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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세계 성당 방문기

11. 한국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성당

by 집너구리 2023. 2. 26.
주교좌 남천성당
主教座南川聖堂
등급 대성당
소재지 부산 해운대구 수영로427번길 15(남천동)
관할 천주교 부산교구
찾아가는 길 부산메트로 2호선 남천역 2번 출구에서 도보 3분
부산메트로 2호선 금련산역 6번 출구에서 도보 9분
미사 시간 월 06:00
화-금 06:00, 10:30, 19:30
토요일 06:00, 특전 16:00, 19:30
일요일 06:30, 09:00, 11:00, 17:00, 19:00, 21:00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천주교인인가요? 만약 그렇다고 하면 당신은 주 1회 일요일마다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대도시에 주말을 껴서 출장이나 여행을 왔다고 가정합시다. 미사에 가야 하는데 뺄 수 있는 시간이 한 줌밖에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 대도시가 어떤 교구의 중심지라면, 주교좌 성당의 미사 시간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빠를 것입니다. 주교좌 성당은 보통 그 도시의 어디에서나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중심지에 위치해 있고, 무엇보다도 미사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천동 성당에 오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어중간하게 시간이 뜰 때는 주교좌가 최고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얼른 안으로 들어갑시다.

성당 건물 옆에 서 있는 수수께끼의 조형물.

자 이제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본당의 건물이 정말 독특하게 생겼습니다. 지금과 같은 본당 건물이 들어선 것은 1995년의 일로, 과연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건물입니다. 위에서 보기에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생긴 구조물입니다만, 북쪽 벽은 완전히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 둔 반면 남쪽 벽은 거의 전체에 걸쳐 사선으로 떠낸 듯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시간이 겨울날의 오후여서 빛이 많이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낮에 오면 장관이겠습니다. 유리 남쪽의 비스듬한 벽이 모두 유리창이기 때문입니다. 성당 바로 앞으로 지대가 낮은 간척지와 광안리 앞바다가 펼쳐져 있는 환경이라 주위에 빛을 막을 만한 것도 없습니다. 북쪽 벽에서 남쪽 벽을 마주보고 바라보면 이 유리창 전체에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늦어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습니다.

본당 성전의 규모가 딱 보기에도 제법 큽니다. 준공 시점에는 한국에서 제일 많은 수용인원을 자랑했다고 합니다. 아직 건물의 역사가 짧아 특기할 만한 점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만, 오히려 현대로 넘어올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겠습니다. 당장 명동만 해도 큰 축일 미사 때만 되면 본당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신자들이 주위를 메우곤 하니까요. 남천성당은 남천동에 대규모 주택단지가 생기면서 신자 수가 급증하였던 당시의 수요에 힘입어 기존의 주교좌인 중앙동성당에 더불어 제2의 주교좌 성당으로서 개축된 곳입니다. 이 건물을 짓기 시작했을 때와 마침내 완성됐을 때 부산 신자들이 느꼈을 감정을 추측해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가까이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규모는 작지만 묘하게 빨려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곳의 고해소도 벽장 모양의 부스로 되어 있는데, 성전 안으로 들어가기 전 복도에 놓여 있습니다. 부산에서 다녀온 두 곳의 성당 모두 고해소가 부스 형태를 취하고 있다 보니 부산 쪽은 이렇게 하는 게 일반적인 건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밖으로 나옵니다. 전체적으로 조망하건대, 한국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알 법한 서울대학교의 정문 모양과 묘하게 닮아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무엇을 형상하여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옆에 서 있는 KBS 부산총국 건물과 양식이 비슷해서 그런지 마치 형제마냥 잘 어울립니다. 현관에는 주보성인인 성 정하상 바오로의 상이 서 있습니다.

철없는 어른이는 '저 꼭대기에서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면 얼마나 걸릴까?' 같은 생각을 해 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동백나무가 사이사이에 심겨져 있습니다만, 동백은 벌써 끝물입니다.
성모동산

뒷마당으로 돌아서 한 번 들어가 봅니다. 건물이 워낙에 크기 때문에 뒷마당까지 가려면 제법 걸어야 합니다. 남쪽 유리벽 앞을 걸어서 뒤쪽의 성모동산으로 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안에서는 스테인드글라스로 보였던 유리창이 밖에서 보았을 때는 평범한 유리창 그 자체라는 사실도 소소한 흥미로움을 제공합니다. 선팅한 유리를 한 겹 더 해서 이중 유리창으로 만든 것일까요? 동백나무가 심겨진 야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성모상 앞으로 나오게 됩니다. 퍽 넓은 마당으로 꾸며져 있고, 바로 옆에는 유리 강당이 있어서 이곳에서 무언가 활동을 할 수도 있게 만들어 놓은 듯합니다. 

강당 건물 앞에 웬 종이 쪽지가 붙어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서 봤는데, 제목은 '성당에   가져와 고양이'입니다만 내용은 '성당에서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붉은색으로 인쇄한 부분이 햇빛에 반응해서 날아가 버린 탓에 글자가 이만큼밖에 안 남은 모양입니다. 성당 관계자들의 고충은 짐작이 갑니다만, 이래서야 의도가 완전히 반대가 되어 버렸으니 그저 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의도대로 이 글이 전달되려면 얼른 새로 뽑아다 다시 붙여 놓을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남천성당을 뒤로 하고 주차장을 지나 길거리로 나섭니다. 불교 사찰도 그렇고 신사 경내도 그렇습니다만, 종교적인 건축물 경내와 경외의 분위기 차이는 언제나 극명합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부산의 저녁 거리에 땅거미가 내려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