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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우당탕탕 초보 홈가드너의 우리 집 풀때기 소개하기

by 집너구리 2021. 8. 9.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에는 항상 식물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집인 안산의 어느 주공아파트에 살던 시절부터, 베란다에는 늘상 화분이 놓여 있었고 물 주기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어머니에 의해 내게 맡겨진 첫 번째 집안일이었다. 그 시절부터 키워 온 군자란과 단풍나무 분재는 아직도 본가에서 잘 살고 있다. 

 

독립하게 되면 내 스스로 식물을 키워 보고 싶다, 그렇게 처음부터 확실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결혼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 보니, 화분이 한두 개씩 생겨나고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빛 드는 곳이 제한되어 있고 공간도 좁았던 첫 신혼집에서야 언감생심, 손바닥만한 작은 선인장 화분 하나밖에 키우지 못했지만, 볕이 어느 정도 들고 우리 내외가 사용하는 공간 이외에도 이곳저곳 빈 공간이 생긴 지금은 내가 생각해도 우스울 만큼 이곳저곳에 풀때기들(?)이 자라나고 있다. 이들을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길게 자라는 선인장 친구

 

결혼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홈가드닝 공부를 하는 내 어머니가 보내 주신 녀석이다.

풀때기 친구들 중에서는 가장 경력이 오래 됐다.

처음 왔을 때쯤 해서 꽃대를 쭉 올리더니 정말 예쁜 오각뿔 모양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곤,

지금까지는 멀대같이 키만 크고 있다.

물을 거의 주지 않아도 되지만, 목이 마를 때쯤 되면 고개를 숙여 버리므로 그 때는 물을 주면 좋다.

최근에는 너무 웃자란 데다가 물까지 부족해진 탓에 한번 훅 기울어진 적이 있어서 받침대를 해 줬다.

집이 좁았던 시절에는 의자에 앉아서 기지개를 켜다가 녀석을 쳐서 떨어뜨린 적이 서너 번은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프하게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다.

 

2. 어머니의 미니정원 작품

 

정직하게도 명판에 '미니정원'이라고 써 놓은 어머니의 작품이다. 고사리류 하나 말고는 이름을 모른다.

빛을 많이 보지 않아도 되고, 물을 많이 먹지도 않는다며 가져다 주셨는데, 정말 그렇다.

잊어버릴 때쯤해서 물을 흠뻑 주고 또 잊어버리고 그랬더니 한 친구도 죽지 않고 잘 커 주고 있다.

초보 식집사의 가장 큰 실수는 과습이라더니 으른들 말씀 틀린 게 하나 없다.

 

 

3. 터프하게 잘 살고 있는 스킨답서스와 호접란

 

스킨답서스는 안산 내 본가에서 10년 넘게 자라고 있는 스킨답서스 수반에서 두어 뿌리 뜯어다가 번식시킨 것이다.

스킨답서스를 못 키우면 식물 키울 생각을 하지 말라던데, 다행히도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길게 늘어뜨려서 바닥까지 닿게 하는 것이 목표인데 어디까지 될지는 잘 모르겠다.

호접란은 처남의 결혼식에서 얻어 온 큰 화분에 심겨 있던 친구들 중 하나인데,

네다섯 그루가 다 죽고 얘 혼자 남았다.

거실 책장 위라는 상당히 거친 환경 속에서도 다들 멀쩡하다.

 

4. 수국 친구들과 스파이

 

집에서 풀을 키운다면 항상 가장 키우고 싶었던 것이 수국이었다.

본가에서 살던 적에도 호기롭게 한번 사 왔다가 그만 죽이고 말았던 안타까운 과거가 있는데,

다행히도 동네 꽃집에서 데려온 이 녀석은 잘 자라 주고 있다.

데려올 적부터 꽃이 살짝 펴 있었던 것이 지금은 만개했다.

원래는 한 화분이었는데, 분갈이를 하다 보니 두 그루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어 분리시켜 두었다.

파는... 마트에서 사다가 꽂아 뒀다. 오래 갑니다.

 

5. 각종 실용작물들

 

그나마 풀때기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친구들로는 바질과 구문초, 레몬나무가 있다.

본디 바질 두 그루와 구문초 두 그루가 있었으나, 각각 한 그루씩은 사멸(?)하고 하나씩만 남았다.

레몬은 여러 그루가 있었는데 다 죽고 하나만 남았고, 그나마도 좀 비실비실한 상태.

최근에는 남아도는 화분에 씨를 뿌려서 케일을 키워 보려는 헛된 시도를 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요 며칠 새 싹이 조금씩 나고 있다.

로즈마리 씨도 뿌려 봤는데(레몬나무 옆의 토분), 과연?

 

 

6. 늘 키우는 방법을 잘 모르겠는 다육식물들

 

다육식물은 값이 싸기 때문에 조금씩 사 오곤 하는데,

오랫동안 잘 키우는 방법이 과연 있는가 싶을 정도로 키우기가 쉽지 않은 녀석들인 것 같다.

말하자면... 대량 생산되어 주인을 기다리다가 안 팔려서 폐기되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 가져오는 느낌?

그러나 키우기 쉽지 않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 화분에 있던 친구들도 제일 키가 큰 한 그루만 남기고 다 죽어서,

새로 사다가 키우고 있던 친구들과 합사(?)해 준 직후 찍은 사진이다.

볕을 좀 보여 주면서 오래오래 키워 봐야겠다.

7.  ?????

 

그러고도 조금씩 무언가가 늘어나고 있다. 기대하시라.

 

 

번외. 절대 죽지 않는 알스트로메리아

 

아내가 가끔씩 회사에서 남는 꽃다발을 가져올 때가 있다.

물병에 예쁘게 꽂아 놓으면 한동안 즐길 수 있지만, 언젠가는 다들 수명을 다하고 스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늘 죽지 않고 버티는 친구들이 있으니, 알스트로메리아다.

절화 자체도 오래 가는데, 놀랍게도 줄기는 물만 갈아 주면 정말 한도끝도 없이 푸른빛을 유지한다.

이 사진의 녀석도 집에 온 지 반 년이 넘었는데 전혀 잎의 빛이 바랠 기미가 없다.

웃기는 건 물만 먹을 뿐이지 새 눈도 안 나오고, 성장도 하지 않고, 뿌리도 내지 않는다.

조화가 아닌가 해서 줄기를 살짝 끊어 보거나, 흙에 심어 보거나 한 적도 있는데

흙에만 심으면 머지않아 시드는 걸 보면 살아는 있는 게 확실하다.

좀비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