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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마포구 '진진'

by 집너구리 2022. 9. 3.

지하철 2호선 서편에 살고 있는 마포구 주민이라면 한 번쯤 '진진'이라는 식당의 이름을 들어 봤을 가능성이 높다. 맛있는 중화요릿집으로서 명성이 이미 드높기도 하거니와, 서교동 근방에 지점이 몇 개 있(었)고 모두 손님이 바글바글하던 것을 으레 지나치며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새 공부하느라 여러모로 쉽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내의 기분전환도 시켜 줄 겸, 내 가사부담도 덜 겸(?) 해서 마포에 이사 온 지 3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이곳에 가 보기로 했다. 부모님이 언제고 이 근처에 오실 때면 대접해 드릴 만한 식당도 찾아 놓자는 심산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다. 당일예약이라는 쉽지 않은 조건이었지만, 다행히도 평일이라 그런지 자리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하여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고 '진진'으로 향한다.

 

'진진'은 무려 미쉐린 가이드에도 다년간 오를 정도로 유명한 레스토랑인데, 코리아나호텔을 대표하던 왕육성 셰프가 호텔을 그만두고서 중식의 보급화를 내걸고 창업한 가게라고 한다. 요 근처인 연희동에서 '목란'을 운영하고 있는 이연복 셰프가 '왕 사부'라고 부를 만큼 그의 존재감은 중식계에서 대단하다고. 중화요리라고는 우리가 흔히 집 근처에서 시켜 먹곤 하는 짜장면이나 짬뽕, 탕수육 정도나 알고 있는 - 문외한에 가까운 - 나로서는 그저 그의 레시피로 낸 맛이 얼마나 훌륭할지 궁금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작년에 대방동의 유명한 노포이자 내가 종종 찾곤 하던 '대성관'이 내부 사정으로 문을 닫고 나서부터는, 제대로 된 중화요리를 어디에서 쉽게 먹을 수 있을지 다소 막막하던 차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종종 산책을 다니면서 지나다녔던 바로 그 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다. 전화로 미리 예약을 하고 찾아가기를 잘 했다. 기다릴 것 없이 곧장 예약석으로 안내받는다. 가게 내부는 생각보다 넓지 않고, 테이블도 딱 둘이 식사하기에 적당한 크기이다. 만찬용 테이블은 조금 더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룸은 따로 없다.

차가운 차와 소금을 쳐 구운 땅콩, 짜사이가 기본 상차림이다. 옆에 있는 메뉴를 일단 집어든다.

짜장면과 짬뽕 등, 우리가 중화요리 하면 떠올리곤 하는 기본 중의 기본 음식들은 의외로 메뉴에 없다. 대신 일품요리 위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으며, 스페셜 메뉴와 예약전용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예약전용 메뉴라고 하더라도 회원가를 적용하면 우리 생각보다도 매우 싼 편이다. 참고로 '진진'은 초기 회원가입비 3만 원을 내면 전 메뉴의 가격이 약 20% 정도 할인된다. 일단 한번 음식을 몇 개 시켜서 먹어 보고, 마음에 들면 회원가입을 해 두기로 하였다. 일단 스페셜 메뉴에서 어향가지를 하나 시키고, 일품요리 중 멘보샤를 하나 시킨다. 식사메뉴를 깜박하고 찍어 두지 않았는데, OX볶음밥을 한 그릇 시키기로 하였다. 

 

주문을 하고 난 뒤 땅콩과 짜사이를 조금씩 집어 먹는다. 짭쪼름하지만 기분 나쁘게 짜지는 않은, 딱 좋은 절임음식의 맛이 난다. 땅콩도 고소하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먼저 멘보샤. 가게 안이 어두워 색이 다소 진하게 나온 것처럼 찍혔지만, 좋은 기름으로 튀긴 티가 확 나는 밝고 먹음직스러운 색의 멘보샤 여섯 조각이 나왔다.

원래는 다른 요리들을 맛있게 다 먹은 뒤 멘보샤는 조금 남겨서 집에 싸가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무 맛있다. 남길 생각이 요만큼도 들지 않는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이제까지 내가 먹었던 멘보샤는 다 뭐였지?' 싶은 생각이 든다. 파사삭한 튀긴 빵 사이로 터져나오는 새우의 육즙과, 그 육즙을 한순간에 머금는 튀긴 빵의 조화가 완벽하다. 멘보샤를 원래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렇게까지 첫 음식에서 대박이 터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베어 문 조각을 다 씹어삼키자마자 아내와 나는 이구동성으로 "회원가입을 하자!"라고 일성을 내뱉었다. 이 멘보샤 생각만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오고 싶을 정도다. 훌륭하다.

그 다음으로는 어향가지. 잘 익었지만 결코 쪼글쪼글하지 않은, 탱글탱글한 식감의 튀긴 가지를 어향소스에 버무린 것이다. 어찌 맛없을 리가 있겠는가. 정신없이 들어가는 맛이다. 가지는 무릇 이렇게 먹어야 한다. 튀겨서, 소스에 버무려 볶아서 먹는 것이야말로 가지를 먹는 가장 훌륭한 방법들 중 하나이다. 마침 가지가 제철이라 그런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다음으로 밥이 곧 올 예정이라, 일부러 속도조절을 하면서 천천히 먹는다고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반절이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OX볶음밥이다. 이름으로 짐작컨대 아마 OX소스를 넣고 볶은 야채새우비빔밥인 듯하다. 딱 알맞게 입혀진 불 향에 더불어, 잘 익은 새우와 과도하게 익지 않은 야채들의 조화가 훌륭하다. 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셀러리가 유독 존재감을 명확하게 발휘한다. 나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이지만 유독 셀러리만큼은 향이 도저히 맞지 않아 싫어하는데, 이 안에 들어 있는 셀러리는 어찌나 맛있는지. 아삭한 식감과 함께 살짝씩 배어 나오는 자기주장이 OX소스의 맛과 무척 잘 어울린다. 이렇게 볶아 놓는다면야 셀러리 주구장창 먹겠다. 같이 나오는 달걀국도 기본에 충실하니 볶음밥의 맛을 잘 받쳐 준다. 

 

어떤 요리도 빠질 것이 하나 없는 훌륭한 식사였다. 다만 이렇게 세 그릇을 시켜 먹다 보니 아무리 먹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라도 배가 불렀다. 결국 그나마 남기기 좋을 법한(?) 어향가지를 살짝 남겨서 양념과 함께 집에 싸왔다. 나중에 전자렌지에 돌려서 먹었을 뿐인데도 그게 또 그렇게 맛있었다는 후일담을 살짝 적어 둔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식사, 최고야.

개방된 주방 안으로 무슨 요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고, 가게 내장도 살짝 오래 된 느낌이다 뿐이지 전반적으로는 깔끔하다. 우리 자리 바로 뒤에 '회원 방명록'이라는 것이 붙어 있었는데, 2번 회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연복 셰프의 존재감이 장난 아니다. 대가들도 즐겨 찾을 만한 반점임에도 나쁘지 않은 가격에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장점이다. 기분 내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대접하고 싶을 때 찾으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회원가입비 3만원을 내고 바로 회원가입을 신청했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