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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의도치 않았던 사회공헌) 어르신들을 위한 색칠공부책을 만들어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2. 6.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이거죠.

(맛들린 레베기님 흉내내기)

 

이번에도 아내의 회사에서 받아온 사회공헌 키트다.

'세상아이'라는 사단법인에서 복지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색칠공부책을 만들어서 보내드리는 활동을 하고 있단다.

나는 꼭 이런 걸 보면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최대한 정성을 담아서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나더라고.

 

 

방법은 어렵지 않다. (설명서만 잘 따라하면 된다)

먼저 표지와 도안을 잘 겹치고, 도안에 난 구멍을 따라가며 겹쳐진 표지까지 뚫어 구멍을 낸다.

도안은 토끼와 코끼리, 고래 등 (또 한 가지는 까먹었지만) 총 네 가지.

모두 귀엽고 어딘지 모르게 감성을 자극하는 예쁜 그림들이었지만

이번에는 토끼를 골라 보았다.

너 봄 토끼가 귀엽단다.

 

 

재미있게도 이렇게 구멍을 뚫는 이유는

구멍을 따라 실로 바느질(!)을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또 바느질은 좀 하는 편이다.

일단 도안을 다시 봐 가면서 이어지는 방향에 따라 선을 그어 준다.

굳이 진하게, 혹은 똑바르게 그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실이 다 가려 준다.

 

 

다음은 선을 따라서 예쁘게 바느질선을 내 주면 된다.

초등학교 실과 시간에 배워서 지금까지 유효활용하고 있는

박음질 실력이 빛을 발할 때다.

오히려 천에 대고 박음질할 때보다

이미 구멍이 난 종이에 바느질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다.

실 길이 계산을 살짝 잘못해서 두 번 만에 도안을 전부 꿰었다.

 

 

도안을 다 바느질했으면 이제는 책등을 묶을 차례다.

먼저 책 옆에 난 구멍을 따라 홈질을 하고,

끝까지 묶으면 한 바퀴씩 돌려 가며 책등을 묶어 나간다.

본의 아니게 동아시아의 전통 제본 방식을 배우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 때를 사실 제일 조심해야 한다.

자기가 바느질을 잘 한다는 자만심에 빠져서

한 번에 여러 개의 구멍을 휙휙 꿰거나 하는 헛짓을 하다간...

 

 

이렇게 구멍 하나를 낼름 묶지 않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당황하지 않고 다시 원상복귀한 뒤 재시작하면 된다.

 

 

끝까지 다 묶는 데 성공했다면

처음에 남겨 둔 실과 함께 잘 묶어서 마무리한다.

결국 맨 첫 구멍의 마무리를 또 까먹었다는 걸

이 사진을 찍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건 안 자랑.

 

 

책 묶기를 마무리하면 이제는 색칠 시간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색칠공부 책이라지만,

표지만큼은 내가 색칠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예쁘게 꾸민다.

 

 

 색칠 작업을 할 때가 사실 가장 어렵다.

정해진 내용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봄 토끼라는 컨셉트를 잡았기 때문에,

대표적인 봄꽃인 개나리를 일단 그려 넣은 뒤

풀밭의 다른 꽃들도 조금씩 그려 넣었다.

적적하신 어르신들이 보시기에 토끼가 혼자 있으면 외로워 보일까 봐

참새(랍시고 그렸습니다. 죄송합니다)와 나비도 그려 넣었다.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들이 여럿 있었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 정서에는 개나리가 제일 어울리지 싶었다.

 

색칠공부책의 내용은 <섬집 아기>.

물질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다 잠드는 아기의 이야기.

나는 이 노래만 들으면 어렸을 때부터 서른 줄인 지금까지

어쩐지 항상 눈물이 난다.

어렸을 때는 그저 이 내용이 너무 슬퍼서 그랬고,

지금은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릴까 싶어서 그렇다.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듣게 될까.

 

 

마지막으로 박음질 자국을 가리기 위해서

앞표지와 뒷표지를 양면테이프로 이어서 붙이면

 

 

이렇게 고운 색칠공부책이 완성된다.

 

어떤 어르신에게 이 책이 가게 될까.

비록 서툰 그림으로 꾸민, 어쩌다 보니 만들게 된 그림책이지만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렇게 진심으로 든 것도 참 오랜만이다.

 

설 명절을 마무리하며, 오랜만에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