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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마포구 '최강금 돈까스'

by 집너구리 2022. 9. 11.

장기 휴가의 첫 날, 모처럼 아내와 함께 미용실에 갔다가 점심을 밖에서 먹기로 했다. 메뉴는 정하지 않은 채 그날 기분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메뉴를 정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아내의 머리가 다소 오래 걸린다 하여 나는 근처에서 헌혈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여기 우리가 맨날 궁금했던 돈까스 집에 사람이 별로 없네? 여기 가 볼래?"
나는 본디 돈까스 얘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종류의 인간인지라, 이 제안을 듣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돈까스 말고도 몇 개 메뉴의 후보는 있었다. 그러나 평일 낮이라는 황금 같은 기회를 저버리고 다른 가게로 가면 다소 아쉬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점심 메뉴는 돈까스로 결정되었다. 합정동에 있는 '최강금 돈까스'이다.


연희동-연남동-서교동-망원동으로 이어지는 라인에는 유독 일본식 음식점들이 많은데, 일본식 돈까스집들도 그 중 한 종류이다. 최강금 돈까스는 그 중 비교적 최근에 생긴 가게이다. 주말에 머리를 자르러 가면 늘 바깥 골목으로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어서 쉬이 발걸음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애매한 평일 낮이라 그런지 대기자가 고작 한 팀뿐이었다. 귀여운 돼지가 그려진 주의사항 안내판 옆으로 예약 키오스크가 준비되어 있다. 미리 인적사항과 메뉴를 고른 뒤 우리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이윽고 점원이 나와서 이름을 부르면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자리를 다 차려 놓은 뒤에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가게가 협소하고 사람이 많아 내부 사진을 찍기는 다소 어려웠지만, 가운데가 개방되어 있는 부엌이고 그 주위로 디귿자 모양을 한 카운터 형태의 식탁이 놓여 있다. 주방을 가운데에 놓고 둘러앉아 식사하는 형태다. 테이블에는 팀별로 칸막이가 쳐져 있고, 물병과 메뉴판, 생들기름, 함초소금이 놓여 있다. 메뉴판에 맛있게 먹는 방법이 적혀 있는데, 등심까스는 들기름과 함초소금으로 기름장을 만들어 찍어 먹는 것이 좋고, 안심까스는 단면 한가운데에 들기름을 한 방울씩 떨어뜨린 뒤 소금에 찍어먹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돈까스에 들기름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취식 방법이다. 서양의 영향을 받은 일본 요리인 돈까스가 급격히 한식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물병의 물은 차가운 페퍼민트 차이다. 아직 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터라 기분이 산뜻해진다.


주문이 미리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돈까스는 얼마 기다리지 않아 바로 나왔다. 아내는 안심까스를, 나는 등심까스를 시켰다. 돈까스가 나오기 전에는 먼저 흰쌀밥과 된장국, 그리고 각종 장아찌가 나온다. 장아찌는 단무지 대신인 듯하다. 된장국은 지리산 시래기와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것이라고 한다(점원에게 물어보니 정말로 직접 담근단다). 들기름에 이어서 다시금 돈까스에 한식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 된장국이 물건이다. 그냥 이 된장만 갖고 된장찌개나 된장국 전문점을 해도 될 듯하다. 시래기와 버섯이 들어 있는데, 잘게 잘라져 있어서 비주얼적으로는 일본식 미소시루와 다를 바 없다. 미소시루의 생김새를 했지만 맛은 한국식. 독특하고 멋지다.


그 다음으로는 기다리던 돈까스. 동그란 단면의 안심과 착실하게 비계가 들어간 등심의 단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진다. 기본적으로 겨자가 같이 나오기 때문에, 기분에 따라서 메뉴판의 안내대로 소금과 들기름을 찍어 먹어도 되고, 겨자에 찍어 먹어도 되고, 돈까스 소스를 찍어 먹어도 된다. 고기에 찰싹 달라붙은 튀김옷과 함께 한 입 베어무는 고기의 맛이 훌륭하다. 비계가 적절히 섞인 등심까스를 먹어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안심도 퍽퍽하지 않고 촉촉하니, 은근한 육향이 배어나온다. 돈까스를 무슨 성지순례하듯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먹어 봤다고 자부할 수준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먹어 본 돈까스 중에서는 상당히 맛있는 축에 속하는 듯하다. 의외로 들기름과 함초소금의 합이 고기와 잘 맞는 것도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담. 물론 정말 질이 좋은 고기라면 소금만 찍어 먹어도 맛있는 것이 맞지만, 자칫 느끼할 수 있는 튀긴 고기의 향을 들기름의 향으로 중화시켜 주는 느낌도 든다. 

 

식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지을 때쯤에는 오미자로 향을 냈다고 하는 요거트가 나온다. 상큼하지만 너무 달지 않아서 딱 좋은 느낌이다. 재미있게도 오미자 맛보다는 레모나 맛에 더 가까운 맛이 난다. 색깔은 오미자인 것 같긴 한데 무슨 조화인지 궁금하다.

간만에 맛있는 돈까스 한 끼를 했더니 기분이 퍽 좋아졌다. 등심도 안심도, 이 정도면 퍽 훌륭하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기본 된장국이 너무 맛있었던, 다소 독특한 가게였다고나 할까. 일본식과 한국식의 조화를 고민하려 노력한 흔적이 돋보였던 한 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