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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식물카페 '꽃꽃한 당신'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2. 11. 6.

모처럼 월요일에 휴가를 얻었다. 귀한 시간을 어떻게 쓸까 하고 고민하다가, 마침 집 근처에서 쏘카를 매우 싸게 빌릴 수 있는 쿠폰이 있어서 이것을 사용해 드라이브나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식덕이 된 이후로 늘 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너무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그곳, 동탄에 있는 식덕의 성지 '꽃꽃한 당신'으로 정했다. 

 

매양 집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계절 감각이 영 파투가 난 상태였는데 밖에 나와서 콧바람 쐬면서 드라이브를 하고 있자니 온 세상이 울긋불긋 가을 옷을 입었다. 고기리를 지나 용인 근교로 접어들면서부터 차도 별로 없는 고속도로에 단풍은 어쩜 그리도 온통 산을 뒤덮고 있는지. 티없이 푸른 하늘 아래로 유화처럼 펼쳐져 있는 선명한 단풍산의 모습을 한껏 즐기며 엑셀 페달을 재촉해 본다. 그건 그렇고 용인에서 바로 직선으로 쭉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행정구역이 화성이다. 안산 바로 남쪽에 붙어 있는 동네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화성이라니, 새삼 정말 넓은 동네기는 하다.

 

'꽃꽃한 당신'은 동탄신도시의 한적한 느낌을 주는 상가단지에 위치해 있다. 바로 맞은편은 동탄산업단지이고, 뒤로는 동탄 아파트단지들을 등지고 있는 곳이다. 오전 열한 시를 갓 넘긴 시간에 도착했더니 사람이 나 혼자뿐이다. 주위에도 뭐 딱히 사람이 있지는 않다. 가을의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가도 싶다. 깔끔한 외장은 뭇 식물 유튜버들의 영상 속에서 그토록 많이 봐 왔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이다. 안에도 다양한 식물들이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밖으로는 또 마침 가게 앞의 나무들 모습이 비쳐서 겉으로 보나 속으로 보나 그저 식물 공간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든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마주하는 녀석이 이거다. 던전 초입에 드래곤을 던져 놓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흔히 몬스테라 딜라체라타(Monstera dilacerata)라고 알려져 있는 녀석이다. 다만 큐 왕립 식물원의 데이터에 의하면 '몬스테라 딜라체라타'라는 학명은 흔하디흔한 에피프렘눔 피나툼(Epipremnum Pinnatum)의 동의어로, 이렇게 생긴 몬스테라 품종은 국제천남성과학회(International Aroid Society)에 의해 '버럴막스 플레임Burle Marx Flame'이라는 품종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학명이나 국제적 유통명과 국내 유통명이 다른 것은 늘 있는 일이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녀석이 여간 멋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연 잎 한 장에 100만 원은 족히 하는 희귀식물답다. 델리시오사 품종의 느낌이 나면서도 찢어진 잎 한가운데로 굵게 뻗어 있는 잎맥이 정말 불꽃 같은 느낌을 준다. 혹시라도 내가 식물님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하여 조심조심 주문을 하러 간다.

 

여기에서 또 양재꽃시장으로 이동할 계획이어서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려고 했는데, 샌드위치 같은 식사 대용 메뉴는 없고 마카롱을 비롯한 소형 디저트 종류를 주력으로 팔고 계신 듯하다. 일단은 졸음도 쫓고 당 충전도 좀 할 겸 바닐라 라테를 한 잔 시킨다. 내가 유일한 손님인 덕분인지 음료는 정말 금방 나와서, 커피 컵을 들고 찬찬히 가게를 둘러보면서 커피를 홀짝거릴 여유가 생겼다.

 

토분 코너가 카운터 왼쪽에 있다. 디어마이팟이라는 브랜드의 공식 판매처라고 한다. 유약분이 많이 남아 있는데,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내가 토분까지 사서 모으는 광기의 식물맨이었다면 여기서도 환장을 하면서 마구잡이로 사들일 뻔했다. 저 밥그릇처럼 생긴 것은 무려 이름이 '빙수 팟'이다. 빙수라도 있으면 대리만족이라도 했을 텐데!

 

곳곳을 둘러보면 그야말로 대품 식물의 향연이다. 이렇게 큰 크기로 식물을 키우시기까지 주인 분의 노고가 한번에 느껴지는 대목이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순간순간 내가 지금 식물을 집에다 들여놓고 키우는 것인지, 아니면 식물의 집에 내가 얹혀 사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곳이야말로 사람이 식물에게 얹혀 지내는 공간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방으로 들어오는 빛들 사이로 녀석들 하나하나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다.

