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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1005 Taiwan

대만유람기 2019 (12) : [4일차] 후끈후끈 베이터우 온천과 천상의 훠궈 칭화자오

by 집너구리 2021. 4. 18.

신베이터우 역에서 지열곡까지, 더위 속에서 더위를 찾으러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단수이 역에서 다시 단수이신이선 전철을 타고 우리가 향한 곳은 베이터우北投 온천이었다. 베이터우 역까지 가서 전철을 한번 갈아타고 한 정거장 타면 신베이터우新北投 역에 닿는다. 본래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 군인들의 휴양소로 개발된 온천지대로, 상당히 최근까지도 그때부터 내려온 사창가가 있었지만 천수이볜 총통이 집권하면서 전부 밀어버리고 건전한 온천 휴양지로 재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천수이볜의 여러 정책에는 물론 비판받을 만한 구석들도 있었겠지만, 이 정책만큼은 그가 상당히 앞을 내다보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 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베이터우 역과 신베이터우 역을 왕복하는 지선열차는 3량짜리 몽당열차인데, 재미있는 것은 겉과 속이 모두 화려뻑적지근하게 꾸며져 있다는 사실이다. 베이터우 온천을 광고하기 위한 것인지, 내부는 마치 온천 욕장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목재 재질로 온통 꾸며져 있으며, 외부에는 베이터우 온천에 대한 정보들을 화려한 그림으로 그려 두었다. 기차를 타면서 바로 받는 환영치고는 참 요란한 셈이지만, 이제부터 온천 관광지를 간다는 나름대로의 즐거움은 이 열차를 타는 순간부터 이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좌) 베이터우 온천과 원주민 문화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열차의 바깥 도장, (우) 차내에는 이런 식으로 욕조를 모티프로 한 듯한 안내 화면이 장식돼 있다.

 

신베이터우 역에서 내려 온천가 쪽 출구로 나오면 제일 먼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구 신베이터우 역을 재현해 둔 전시물이다. 타이베이 첩운이 들어오기 이전에 이곳은 타이완 철로관리국 소속의 국철 신베이터우선이 들어오던 곳인데, 무려 1916년부터 기차가 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의 모습과 당시 다니던 객차 차량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둘러보고 나면 서북쪽으로 작은 차양지붕이 눈에 띈다. 얼핏 봐서는 일본 신사 앞의 손 씻는 약수터(手水舎, 데미즈야/초즈야)처럼 생겼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네모진 대야 안에 마치 포석정을 연상케 하는 물길 모양이 새겨져 있다. 여름에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겨울이라면 이 대야에서 김이 펄펄 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대야에 흐르는 물은 온천수인 것이다! 손을 대 보면 뜨거움이 느껴질 정도인데, 이 대야에 새겨진 물길 모양은 우리가 이제부터 거슬러 올라갈 개울인 '성천星川'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조형물이지만, 나름대로 이곳 마을을 한번에 조망할 수 있도록 신경쓴 부분인 것 같았다.

신베이터우 역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는 구 신베이터우역을 재현한 조형물. 왼쪽에는 전시관도 조촐하게 마련되어 있다.
'성천정'에서는 이 마을을 흐르는 온천 개울인 '성천'의 선형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돌 대야에는 온천수가 흐른다! 그리고 날씨는 엄청 맑고 더웠다.

날씨는 이제 확실히 '더위'라고 느껴지는 정도였다. 낮 세 시의 베이터우는 쨍한 하늘을 자랑했다. 신베이터우 역에서 이 동네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 '지열곡'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제법 거리가 되는 경사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 10월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아내가 "내가 8월에 왔을 때는 지열곡이 너무 더워서 숨도 못 쉴 정도였다"고 하도 겁을 줘서, 올라가는 길이 마냥 두렵기만 했다. 그래도 간간이 흥미로운 시설들이 있어서, 간간이 들어가 관람을 하면서 숨을 돌리곤 했다. 이를테면 구 일본군이 쓰던 대형 공중목욕탕을 재개발한 '베이터우 온천박물관'. 비교적 최근까지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는 이곳은 옛 목욕탕 시절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활용하여 전시공간을 꾸미고 있었다. 베이터우 온천의 역사를 다룬 전시물들부터 예술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전시관까지 제법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기는 했는데,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이곳저곳이 막혀 있다 보니 동선은 썩 편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또 비교적 작은 규모의 목조 건물인 '베이터우 매원'도 들어가 보았는데, 이곳은 대만의 전설적인 가수이자 '첨밀밀'을 부른 것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가수 등려군의 생애를 기념하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앞에서 온천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호객을 하는데, 수영복을 빌려야 하므로 번거로워서 일단 패스.

 

지금도 일본의 지방 도시에 가면 간간이 남아 있는 형식의 양관 스타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욕조도 그 때 그대로이다.

