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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일산 한국화훼농협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3. 6.

봄이다. 풀때기 사러 가기 딱 좋은 철이다.

그래서 갔다.

일산에서 가장 큰 화훼공판장 중 하나인, 일산 한국화훼농협 본점으로.

 

 

별달리 식물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고, 화분과 흙을 사는 김에 식물 구경이나 좀 해 보자는 공산으로 출발한 것이었다. 대화역 근방에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전철로도 갈 수 있는 곳이지만 기왕 휴일에 차를 빌린 김에 차로 가 보기로 하였다.

 

한국화훼농협 본점인 만큼 규모가 크겠거니 하는 짐작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정말 말도 안 되게 컸다. 근방에 화훼공판장을 더 크게 만들고 있다는데, 그곳이 완공되면 또 한 군데 다녀볼 곳이 생길 테니 그저 두근두근이다. 안에 들어가 보면 주차공간이 여간 부족한 게 아니다. 화훼공판장 자체의 주차장이 무척 부족하기 때문에 맞은편에 있는 하나로마트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나로마트도 워낙에 커서 돌아보는 데 한세월이니, 여기서 아예 장을 보고 나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우리 부부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뭐니뭐니 해도 식자재는 하나로마트가 제일 싸고 제일 질이 좋다.

 

밖에서 봐도 퍽 큰데, 앞에서 보니 더 웅장하다.

겨우 차를 대 놓고 안으로 들어간다. 카트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상품을 담아서 한번에 계산하는 시스템이다. 자동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하게 늘어서 있는 호접란들이다. 꽃피는 봄이기도 하고, 영전의 시기 봄이기도 하고. 개업화분에 담긴 호접란들도 많지만 개인이 키울 수 있도록 포트에 담겨서 판매되고 있는 호접란들도 있다. 물론 호접란뿐 아니라 석곡 같은 동양란도 있고, 수경재배용 용구에 담긴 식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물생활용 도구들이나 반려조류들도 있었는데, 일견 농협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미지의 상품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어색하면서도 신기했다.

 

한번에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할 만큼 부지가 크다. 건물의 절반을 나눠 반은 특설매장으로, 반은 상설매장으로 쓰고 있는 듯.
거대한 나무들을 진열해 둔 공간도 있고, 이렇게 동양란을 파는 가대도 있다.
호접란의 종류가 정말 많다. 이렇게 내 주먹보다 더 큰 꽃을 피우는 녀석들도 있다.
수경재배용 식물들을 전시해 둔 공간, 절화를 파는 공간, 나무를 파는 공간.

요즈음의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입구 쪽 특설매장의 호접란들은 보통 6천 원에서 만육천 원 정도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는 듯했다. 호접란의 종류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양한 색과 모양의 호접란들을 직접 목도하니 급작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꽃을 좋아하게 된다지만 나는 퍽 어렸을 적부터 꽃을 좋아해 왔기 때문에, 꽃이 잔뜩 피어 있는 모습만 봐도 즐겁다. 아내와 호접란 앞을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한참을 구경한 끝에, 한두 포트 정도는 사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쉽게도 아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녀석은 무려 한 포트에 만오천 원씩이나 하는 귀하신 몸. 일단 조금 더 돌아보고 결정하기로 한다.

 

카트를 끌고 이번에는 격벽 너머에 있는 상설매장 쪽으로 들어가 본다. 여기에도 호접란이 있다. 손색없이 예쁜 꽃을 달고 있지만 가격은 좀 더 저렴하다. 가장 잎이 깔끔한 두 포트를 골라서 담는다. 호접란을 고르고 나서부터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면서 무슨 식물이 있나 구경하기로 한다. 역시 봄이라 그런지 주로 꽃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탐스러운 꽃무리를 달고 있는 꽃베고니아와 제라늄, 벌써부터 몽우리가 올라온 수국 등을 보고 있자니 성큼 곁으로 다가온 봄기운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물론 관엽식물들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알로카시아류나 아글라오네마, 디스키디아, 호야, 페페 등. 베고니아도 주로 근경성 종 위주로 준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베고니아는 더그린가든센터를 가는 것이 훨씬 더 다양한 품종을 볼 수 있어서 즐겁지만, 무엇보다도 여기 있는 베고니아들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튼튼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든다.

