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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세계 성당 방문기

09. 한국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성당

by 집너구리 2023. 2. 5.
갑곶 순교성지성당
甲串殉敎聖地聖堂
등급 성당(본당)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35 (갑곳리)
관할 천주교 인천교구
찾아가는 길 강화터미널에서 버스+도보 25분, 김포골드라인 구래역에서 버스로 40분
미사 시간 평일(월-토) 11:00
토요일 특전 16:00~
일요일 11:00, 16:00

마침내 첫 한국 천주교회 성당입니다. 앞으로도 국내 여기저기에 있는 천주교 및 정교회 성당들을 '세계 성당 방문기'에서 같이 다룰 생각입니다. 

 

때는 2022년 연말, 연차휴가를 땡겨서 연말을 방탕하게(?) 보내고 있을 적의 이야기입니다. 늘 가 보고 싶었던 김포에 있는 난원까지 차를 빌려서 드라이브를 갔는데, 다 돌아보고 나서도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제법 시간이 남았습니다. 마침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강화도인데, 기왕 여기까지 온 거 강화도 한 번 찍고 갈까 싶어서 지도 앱을 켰습니다. 그런데 신강화대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갑곶순교성지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 거죠. 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강화도로 향합니다. 난원에서 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라서 거의 출발하자마자 도착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합니다. 분명히 '갑곶순교성지'라고 안내석도 있고, 현대자동차 순정내비도 이리로 안내하는데, 아무리 한겨울의 평일 낮이기로서니 차가 한 대도 없습니다. 이건 뭔가 이상한데... 싶은데, 일단 도착하기는 헀으니 차를 세워 두고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만, 현대차 순정내비를 따라가지 말고 다른 앱(예: 네이버지도)을 따라가면 무난하게 갑곶순교성지 주차장(!)으로 데려다 주더라고요. 

방금 지나온 강화대교가 바로 옆에 보입니다. 바닷가는 군사작전지역이라 내려갈 수 없습니다.

갑곶순교성지는 강화도의 수많은 요새들 중 하나인 '갑곶돈대'와 같이 묶여 있는 천주교 성지입니다. 고려 시절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강화도에 있는 왕실을 지켰던 요충지이기도 하고, 병인양요, 신미양요 당시의 격전지이기도 합니다. 박해 당시에 강화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효수되었던 순교지로서도 기념되고 있는 이곳은, 강화도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피로 물들곤 했던 아픔의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이야 평화로운 시대이고 누구나 다리를 타고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곳이지만요. 그래서일까, 아까 그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곳은 조선식으로 세워진 문루입니다.

강화외성 진해루(복원)

조선 시대 스타일의 문루이기는 한데 보다시피 마치 막 지은 것처럼 건물이 깔끔합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2020년에 와서 복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강화외성 주춧돌 위에 딱 문루를 세울 수 있을 만큼만 성을 쌓고 그 위에 누각을 올린 건데, 기왕 할 거면 아예 성을 다 복원하든지, 아니면 그냥 터만 남겨 놓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떡하니 문루만 서 있는 모습이 다소 초현실적입니다.

강회외성 구 통제영학당 터.

그 뒤로 펼쳐진 공터에도 비석이 하나 서 있습니다. 여기는 구 통제영학당 터입니다. 고종 시절에 근대적인 해군 교육을 위해 야심차게 영국군 교관까지 초빙해서 만든 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해군사관학교인 셈인데, 아쉽게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가 얼마 안 되어 폐지되었다고 합니다.

여기가 순교성지임을 알려 주는 표식 자체를 찾기란 쉽지 않은데, 한참을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십자고상을 발견했습니다. 뒤로 성모상도 있고, 부지 뒤쪽으로 이어지는 듯한 길이 보입니다. 저리로 걸어가면 되겠거니 싶어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주위에 쥐새끼 한 마리 없어서 매우 오묘한 기분이 듭니다.