 

여기에서 조금 더 개울가를 따라 걸어올라가면 뭔가 익숙한 유황 냄새가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대문짝만하게 돌에 새겨진 '지열곡'이라는 한자가 유황 냄새와 함께 관광객을 반긴다. 아내가 "어 이상하네... 여기서부터 슬슬 더워져야 하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듣자하니 한여름에는 이미 여기서부터 엄청난 양의 열기가 바람을 타고 내려온단다. 10월이라 더위가 한풀 꺾인 것인지, 아니면 이날따라 지열곡이 좀 덜 뜨거웠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입구부터 찌는 듯한 더위가 우리를 엄습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옆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실개천에서 김이 펄펄 나고 있다는 점만큼은 저으기 이채로웠다. 일본 규슈의 온천도시 유후인에서도 겨울이 되면 가끔씩 개천에서 김이 올라오기는 하지만, 한여름 날씨인데도 펄펄 끓는 수준의 온천물이 내려오는 것을 구경하는 경험이란 쉬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3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면 마침내 커다란 온천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생각보다 덥지 않다. 그저 아래쪽보다 조금 따뜻한 느낌? 아내가 상당히 민망해하며, "아니 이렇게 시원하지 않은데...?"라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는 것이 퍽 재미있었다. 그렇게 겁을 줬는데 고작 이 정도야? 하는 핀잔을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까 신베이터우 역 근방보다는 확실히 덥기는 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온천 연못에서 김이 펄펄 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덥지 않더라도 느낌상 '아 뜨겁다'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침 주변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수면에 끼어 있던 김을 훅 하고 산 아래쪽으로 밀어냈다. 저으기 장관이다.

지열곡으로 올라가는 입구. 유황 성분 탓인지 개천에 깔린 돌의 빛깔이 벌써 주위와 다른 시커먼 색이다.
마치 자연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욕조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다. 한여름인데도 펄펄 끓는 온천이란!

 

김이 절절 올라오는 온천연못을 관찰하는 것은 캠프파이어 모닥불을 멍하니 들여다보는 행위와 상당 부분에서 맞닿아 있는 듯했다. 말하자면 아스라이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어느덧 네 시에 가까워 오고 있었다. 온천욕을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려면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한다. 아쉽지만 지열곡을 뒤로 하고 터덜터덜 베이터우 온천길을 다시 걸어내려왔다. 중간에 케타갈란 원주민 문화관에 들러 이 지역의 원주민인 케타갈란 족의 문화자료를 구경하기도 했지만, 사진을 찍어 놓은 게 별로 없다는 것을 지금 이 여행기를 쓰면서 새삼스레 발견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케타갈란 원주민 문화관에서 찍은 사진...

 

베이터우 온천호텔 '톈위에'에서 온천 체험하기

 

우리는 딱히 이곳에 숙소를 잡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동네의 온천호텔에서 단시간 동안 온천욕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내가 대학 시절에 왔던 온천호텔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해 아직도 확실하지는 않기는 하지만, 근처에 있던 온천호텔 '톈위에天月'로 들어가서 1일 온천 체험을 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들어간 온천호텔 '톈위에'. 들어가서 온천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하면 직원이 이런 가격표를 보여 준다.

 

호텔 프런트에 가서 직원에게 '원데이 온천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하면, 친절한 직원이 영어로 된 가격표를 보여 준다. 우리는 숙박 없이 개별욕장만 사용하겠다고 이야기했고, 계산이 끝나자 직원이 어느어느 층으로 가라고 안내해 주면서 열쇠를 건네 주었다. 보아하니 욕장만 사용하는 고객을 위한 층과 숙박하는 고객을 위한 층이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또 온천욕을 마치고 나서 즐길 수 있도록 호텔 식당의 디저트권을 하나씩 건네 주기에, 이따가 온천욕을 끝내고 한번 가 보기로 하였다.

 

직원의 안내대로 찾아간 개별욕장에 들어가 문을 열어 보니,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말리거나 할 수 있는 화장대와 두 개의 커다란 석조 욕조, 화장실, 옷가지를 개어 넣을 수 있는 바구니와 의자, 바가지와 수건 등이 놓여 있었다. 마치 공중목욕탕을 조그마하게 만들어 놓은 듯한 구조였는데, 제법 이곳저곳에 신경을 쓴 듯한 흔적이 보였다. 물은 담겨 있지 않아서, 먼저 물을 틀어 놓고 나서 찬찬히 욕장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물은 무척 따뜻하면서도 미끈미끈해서, 그야말로 온천을 한다! 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욕조에 몸을 담그고 놀고 있자니, 오래 걸어서 부은 다리의 피로가 점차 풀리는 것이 점차 느껴졌다. 역시 힘들고 지칠 때는 온천을 해야 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온천에 가고 싶어 미칠 것 같다. 망할 코로나 도대체 언제 없어지냐.

 

개별욕장은 이렇게 생겼다. 이게 대만이야 일본이야?

