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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식물

독특한 식물을 파는 가게 '플랜트오드'에 다녀와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3. 5. 21.

※ 주의. 사진이 다소 많고 말이 다소 적을 수 있습니다.

 

마침내 불어오는 바람 속에 온기가 깃들기 시작한 4월 초의 어느 주말, 드디어 플랜트오드를 찾았다. 회사에서도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고, 새로 이사온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지만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좀처럼 기회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 아내가 토요일에 외출을 하게 되어, 그 김에 따라나서서 플랜트오드에 가 보기로 했다. 좁다란 부지에 적벽돌로 마감해 세워진 멋들어진 협소건물 전체가 플랜트오드이다. 지하 1층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고, 1층과 2층이 식물 판매 공간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3층이 카페였다는데, 3층은 지금 공간 정리 중이라 올라가기 어렵다고 한다.

문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이런 멋들어진 광경. 식물로 가득한 공간 안으로 들어갈 때만큼 식덕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도 잘 없다.

1층은 주로 코덱스(caudex)라고 부르는 괴근식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식물같이 생긴 모든 것이 괴근식물은 아니라 선인장 모양의 문진, 괴근식물 모양의 오브제 같은 것도 있다. 괴근식물과 장식품이 서로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절묘하게 섞여 있는 것이 더욱 유쾌하다. 물론 화분이나 분무기 같은 식물 관리용 굿즈 같은 것들도 확인할 수 있는데, 브랜드가 있어서 비싼 녀석들도 종종 있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이 장식물이 정말 귀엽다. 재현도가 무척 높아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식물 키우기가 어려우신 분들은 이런 장식물은 어떠신가요. 이 정도 모양새의 잎으로 키워냈을 때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심지어 가격도 합리적인 편이다.

구석구석에 이렇게 식물들이 놓여 있는데,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스테라 두비아는 역시 키우기 어려운 것 같다. 사장님 원하는 대로 좀 타고 올라가 줘.

2층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예쁘게 꾸며진 공간이 나타난다. 큼지막한 무늬 안스리움과 아기자기한 다른 식물들, 간간이 놓여 있는 오브제가 무척 잘 어울린다.

건포도 덩어리 같은 것이 나무 판때기에 붙어 있지만, 이건 건포도가 아니고 불보필룸(벌보필룸, Bulbophyllum)의 한 종류이다. 그러니까 난초 종류인 것이다. 정확한 명칭은 불보필룸 폴리쿨로숨(Bulbophyllum polliculosum)이다. 이딴게... 풀...? 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식물의 세계는 역시 정말 다양하고 독특하다.

아까 그 건포도(?)뿐만 아니라 이렇게 많은 난초들이 목부작되어 전시되어 있다. 모두 판매하는 물건들이다. 다 같은 부작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속 단위까지 같아도 생김새가 이렇게까지 다른가 싶은 난초들이 많다.

보석란도 있다. 이파리에 새겨진 잎맥이 무슨 보석을 보는 것 같아서 유통명이 보석란인데, 진짜 무슨 룬 문자 같은 것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는 데다가 미묘하게 그라데이션까지 들어가 있어서 더욱 아름답다. 사람 홀리는 식물들의 대표 주자.

 

플랜트오드의 또 한 가지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테라리움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비단 테라리움 그 자체뿐만 아니라 테라리움을 만들기 위한 식물재료나 식재 같은 것들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이끼 같은 것을 구하고 싶은데 직접 보고 고르고 싶은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곳이다. 예쁜 유리병 안에 빛을 받으며 크고 있는 테라리움 속 이끼나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홀리거든. 

 

 

한참을 지상층에서 식물 구경을 하다가, 지하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사실은 반지하에 가까운 공간이라, 아래로 내려오면 사방에 뚫린 채광창을 통해 빛이 한껏 지하로 들어온다. 여기에도 큼지막하고 싱그러운 식물들이 인테리어에 맞게 구석구석 배치되어 있는데, 다시금 이곳 사장님의 인테리어 감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만큼 식물과 가구의 조화가 대단하다. 

에티오피아 구지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한 입 머금었을 때 마시기 딱 좋은 온도였다는 점이다. 홀짝홀짝 마시기 좋은 온도에 향기롭게 잘 내려진 커피를 마시며 식물들을 둘러보고 있으니 무슨 신선놀음이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치되어 있는 잡지 같은 것들을 읽기도 하고, 사장님과 몇 마디 나누기도 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망중한을 만끽할 수 있었다. 프로젝트에 출장에 이사까지 쉴새없이 몰아쳤던 일들이 마치 없었던 듯, 한껏 한가함을 즐기며 이파리 아래에 앉아 빛이 비치는 창문을 내다보는 기분이란. 봄이 가고 본격적으로 여름이 다가오는 지금이지만, 언제고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이곳에 들러서 그 기분을 느껴 보시기를 바란다. 하다못해 비가 올 때면, 또 비가 오는 대로 즐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