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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세계 성당 방문기

10. 한국 부산교구 해운대성당

by 집너구리 2023. 2. 12.
해운대성당
海雲台聖堂
등급 성당(본당)
소재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2로 20-3
관할 천주교 부산교구
찾아가는 길 부산메트로 2호선 해운대역 1번 출구에서 도보 7분
부산메트로 2호선 중동역 7/9번 출구에서 도보 11분
미사 시간 월 6:30
화-금 10:00, 19:30
토요일 10:00, 특전 16:00, 19:30
일요일 06:30, 09:00, 11:00, 19:30

정말 오랜만에 부산에 왔습니다.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겨울의 해운대 바다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해운대 바다를 보면서 호텔에서 먹고 자고 놀고 하는 생활을 보내다 보니, 가끔은 산책을 한 번 나가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행들은 아무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이길래 혼자 호텔을 나섰습니다.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 오히려 좋습니다. 

(좌) 해운대 성당의 입구. 오히려 성당 건물보다 부설 유치원 건물이 더 눈에 띕니다. (우) 부지 안으로 들어오면 본당보다 더 큰 교육관도 있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서울만큼이나 춥던 부산 날씨도 하루 자고 나니 제법 따뜻해졌습니다. 탁 트인 해운대 바닷가를 지나 해운대구청 앞으로 들어갑니다. 구청 옆의 골목을 조금 더 걷다 보면 '해운대성당'이라고 쓰인 큰 간판과 함께 알록달록한 건물이 하나 나타납니다. 사실 이 건물은 성당 본당이 아니라 부설 유치원인 해성유치원 건물입니다. 부지 안으로 들어가면 제법 넓은 주차장과 함께 동그랗고 위엄 있어 보이는 건물이 하나 나타납니다. 속지 마십시오. 저것도 본당이 아닙니다. 저건 교육관 건물입니다. 그럼 본당이 무엇인고 하니, 유치원과 교육관 사이에 서 있는 아담한 흰빛 건물입니다. 딱 보기에도 오래 되어 보이는 성당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교구장 기념 식수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의 성당이라는 느낌이죠?

교육관 옆의 공터에는 성모동산을 조성해 두었습니다.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성모상을 모셔 두었는데, 흥미롭게도 돌로 쌓은 단 구석구석에 공들여 가지치기한 나무들 하며 알록달록한 꽃양배추 화분 하며,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의 할머니 댁 돌담을 생각나게 하는 경관입니다. 한때 절을 열심히 다녔던 입장에서 보건대 오히려 성당보다는 절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입니다만, 오히려 이런 느낌도 저는 정겨워서 좋아합니다.

성모동산에 꽃양배추를 이렇게나 장식해 두었습니다. 순간 공양이라고 적을 뻔했네요.

성모동산을 등지고 돌아보면 해운대성당 본당 건물이 보입니다. 중동 쪽에 아직 오래 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한데, 해운대성당은 누가 보기에도 오래 된 듯한 느낌이 납니다. 고풍스럽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아담하고 고즈넉하다는 인상을 받기는 좋지요. 티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아래 서 있는 새하얀 성당 건물은 언제 어디서나 볼거리입니다. 입구에 주임신부님 명의로 대문짝만하게 '구조안전 위험시설물 알림'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는 점은 좀 무섭기는 하지만요. 무려 1964년에 세워진 건물이라고 하니, 거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 셈입니다. 오히려 이 소금기 가득한 바닷가에서 60여 년을 잘도 버텼다 싶어지는 대목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해운대성당 성전 건물. 1964년 건립 이후로 모습이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당 내부의 모습. 가고시마 교구 대성당과 유사한 구조입니다.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 부채꼴 모양으로 의자가 배치된 극장 형태의 예배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이런 모습의 성당을 본 적은 거의 없고, 오히려 일본에서 종종 보던 배치 양식입니다. 예전 자료를 찾아보니 적어도 2015년경까지는 제대 뒤쪽 벽이 타일 벽화로 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지금은 거대한 십자고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슨 연유로 타일 벽화가 사라졌는지, 그 때의 그 타일 벽화는 어디로 갔는지 등의 의문이 지금에 와서 머릿속을 헤집고 있습니다만, 남아 있었다면 그야말로 해운대성당만의 독특한 느낌이 살아났을 터인데 다소 아쉽습니다. 

천장에는 항아리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단순명료한 형태의 샹들리에가 여럿 달려 있고,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형상 한가운데에 날아가는 새 한 마리를 조각해 두었습니다.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적에 비둘기의 형상으로 내려왔던 성령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성전의 한구석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있습니다. 이 계단이 또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나선형 층계참입니다. 요즘은 이런 층계참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해도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사용하지 못하게 해 두는 경우가 많은데, 해운대성당의 나선형 층계참은 전혀 문제 없이 개방되어 있습니다. 한번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일행과 합류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선화로 그려져 액자에 담겨 있습니다. 앞에서 참고했던 자료에 따르자면 예전에 있던 제대 벽 판화를 만든 신부님이 '십자가의 길'도 판화로 작업하셨다고 합니다. 간결한 필치이지만 상황을 명료하고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해소는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계단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많은 성당들이 고해소를 건물에 부속된 방의 형태로 짓고 있는데, 해운대성당의 고해소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장롱 세 개를 엮어 놓은 것처럼 생겼습니다. 고해소 꼭대기에 붙어 있는 전등불이라거나, 고해소 이용 요령을 적어 놓은 쪽지 등은 여느 성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국식 장지문 모양을 차용한 듯한 고해소 문의 장식이 오래 된 예배당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성당을 돌아다닌 경력은 짧지만 가장 인상적이고 독특하다고 느꼈던 것은 바로 이 '기도 부탁합니다'라는 명패가 붙은 화이트보드였습니다. 기도 제목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화이트보드에 붙여 두면 누군가가 이걸 보고 같이 기도해 주는, 일종의 전언판 같은 물건입니다. 기도제목이랄지, 소원수리 목록이랄지, 진지한 고민부터 '이러이러하게 되게 해 주세요' 류의 소원들까지 다양하게 적혀 있습니다. 개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적어 둔 '유튜브 채널 잘 되게 해 주세요. 주님도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려요'라는 포스트잇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기복신앙적인 문구이기도 한데, 동네 친한 어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부탁하는 느낌으로 적어 둔 걸 보니 신을 상당히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 생각해도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로비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퍽 오래 된 건물 안에서도 그래도 나름대로 잘 꾸며져 있는 로비를 통해 밖으로 나옵니다. 옹기종기 모여 서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교인들을 뒤로 하고 성당을 나섭니다. 가볍게 나왔던 아침 산책 중 이렇게 멋진 성당 건물을 발견하게 되어 기분이 퍽 좋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여기에서도 한번 미사에 참례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다만 바라건대는, 오래 되어 이곳저곳 앓기 시작한 이 건물이 앞으로도 잘 수리되어 오래도록 이 자리에서 이 모습을 잘 지켜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이미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너무나도 소중한 현대 문화재들을 너무나도 쉽사리 잃어버렸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