눈 덮인 길을 무작정 걸어가 보니 그 끝에 이렇게 탁 트인 공터와 함께 거대한 예수상이 나타납니다. 이쯤 되니까 성지성당이라는 느낌이 좀 나네요. 날씨가 좋을 때에는 여기에서 집회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한 겨울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여기에서 예수상을 마주한 채 왼쪽을 보면 산책로 안내판이 있는데, 구강화대교로 걸어올라갈 수 있는 산책로입니다. 지금은 구강화대교를 도보길로 쓰고 있는 모양이예요. 예수상 앞에 서면 이렇게 신강화대교와 구강화대교를 한번에 조망할 수 있기도 합니다.

예수상 뒤로 올라오면 이렇게 우물터가 하나 있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어린이가 옆에서 어머니와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는데, "여기서 물이 나왔던 거야?" "하느님도 이 물 마신 거야?"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쉴새없이 엄마에게 질문하는 양이 귀엽더라고요.

그 뒤로는 십자가의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부지가 넓은 성지 구역이다 보니 이렇게 야외에 순례할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을 조성해 둔 것입니다. 서울이라면 중림동 약현성당에 가면 비탈길을 따라서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조성해 뒀습니다. 흥미롭게도 십자가의 길이 시작하는 곳쯤에 크고 작은 나무 십자가를 배치해 뒀습니다. 예수의 고난을 스스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인 모양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올라오면 이렇게 공원처럼 조성해 놓은 곳이 나옵니다. 십자고상 앞에 돌로 된 제대를 준비해 둔 곳도 있고, 초를 켜 두고 기도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둔 곳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순교하여 효수된 세 분의 순교자를 모셔 둔 곳입니다. 가서 무슨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장궤틀 위에 기도문이 다 붙어 있습니다.

야외 제대 뒤쪽으로 내려오면 산소 하나가 나옵니다. 기해박해와 병인박해를 모두 겪으면서 2대에 걸쳐 조선 정부의 눈을 피해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장하는 데 힘썼던 박순집 베드로의 묘입니다. 그의 활약 덕분에 150여 명의 순교자들이 어떻게 목숨을 잃고 어디에 안장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하니, 목숨을 건 그의 노력이 후대에 결국에는 빛을 보게 된 셈입니다.

 

박순집 베드로의 묘는 강화 해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묘 앞에서 바라보는 강인 척하는 바다의 풍경이 아주 훌륭합니다. 주위에는 갑곶돈대의 부속 건축물이라든지, 성당의 부속 건물들 같은 것이 위치해 있습니다. 성지성당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다소 뜬금없이 기도하는 예수상도 있습니다. 

박순집 베드로의 묘 앞에서 내려다본 강화해협.
(좌) 아마도 갑곶돈대 쪽 건물인 듯한 전통식 지붕. (우) 성당 쉼터 건물.
기도하는 예수상. 앞에 장궤틀이 있어서 마주보고 기도할 수 있다.
기념성당 바깥으로 이어진 길. 저 뒤쪽으로 보이는 검은색 건물들은 피정의 집이다.
갑곶성지 기념성당.

기도하는 예수상 오른쪽으로 계단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이렇게 기념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옵니다. 상당히 포스트모던하게 생긴 성당이라서, 지붕에 거대한 십자상이 있지 않다면 성당인 줄 모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입구가 좁고 성당 건물 한구석에 나 있기 때문에 처음 들어갈 때에는 그리 큰 성당은 아니겠거니 했습니다.

성전 앞 로비.
성전 내부.

생각했던 것보다 성당 내부는 제법 넓었습니다. 최근에 지어진 성당이라 그럴까요? 상당히 현대적이고 깔끔한, 여느 도시 지역의 성당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사무실 직원분들 외에는 성전 안에 사람이 전혀 없어서,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한 성전 구석에 앉아서 한동안을 가만히 있었습니다. 좋더라고요. 성당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이 안에 앉아 있기만 해도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퍼뜩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일어섭니다. 바깥에서 왁자하게 성지순례 온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으니 이제 슬슬 다시 왔던 길을 따라서 자동차를 대 둔 곳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뜻하지 않은 성지순례였지만 2022년의 마지막 마무리로는 제격이었습니다.

기념성당 옆에 서 있는 성모상도 보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