 것은,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온갖 매력적인 가게들이 지척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다른 동네라면 찾기 어려울 수 있는 독특한 가게들이나 숨겨진 맛집들을 찾아내는 경험은 마치 여름 계곡에서 돌을 들춰 다슬기를 찾아내는 듯한 즐거움이기에 마련이다. 결혼하고서 이 동네에서만 줄곧 살아온 덕에 이제는 슬슬 단골이라고 자부할 만한 곳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 중 한 곳이 '써스데이 스터핑'이다.
써스데이 스터핑은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연희동 골목에서도 사뭇 찾기 어려운 곳에 있다. 이연복 셰프의 가게로 유명한 '목란'을 지나 어린이놀이터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얼핏 봐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나름대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작은 입간판이 도로에 세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입간판이 서 있는 날이면 영업 시간에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기본적으로 영업하지만, 사장님 부부가 강연이나 세미나 등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가게를 닫는 경우도 가끔씩 있기 때문이다.
써스데이 스터핑을 처음 찾아낸 것은 아내였다. 평소 맛집 검색이 취미인 아내가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발견했는데, 집에서 가까운 동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산책삼아 한번 다녀온 것이다. 이때 가게에서 사먹은 햄 샌드위치의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가히 이제까지 먹어 본 샌드위치 중의 최강이라고 할까. 질 좋은 가공육만으로 이렇게나 훌륭한 샌드위치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 이후 공교롭게도 재택근무가 길게 이어지면서 점심 시간이나 퇴근 후에 종종 이곳에 들러 가공육을 사다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아침에 먹는 일들이 많아졌다. 사장님 부부 입장에서도 며칠에 한 번씩 점심에 찾아오는 시꺼먼 옷을 입은 젊은 남자 손님은 이채로웠던 모양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기억하시는 것 같았다. 맛있는 식재료 가게의 단골이 된다는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처음인지라 무척 각별한 가게이다.
반지하로 되어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큰 창을 내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식사 공간과 카운터가 눈에 들어온다. 카운터 왼쪽의 디스플레이에는 그날 나와서 팔리고 있는 가공육과 각종 소스류들이 전시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이 집의 식품류는 무엇 하나 빠짐없이 다들 너무 맛있기 때문에, 늘 가게에 올 때마다 깊은 고민을 하기 일쑤다. 이번에 갔을 때에는 소시지류와 깜빠뉴 종류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생햄은 오리 프로슈토와 프로슈토 꼬토 정도가 준비되어 있었다. 매번 갈 때마다 준비되어 있는 가공육의 종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시지와 살라미류, 특히 샌드위치에 넣기 좋은 모르타델라는 거의 항상 준비되어 있는 편이다.
이곳의 좋은 점을 하나 더 들자면, 이름은 자주 들어 봤지만 쉽게 구하기 어려운 가공육들을 상대적으로 찾기 쉽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오리 프로슈토. '프로슈토'라고 하면 주로 돼지고기로 만든 이탈리아식 생햄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집은 독특하게도 오리고기로 만든 프로슈토를 판다. 무척 단단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에, 오리 특유의 고소한 기름기가 더해져 아무리 먹어도 잘 물리지 않는다. 돼지 목살과 볼살로 만드는 염장육인 '관찰레'도 있다. 이탈리아식 정통 까르보나라에는 경성치즈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와 이 관찰레를 쓰는데, 볼살이라는 부위가 워낙 잘 나오지 않는 부위인 탓에 한국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지만 이 곳에서는 비교적 자주 구할 수 있다. 덜 짜서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는 '프로슈토 꼬토'도 샌드위치용 가공육을 찾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녀석이다. 부부 사장님들이 워낙 도전정신이 강하시다 보니, 때로는 이름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가공육을 시험삼아 만들어서 시식용으로 내어놓으시는 경우도 있다. 언제 어떤 새로운 고기가 나와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나름대로 기대감이 생겨난다.
비교적 오래 전부터 인터넷 판매를 진행해 오시긴 하셨지만, 최근 들어 이곳의 소스류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아예 소스 브랜드를 새로 만드셨다고 한다. 'PIP & PITH'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소스를 팔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철에 따라 나오는 소스들이 조금씩 다르다. 요즈음은 바질페스토와 토마토 사과 처트니를 많이 포장해 두고 계시다. 가끔씩 테스트용으로 다양한 콤포트를 만들어서 파는 경우도 있는데, 먹어본 것들이 모두 퍽 훌륭했던 기억이다. 특히 베이컨 잼(베이컨을 잼으로 만든다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법 풀드포크 느낌이 나고 맛있다!), 사과 콤포트 등이 맛있었는데, 철에 따라 팔지 않으실 때도 있고 때로는 사장님들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거나 손님들의 맛이 별로인 경우 아예 판매를 중지하시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와 아내는 이 집의 자르디네라(일종의 야채 피클)를 사다가 콜드 파스타 샐러드를 해 먹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소스류는 직접 여쭤보지 않아서 확실하지 않지만, 가공육은 전부 부부 사장님들께서 수제로 만드시기 때문에 가격 자체는 좀 나가는 편이다. 하지만 대충 마트에서 사 먹는 가공육에 비해서는 단연코 맛이 훌륭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다는 부부 사장님들의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 부디 오래오래 장사하셔서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장사가 잘 되어서 물론 더 좋은 데로 옮기시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처럼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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