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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가든센터에 첫 발들이기 : 더그린가든센터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1. 11. 14.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식물인 수국을 집에 들여놓은 것이 6월 말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에 온통 풀때기들이 가득해졌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탓에 가드닝은 영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식물원이나 꽃시장에 몇 번 같이 다녀온 이후로는 서서히 식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그러나 아직 물은 혹시나 죽이면 어떡하나 싶어 못 주겠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이번에 가든센터에 한 번 가 보겠느냐는 내 물음에 아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가자며 외투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꽃의 도시' 고양이 지척인 곳에 산다는 지리적 이점을 식집사로서 살리지 못한다는 것은 다소 아까운 일이라고 슬슬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차가 없으니 운신의 여지가 넓지는 못하지만, 대중교통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들이 집 근처에 몇 있으니 한번씩 들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것이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면서 한 시간 남짓 가면 '더그린가든센터'가 있다. 예전에 서울식물원에 갔다가 마음을 홀랑 빼앗겨 버린 베고니아 '어텀 엠버(autumn ember)' 종이 마침 입고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출발을 결심한 것은 오후 3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이었는데, 센터는 여섯 시에 닫고 가는 데에만 한 시간이 걸리니 마음을 먹자마자 얼른 옷을 걸쳐입고 버스를 잡아타러 나갔다. 집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2분 만에 타야 할 버스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서울시민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늘 신기하고 어색한 느낌이다. 다행히도 버스가 바로바로 와 줘서,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했음에도 무난하게 5시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허벌판에 가까운 고양시의 한 도로변에서 하차하여 조금 걸어가면, 모 사설 동물원 옆으로 바로 비닐하우스와 건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늦은 시간임에도 자동차가 제법 서 있다. 방역수칙에 맞춰 체온을 측정하고 방문객 등록을 한 뒤 안으로 들어간다.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빼곡히 채워진 식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양재동 화훼시장이나 종로 꽃시장은 여러 사업자들이 한데 모여서 경쟁적으로 물건을 팔고 있기 때문에 품목이 비슷비슷한 곳들이 많다면, 이러한 가든센터들은 보통 하나의 사업주체가 운영하기 때문에 다양한 품목의 식물들이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어텀 엠버 입고 소식을 접했던 것은 더그린가든센터의 사장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서였는데, 놀랍게도 무척 젊은 사장이 이 곳을 이끌어 가는 모양이다. 이렇게 큰 곳을 어떻게 다 관리한담?

 

흔히 관엽식물로 가정에서 많이들 기르는 칼라데움이나 필로덴드론 종류도 많이 있을 뿐더러, 로즈마리 등의 허브류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부지가 엄청나게 넓은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화원으로서는 비수기에 해당하는 초겨울인데다가 벌써 닫을 때가 다 된 시간이었던 만큼 살짝 황량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식물들의 상태는 제법 훌륭했다.

 

천장을 찌르듯이 솟아오르고 있는 나무와 야자류도 조금 안쪽으로 가면 잔뜩 쌓여 있다.

 

다육식물도 제법 많이 놓여 있다. 양재동에서 귀동냥한 바에 따르자면 다육식물도 본격적으로 다양하게 출하되는 것은 봄부터라고 하니, 봄에 오면 이보다도 더 많아지지 싶다.

 

고사리도 다양한 종류들이 준비되어 있다. 고사리는 모양새가 예뻐서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집에서는 키우기가 영 쉽지 않아 구경만 하고 넘어간다.

 

 

최근에 몬스테라 아단소니를 키우게 된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몬스테라 종류가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비매품이기는 하지만) 이파리 한 장이 내 손보다 더 큰 거대한 아단소니와, '시암 몬스테라'라는 별칭이 붙은 몬스테라 피나티파티타monstera pinnatipartita도 보인다. 시암 몬스테라는 이번에 처음 봤는데, 줄기만 봐서는 이게 몬스테라가 맞나 싶다가도 이파리를 보니 '아, 몬스테라군'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요 귀여운 복슬복슬 친구들은 놀랍게도 원예종 아스파라거스라고 한다. 아스파라거스의 잎이 대강 당근잎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다양한 원예종이 개발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얘네도 나중에 먹을 수 있는 아스파라거스 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더그린가든센터의 가장 큰 특색 중 하나는 다양한 색상과 크기의 베고니아류를 팔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장님이 베고니아에 특별한 애착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식물 덕질에 입문하면서 마일로 작가님의 <크레이지 가드너>를 배꼽 잡으며 보고 있는데, 작가님이 베고니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고 '그 정도인가?'라고 궁금해했었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만큼 베고니아들은 도대체가 안 예쁜 애가 없는 듯하다. 열심히 뜯어보더라도 못생긴 베고니아란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이 든다. 마음 같아서는 싼 녀석들 위주로 몇 포트 더 집어오고 싶었지만, 우리 집에는 이미 식물이 많고 가장 노렸던 것은 '어텀 엠버'였으므로 일단은 이 녀석만 사기로 했다. 

 

이 밖에도 몇 가지 식물을 더 샀다. 어텀 엠버는 물론이고, 분홍빛 피토니아(나중에 품종명을 찾아보니 '프랭키(Frankie)'라고 한다), 꽃이 핀(즉 머지않아 죽게 될) 틸란드시아 이오난사, 아내가 마음에 들어한 수박잎 페페와 내가 키워 보고 싶었던 라피도포라 테트라스페르마(Raphidophora tetrasperma, 유통명 '히메 몬스테라')까지 총 다섯 종류다. 펄라이트와 지렁이분변토, 그리고 화분 몇 개도 추가로 사 와서, 잠시 격리하여 과산화수소수 용액으로 소독한 식물들을 분갈이해 주었다. 구매 금액에 따라 3만 원마다 스탬프를 한 개씩 찍어 주신다는데, 나중에 영수증을 보니 무척 안타깝게도 6만 원에 살짝 못 미쳐서 스탬프를 두 개 받기는 장렬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쉬워라.

 

그리고 가든센터가 너무너무 재밌다는 것을 깨닫게 된 우리 부부는 결국 또 다른 가든센터를 다녀오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