필로덴드론 '화이트 위저드'(인 듯하다)Philodendron 'White Wizard'.
왼쪽 식물은 이름을 잘 모르겠고, 오른쪽은 몬스테라 두비아Monstera dubia. 무척 성기게 난 잎의 구멍이 야성적이다.
몬스테라 알보Monstera deliciosa var.borsigiana albo variegata. 수채화로 칠해 놓은 듯한 아름다운 무늬가 일품이다.
알로카시아 오도라 '오키나와 실버' Alocasia odora 'Okinawa silver'. 알로카시아과의 무늬종 중에는 얘가 제일 예쁜 것 같다.
이건 아마도 필로덴드론 스플렌디드Philodendron 'splendid' 같다. 잎을 저렇게 무식하게 크게 키울 수 있는 거구나...
할로윈 느낌을 내고 있는 귀여운 호박 모양의 토분들.
필로덴드론 '핑크 프린세스' Philodendron 'Pink Princess'. 이 정도면 '핑크 퀸'이라고 해도 되겠다.
필로덴드론 파스타짜넘Philodendron pastazzanum. 나도 덩치가 작은 사람은 아닌데 이 녀석 잎의 가로 길이가 내 몸 너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몬스테라 에스쿠엘레토Monstera epipremnoides 'Esqueleto'.
(좌) 따글따글하게 자라고 있는 필로덴드론 베루코섬Phil. verrucosum, (우) 아마도 히메 몬스테라 Raphidophora tetrasperma인 듯한데 잎이 저렇게 크다.
안스리움 베이치아이Anthurium veitchii. 하회탈 같기도, 빨래판 같기도 한 이파리가 재미있다. 저 잎 한 장에 한 1미터는 되는 것 같다.
무늬가 들어가 있는 몬스테라 델리시오사Monstera deliciosa 종류들. 
무늬 몬스테라 아단소니 Monstera adansonii variegata.
몬스테라 '버럴막스 플레임' Monstera 'Burle Marx Flame'. 전설적인 브라질 조경가 부를레-마르스의 리우데자네이루 자택에서 발견된 품종이라고.

한참을 식물 구경에 여념이 없다가, 마침내 한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위의 사진은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바라본 경치이다. 마치 식물원 한가운데에 들어와서 커피를 마시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정성을 잔뜩 들여 키워낸 아름다운 대품 식물들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각별하다. 왜 식물 유튜버들을 비롯한 다양한 식덕들이 이 곳을 오고 싶어하고, 또 계속 찾는지 알 것 같다. 이런 곳에서라면 몇 시간이고 식물을 바라보며 멍을 때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노트북을 가져와 작업을 하더라도 기분이나마 싱그러운 느낌을 맛보며 작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꽃꽃한 당신'에서는 짐작했겠지만 식물들을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별도로 마련된 온실 공간에서 식물을 확인하고 고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소 비좁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혼자뿐인 손님이다 보니 마치 전세를 낸 듯한 느낌으로 한참을 구경할 수 있었다. 무척 값비싼 식물들부터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입문용 식물들까지 제법 라인업도 다양하다.

옐로우 몬스테라 유묘들. 이 녀석들은 알보보다 더 비싸다.
안스리움 크리스탈리눔Anthurium crystallinum. 우리 집에는 이미 있지!
안스리움 럭셔리안스 Anthurium luxurians. 이렇게 가까이에서 실물을 뵙기는 처음이다.
안스리움 베이치아이 Anthurium veitchii. 직립한 것도 있거니와 다소 자유로운 영혼도 있어 재미있다.
안스리움 포게티아이 Anthurium forgetii.  잎자루 윗부분이 막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몬스테라 레클레리아나 무늬종 Monstera lechleriana variegata. 넓적하고 주름진 잎에 옹졸한 크기의 구멍이 줄지어 나는 흔치 않은 녀석이다.
싱고니움들이 참 많다. 나는 바틱이 그렇게 좋더라.
이쪽은 알로카시아와 필로덴드론 천지다.
핑크 프린세스는 확실히 조직배양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면서 가격이 떨어졌다는 느낌이다. 알로카시아 희귀종과 무늬종도 있다.
필로덴드론 루피넘 Phil. lupinum 과 필로덴드론 브랜티아넘 Phil. brandtianum. 브랜티아넘은 습도에 무척 까다로운 녀석이라고 들었다.
필로덴드론 토텀Phil. totum. 야자 같기도 하고 고사리 같기도 한 우아한 잎이 매력적이다.
초코리프, 소코라코, 바로크 벤자민 같은 흔한 관엽식물도 있다.
이것은 몬스테라 에스쿠엘레토. 벌써부터 제멋대로 잘도 자라나고 있다.

소위 '희귀식물'이라 불리는 열대관엽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면 이곳의 식물들을 노려 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당근마켓의 식물들은 질의 차이가 널뛰기를 하고, 식물마켓은 상당히 비정기적이며, 일반 화원에서는 열대 관엽을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판매하는 모종들의 질도 좋은 편이고, 점원에게 질문을 해도 상당히 친절한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식물 초보들에게 오히려 괜찮은 곳일 수도 있을 듯하다. 가격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도록 하겠다. 실제로 내가 시세에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각자 스스로의 지갑 사정에 맞춰서 판단하면 될 것이다.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식물들은 점원에게 물어보면 친절히 답해 주기 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말도록 하자.

거대하게 자라나고 있는 무늬 보스턴 고사리의 배웅을 받으며 '꽃꽃한 당신'을 나온다. 생각보다 너무나도 즐거운 경험이어서 이 근처에 올 일이 있다면 앞으로도 종종 들르고 싶은데, 동탄까지 오기에는 아무래도 일부러 발품을 들여야 해서 고민이다. 언제고 꼭 다시 올 날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