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하시는지?
고랫적부터 우리는 어떤 음식에 대한 호불호를 가지고 늘 싸워 왔다. 이미 조선 시대부터 복어를 먹는 것이 옳으냐 마느냐를 가지고 열띤 논쟁을 벌여 왔던 우리는, 지금에는 더 말할 것 없는 탕수육의 부먹 대 찍먹 논쟁이라든지 민트초코가 과연 사람이 먹을 만한 것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핏대를 세우며 말다툼을 하곤 한다. 수많은 음식 호불호에 관한 이야기들 중 가히 세계구급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이 '하와이안 피자'에 대한 논쟁이리라.
말해 두겠지만, 나는 하와이안 피자를 퍽 좋아하는 편이다. 구워진 파인애플의 달착지근한 맛과 향이 치즈와 밀가루에 얹어져 훌륭한 조합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여느 피자 체인들이라면 다 하와이안 피자를 하나씩은 메뉴에 적어 놓기는 하더라도, 이게 구색 맞추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대강 만들어진 듯한 맛이 나기 때문이다. 덕분에 피자 체인에서 피자를 주문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하와이안 피자를 피하는 대신 기본에 충실한 치즈 피자나 페퍼로니 피자 등을 시키곤 하는데, 이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하와이안 피자 결핍증' 같은 것이 생기어 만성적으로 나를 괴롭히게 되는 것이다. 맛있는 하와이안 피자를 찾아 먹고 싶은데, 그 달착지근하면서도 향긋한 느낌을 즐기고 싶은데 체인에서 시키면 실패할 줄을 뻔히 아니까.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발견한 것이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문일리'라는 피자집이었다. 계기는 단순했다. 바로 옆에 있는 생면파스타 전문점(여기도 맛있다. 나중에 리뷰 한 번 올릴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 가게를 보았는데, '리얼 페퍼로니 피자'라고 대문짝만하게 영어로 써 있는 유리창이 눈길을 확 끌어당겼다. 우리 부부 모두 페퍼로니 피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중에 한 번 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후에 내가 운동을 하러 나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 집을 지나치게 되면서 페퍼로니 반에 하와이안 반 피자를 테이크아웃해서 돌아온 것이 발단이었다. 페퍼로니 피자도 물론 훌륭했지만, 집 근처에 이렇게 하와이안 피자를 잘 하는 집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문일리'는 가좌역 1번출구로 나와 홍제천을 건너서 살짝 골목으로 들어가야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의 가게이다. 항상 갈 때마다 젊은 남자 직원 둘이서만 오픈 키친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둘이 가게의 소유주인 모양이다. 최근에는 쿠팡이츠 배달도 시작한 모양인데, 그 전에는 홀 식사와 테이크아웃, 전화 주문해서 찾아가기 정도만 가능했다. 나는 아직 홀에서 식사를 해 본 적은 없고, 찾아가서 바로 테이크아웃을 하거나 전화로 주문한 뒤 찾으러 가기만 해 봤다. 쿠팡이츠 배달을 시작하기 전에는 바로 찾아가서 테이크아웃을 해도 15분 이하면 피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식사 시간 근처면 30분 정도는 기본으로 걸리기 때문에 시간계산을 잘 해서 전화주문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가게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확인하고 주문할 경우에는, 카운터에 비치되어 있는 메뉴판을 확인하면 좋다. 여섯 가지의 기본 피자가 있고, 반반 메뉴가 있어 원하는 토핑을 반반씩 얹은 피자를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점이다. 두 가지 피자 중에서 무엇을 고를지 고민된다면 반반 피자를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 나는 보통 이렇게 주문한다. 토핑은 이제까지 페퍼로니 피자와 하와이안 피자, 그리고 디아볼라 피자의 세 가지를 먹어 봤는데, 세 가지 모두 무척 훌륭하므로 강력 추천한다. 다만 디아볼라 피자는 청양고추와 핫소스, 그리고 초리조가 들어가기 때문에 다소 매울 수 있으니 주의. 신라면조차 매워서 극혐하는 내 입맛에는 신라면만큼은 아니더라도 퍽 매운 편이지만, 의외로 깔끔하다. 사이드메뉴의 경우 감자튀김이 두 종류에 버팔로 윙까지 총 세 종류가 있는데, 버터갈릭 감자튀김이 상당히 괜찮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레트로한 느낌을 살리려 노력한 티가 나는 가게 안에서 잠시 기다리면, 주문한 순서대로 손님을 불러 피자를 전달해 준다. 집에 들고 가기까지의 시간이 그렇게 오래 느껴질 수가 없다.
얇고 쫄깃한 도우 위에 딱 적절한 만큼 치즈가 올라가고, 그 안에 토핑이 콕콕 오밀조밀하게 박혀 있는 간단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느낌의 피자이다. 문일리의 피자는 '밸런스가 훌륭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데, 어떤 토핑을 얹은 피자든 그러한 느낌을 받게 마련이다. 특히 하와이안 피자의 경우, 보통 너무 달거나 너무 느끼하다는 느낌을 받기 십상임에도 깔끔한 느낌의 베이스 소스와 쫄깃한 치즈, 그 위에 얹은 적절한 단맛의 파인애플이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디아볼로 피자 또한, '악마'를 뜻하는 그 이름에 들어맞도록 제법 매운맛을 자랑하지만 작금의 '미친 듯한 매운맛'이 맛있다고 받아들여지는 풍조를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의 입맛까지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깔끔하면서도 기분 좋은 수준에서 마무리된다. 달고 부드러운 하와이안 피자와 매콤한 디아볼로 피자를 한 쪽씩 번갈아 가며 먹는다면 가히 완벽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이 가게에서 피자를 주문할 때 따라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처트니 소스가 있는데 이게 정말 물건이다. 핫소스가 베이스인 듯 엄청난 매운맛인데, 기묘하게도 중독적인 감칠맛이 그 뒤로 따라오면서 상큼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을 준다. 하와이안 피자와 훌륭한 궁합을 이룸은 물론이고, 매운 것을 잘 먹는 아내의 경우 디아볼로 피자와 함께 먹으면서 매콤한 맛을 배가시키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소스를 만드는지 너무 궁금해서 한번쯤 물어보고는 싶은데, 이런 얘기를 물어보는 데 서투른 내 성격 탓이기도 하고 뭔가 영업기밀이기도 할 것 같아서 늘 갈 때마다 눈치만 보다가 돌아오곤 한다. 이 글을 만약 두 젊은 사장님이 보시게 된다면, 나중에 웬 시커먼 아저씨 하나가 찾아가서 처트니 재료가 대체 뭐냐고 물어보거든 그냥 그러려니 해 주시길 바랍니다. 너무 맛있어요.
결론. 하와이안 피자에 대해 선입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문일리에 한 번 와서 하와이안 피자를 꼭 드셔보시기 바란다. 마음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더라도, 선입견을 어느 정도 부수실 수는 있으리라. 물론 다른 피자도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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