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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사서 이용해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3. 27.

오미크론 변이 때문에 코로나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는 통에, 기존에 확진자에게 제공되던 키트 형태의 지원물품 대신 현금 지급으로 정책이 바뀌었단다. 나는 예전에 병을 좀 심하게 앓은 이후로는 폐가 예전 같지가 않아서(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라 정말로 의사의 진단 결과가 그랬다), 이렇게 된 이상 집에 상비로 산소포화도 측정기 하나 정도는 구비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이버 쇼핑에 검색해 보면 정말 싼 산소포화도 측정기는 몇천 원 단위에도 나오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측정해 보겠다는 생각이라면야 말리지는 않겠지만, 몸 상태를 제대로 측정하려면 의료기기로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기기정보포털까지 들어가서 검색해 본 끝에 C사의 측정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웃기게도 결제한 시점은 2월 초쯤이었는데, 한 일 주일쯤 지난 시점인가 "수입사의 사정으로 인해 배송은 5월 중으로 미뤄졌습니다"라는 공지가 왔다. 그럼 도대체 산 의미가 있는 거야? 그렇다고 이거를 결제 취소했다가 또 언제까지 기약없이 기다릴 지도 알 수 없고, 그냥 잊고 살면서 최대한 코로나 안 걸리게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택배사에서 배송 공지가 왔다. 3월 말인 이번 주에야 도착한 것이다. 생각보다는 이르긴 했는데, 그래도 찜찜한 건 별수없다.

박스는 이렇게 생겼다. 아주 전형적인, 패키지 디자인의 기초만 알고 있는 생초짜가 레이아웃 잡은 중국산 상품 느낌이 낭낭하다. 놀랍게도 이것이 의료기기정보포털에 등록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의료용 산소포화도 측정기 중 하나다.

 

박스를 열고 구성품을 꺼내면 이런 느낌이다. 실리콘 껍질로 싸인 측정기 본체, 왜 있는지 알 수 없는 목걸이줄, 출처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AAA 건전지 한 세트, 그리고 부직포 케이스와 사용설명서가 들어 있다. 사용설명서는 의외로 읽을 만한 한국어로 되어 있다. 기계 자체가 워낙 간단한 구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설명서의 내용 자체도 그리 두툼하지는 않다. 자원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저 출처를 알 수 없는 건전지를 측정기 뒷면에 투입하면 준비는 끝난다.

 

손가락을 이 집게처럼 생긴 기계 안쪽까지 잘 밀어넣으면 알아서 측정기가 손가락을 문다. 위 사진에 표시되어 있는 안쪽 격벽까지 손가락 끝을 밀어넣어야 한다. 사용설명서에는 딱히 어느 쪽의 어떤 손가락을 쓰라는 얘기는 없기 때문에 아무거나 편한 손가락을 쓰면 되고, 얼마나 오랫동안 봐야 한다는 기준도 없다. 그냥 측정 동안에는 움직이지 말고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만 있으면 알아서 측정이 된다. 피측정자 기준으로 보았을 때 상부에 표시되는 숫자가 맥박수, 하부에 표시되는 숫자가 산소포화도이다. 일산복음병원 자료에 따르면 산소포화도가 95% 밑으로 내려가면 저산소증 주의 상태가 되고, 90% 이하면 정말 위급한 상태가 된다고 하니 참고할 만하다. 측정해 보니 나는 그래도 대략 98-99% 정도에서 유지되는 듯하다. 다만 이미 알고 있었던 대로 맥박수는 정말 낮다.

 

혹시라도 코로나에 걸릴 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사 두니, 상비약 사 둔 느낌으로 마음이 다소 놓이기는 한다. 사실 이 녀석으로 며칠씩 지속적으로 산소포화도 측정을 할 필요가 앞으로도 아예 없게 되는 것이 가장 최선이기는 할 터이다. 사람 만난 지도 퍽 오래 됐는데, 앞으로도 사람을 잘 피해 다니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