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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노가든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1. 3.

식집사의 길로 접어들고 나서 동네 화원은 물론이고 이곳저곳 근방에 있는 가든센터도 들쑤시고 댕기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에, 서울 근교에 사는 식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가 보게 된다는 소문의 식물 가게 한 곳을 알게 되었다. 서촌에 위치한 '노가든'이다.

 

 

서서울에 살게 된 이후로 서촌을 퍽 자주 가게 되었는데,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것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었다. 그 전에는 이 동네에 있는 각종 유적지나 식당, 시장 정도는 충분히 알고 여러 번 다니기까지 했는데. 심지어 막상 찾아가 보니, 예전에 그 근처에 있는 빵집 등을 들르기 위해 자주 드나들던 (서촌 치고는) 제법 큰 골목 어귀에 가게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딱 그 짝이다. 사실 한 달쯤 전에 한 번 이 곳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내부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지 못했었다.

 

 

70년대-80년대 경에 지어졌을 오래 된 상가 건물 1층에 노가든은 퍽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인테리어나 외장은 (최근 공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나) 분명히 새로운 것임에도, 어쩐지 오래 전부터 이 건물 1층에 존재해 왔던 것마냥 완벽히 건물에 녹아들고 있다. '정원 없이도 충분히 키울 수 있는 식물들을 권하려 노력한다'는 가게의 취지처럼, 은근하고 자연스럽게 옛 도심의 한구석에 터줏대감마냥 자리하고 있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선반 위로 아기자기하게 쌓여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간격으로 놓인 식물들이다. 대형 가든센터에 가면 늘 식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거기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인데, 노가든의 식물들은 그저 딱 실내 정원을 구현해 놓은 것처럼 적절한 간격으로 식물들이 놓여 있다. 또 대부분의 식물들이 비닐 화분이나 플라스틱 화분이 아닌 도자기분에 심겨져 있거나, 비닐 화분 그대로 심겨져 있더라도 겉화분에 한 번 더 담겨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주로 얘기하는 '완성품'이 이 곳의 주력 상품인 셈이다. 그만큼 각 식물의 가격도 퍽 비싼 편이다. 아마도 화분 값이 포함된 것일 터이다.

 

다글다글하게 올라오는 이파리들이 너무 고운 나폴리안나이트 페페. 결국 왼쪽 분을 사 왔다.

 

전반적으로 가게 안은 '식물 가게'라기보다는 '식물 정원'에 가까운 인상을 주었다. 물론 종류별로 모여 있는 식물들도 간간이 보였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이 아기자기한 장식품과 어우러져 이곳저곳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베고니아 스노우캡 대품을 이 곳에서 두세 그루 봤는데, 모두 다른 곳에 놓여 있었는데도 주위와 잘 어우러져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재미있는 식물들을 발견하는 맛이 있달까.

 

화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개인 실내정원에 가까운 듯한 배치이지만, 모두 파는 식물들이다. 화분이 하나같이 잘 어울린다.
고사리들 사이로 박쥐란도 보이고, 칼라데아도 보이고, 이렇게 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보석란도 보인다. 

 

가게를 둘러보다가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마치 교단이나 도코노마처럼 한 단 바닥이 높은 공간이 있다. 벽체 안으로 움푹 들어간 선반이 있는 곳이다. '비매존'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아하니 사장님의 소장품들인 듯하다. (주로) 두갸르송 화분에 식재된 작고 귀여운 식물들이 놓여 있는데, 어쩜 하나같이 이렇게나 예쁜지. 팡팟에 담긴 이름 모를 꼬마 식물이 내 눈을 확 사로잡는다(낯을 가리느라 이 녀석의 이름을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이전에 어떤 식물 유튜브에서 '두갸르송은 단순한 생김새이지만 식물의 매력을 100프로 살려내는 마력이 있다'는 언급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이렇게 실제로 두갸르송 화분에 담긴 식물들을 보니 식물 화분이라기보다는 도리어 어떤 모더니즘 설치작품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화분 하나의 차이가 이 정도란 말인가(실제로 노가든은 두갸르송의 오프라인 판매처로도 유명하다).

 

사진으로 차마 이 아기자기함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정말 예쁘단 말이야.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면 각종 소품과 화분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나온다. 일반적인 모양과 형태의 토분은 물론이고, 무게감 있게 색을 낸 유약분들과 일부러 오래 된 듯한 느낌을 연출한 빈티지 토분도 왕왕 있었다. 소품의 경우에는 생김새는 예쁘지만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물건들이 많아 언급은 생략하기로 한다(다만 빗자루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마침 조금 큰 사이즈의 토분이 필요해서, 페페를 사는 김에 토분도 한 개 사기로 했다. 이 공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흥미롭게도 이른바 '식물 굿즈'도 전시해 두고 있었다. 식물에 걸어 두는 장식용 '플랜트 애니멀'이라든지, 다양한 관엽식물의 잎 모양을 형상화해 둔 문구류, 포스터류 등이다. 나는 아직 필로덴드론이나 안스리움 류의 열대관엽의 매력은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탐나는 예쁜 모양새였다는 것은 덧붙여 두기로 한다. 아내에게 사진을 보여 줬더니 무척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여느 식물 가게가 그러하듯, 비수기에 해당하는 겨울에 찾아간지라 생각보다 식물의 종류가 그다지 다양하지 않다는 느낌은 받았다. 이곳 사장님은 자기 소유의 농장을 가지고 있는 정도의 분이시니, 꽃 피는 봄이 되면 한 번 다시 찾아가서 그 분위기를 느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참고로, 여기서 식물을 사면서 사장님께 주의사항 등에 대해 물어보면 정말 친절하게 잘 알려 주시므로 식물을 이곳에서 처음 사고자 하는 분들은 거리낌 없이 물어보면 좋을 듯하다. 페페 하나를 사는데도 '얘가 추위를 타니까...' 라고 하시면서 신문지로 꼼꼼히 꼭대기까지 여며 주시는 분이니, 그의 마음 씀씀이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커버 화분들도 많고, 예쁜 토분들도 많다(단 가격은 마트 토분(...) 보다는 비싸다).
아기자기한 식물 소품들도 많으니 참고하시길! (아래쪽에 시선강탈하는 스노우캡도 볼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