 

엄청난 기세로 꽃을 피우고 있는 꽃베고니아들과 호접란들.
(좌) 디스키디아와 립살리스. 행잉플랜트들이다. (중) 알로카시아 프라이덱. 나는 알로카시아 중에선 얘가 제일 좋다. (우) 수많은 아글라오네마로 만든 장식벽. 다양한 색의 이파리로 색감을 조성한 모습이 제법 훌륭하다.
근경성 베고니아 존. 종류가 막 다양한 건 아니지만 다들 건강한 생김새이다.
작달막한 찔레꽃과 다양한 야생화들도 눈에 띈다. 제라늄 꽃도 예쁘게 폈다.

한 그루에 몇십에서 몇백씩 하는 큼직한 나무들을 끼고 돌다 보면 다육식물들을 잔뜩 두고 파는 곳도 있다. 다육식물이란 자고로 작은 녀석들을 부담없는 가격에 데려다 키울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식물 키우기 방법론대로 키우려다가 조지고 마는 경우가 수없이 많은 녀석들. 나도 그랬다. 따글따글한 생김새가 앙증맞고 귀엽다. 빛이 잘 드는 데 두어야 하는 탓에 빛이 잘 들지 않는 우리 집에서는 언감생심이지만.

 

때글때글한 다육식물 친구들이 드글드글해 아주 기양.

또 한 곳, 눈여겨볼 만한 곳은 안쪽에 위치한 '알뜰구매코너'이다. 다소 비실비실하거나, 유행이 좀 지나서 안 나가거나, 수형이 영 예쁘지 않거나 하는 친구들을 모아 놓고 파는 곳이다. 이를테면 시기를 놓친 포인세티아라든가, 이파리가 거의 녹아내린 알로카시아라거나, 반쯤 죽어가는 베고니아 같은 친구들이다. 보통 40-50퍼센트의 할인폭으로 팔린다. 이파리가 다 녹아내린 베고니아 이브닝 글로우가 있길래 한 촉 샀다. 노랗게 변해 가는 이파리를 하나만 달고 있는 프라이덱이 있길래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할인을 받더라도 5천 원은 되는 가격에 전혀 키워 본 적이 없는 종을 데려가는 건 나한테도 얘한테도 못할 짓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신 옆 코너에서 팔고 있던 중품의 무늬 벤자민 한 포트를 사 가기로 했다. 아내가 이 녀석을 잘 키워서 몇십 만원짜리 대품으로 만들고 말겠다고 무척 신나 했다. 내가 키우겠지만.

 

할인 코너를 잘 둘러보다 보면 뜻밖의 횡재를 할 수도 있다.

홀린 듯이 식물을 구경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화분 코너로 향한다. 여기에서는 상토나 마사토, 녹소토, 산야초 등 다양한 식재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화분을 판다. 국내산 토분도 제법 많다. 가격 자체는 마트 상품에 비해서 그다지 저렴한 것 같지는 않지만,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화분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이점인 듯하다. 집 베란다나 옥상에서 사용해 볼 만한 재배화분이나, 동네 화원에서 선물용 화원을 만들 때 쓸 법한 도자기 화분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말하자면 화분 도매시장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는 작은 토분 두 장(화분을 '장'으로 셀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과 마사토, 상토를 한 봉지씩 샀다.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 화분들. 토분은 국내산, 이태리산, 독일산, 중국산이 주류를 이룬다.

이렇게 공판장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카트에 넣은 물건들은 한번에 계산대에서 계산하고 나가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식물을 여러 개 샀을 경우에는 비치되어 있는 포장용 비닐이나 6구짜리 화분꽂이 등을 활용해서 가져가면 편리할 듯하다. 다만 할인코너에서 구매한 화분이 있다면 다른 물품들과는 별도로 결제를 한 번 더 해야 하는 것이 다소 불편하기는 했다. 아마도 시스템 상에서 뭔가 다르게 처리해야 하는 모양이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거대한 하나로마트에서 장까지 보고 돌아오니, 벌써 저녁 여섯 시 반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의 화분 갯수는 결국 100개를 넘고 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