 

아내의 말로는 욕조나 방 안의 생김새 자체는 지난번에 갔던 온천 호텔과 거의 유사한데, 뭔가 분위기가 달라서 그때 그 호텔이 맞는지 잘 모르겠단다. 나야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온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을 뿐이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온 우리는 아까 받은 디저트권을 써 보기 위해 호텔 카페로 향했다. 표를 보여 줬더니, 그날 무료로 먹을 수 있는 디저트와 음료 메뉴를 보여 주기에 나는 커피와 파운드케이크를, 아내는 홍차와 레몬 무스 케이크를 시켰다. 커피와 홍차는 꽤 준수한 맛이었고 파운드케이크도 나쁘지 않았는데, 문제는 레몬 무스 케이크였다. 뭔가 비슷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한데, 여기저기 빠진 부분이 너무 많아 허전한 느낌을 주는 맛이었다. 나름대로 오픈 키친에서 파티시에들이 열심히 만드는 모습이 들여다보이기는 했는데, 호텔 카페에서 먹는 디저트치고는 저으기 아쉬운 한 입이었다고 할까.

 

 

(좌) 적잖이 아쉬웠던 호텔 디저트. (우) 승강장으로 올라오니 벌써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타이베이 애니메이트에서 체험한 오타쿠 공용어 일본어의 위력

 

신베이터우에서 전철을 타고 다시 타이베이 중심가로 돌아온 우리는 벼르고 있던 훠궈 가게 '칭화자오青花椒'를 찾았다. 그러나 대기 시간이 4-50분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단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걸어 놓은 뒤 근처를 잠깐 돌아다니기로 했다. 마침 칭화자오 근처에 애니메이트 타이베이점이 있다고 하여, 그곳으로 일단 발걸음을 옮겼다.

 

 

 

애니메이트 타이베이점은 첫날 갔던 시먼딩 바로 건너편에 있다. 칭화자오에서 전철로 두어 정거장 정도 떨어져 있다. 시먼 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조금 걸어가다가 나오는 큰 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지하1층 전체를 쓰고 있는 듯 커다란 매장이 눈에 들어온다. 나와 아내는 모두 아이돌 마스터(아이마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이마스 쪽 가판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런 매장에 오면 으레 가 보곤 하는 중고 피규어 매대 쪽으로 가 보았다. 우연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하나인 아이돌 마스터의 키사라기 치하야의 소형 피규어가 눈에 띄어, 이 친구를 타이베이 기념품으로 사 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일본 출장을 뻔질나게 다닐 적에는 출장 갈 때마다 미니 피규어를 하나씩 사 모으던 것이 버릇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그일환으로 구매하게 된 것이다.

 

시먼딩 거리에까지 이렇게 모에화 캐릭터를 그려 놓은 타이완 당신들은 대체...
라신반과 같이 운영하는 애니메이트 매장이라, 중고 제품들도 제법 있었다. 물론 오른쪽의 매대는 신품들이다. 사랑해요 아이마스!

계산대에 가서 점원에게 계산을 요청하려고 하는데, 타이베이에서 으레 하던 것처럼 영어로 계산을 부탁했더니 점원이 상당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영어로 말을 거는 손님이 거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점원 자신이 그저 영어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것인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허둥대던 그는 한동안 금전출납기 앞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무언가 안내 가이드 같은 것을 찾아 내게 건네려 하며 "잉글리시? 코리안? 재패니즈?" 라는 외마디(?)를 던졌다. 순간 꾀가 발동한 나는, 어차피 이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긴 튼 것 같고, 그렇다면 더욱 마이너한 한국어는 더더욱 못 할 것 같아 일본어로 대답해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어로 "그럼 일본어로 부탁드려요."라고 이야기했더니, 단번에 점원의 표정이 확 피는 것이 훤히 보였다.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점원이 흠잡을 데 없는 일본어로 말했다. "아, 일본어로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의 목소리 톤이 이렇게나 극적으로 바뀔 일인가 싶어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데, 점원도 자기도 웃긴 모양인지 연신 낄낄거렸다. 마치 도쿄 애니메이트에서 계산하는 듯한 느낌이 들 만큼 자연스러운 일본어 응대가 이어졌다. 하도 점원이 일본어를 잘 하기에 일본계 직원인가 하여 명패를 흘긋 봤는데, 그냥 중국계 성씨였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황HUANG'씨 성을 가진 그는 우리가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 하자 "아리가또고자이마시따! 땡큐!"를 외치며 유쾌하게 배웅해 주었다. 과연 오타쿠의 공용어가 일본어라는 우스갯소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것도 타이베이 한복판에서 경험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최강의 훠궈, 칭화자오

 

애니메이트에서의 기상천외한 경험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칭화자오에 도착했다. 다녀오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앞의 손님들이 재빨리 나가기라도 한 것인지 곧바로 자리에 안내받을 수 있었다.

 

 

구글 지도에서 위치를 검색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대목이기는 한데, 사실 이 가게는 우연히 발견한 것에 가까웠다. 이틀차에 갔던 동파육 전문점 '까오지' 바로 옆 칸에 위치해 있는 가게인데, 별 생각 없이 궁금해서 검색해 봤더니 평점이 무려 4.5점이었기에 한번 가 보자고 계속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게 내부는 한국에서도 고급 훠궈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형태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하이디라오 같은 대형 체인점이 아니고, 역삼동의 'ㅂ' 가게 같은 곳처럼 은은하고 어두운 불빛 아래 고급진 인테리어로 장식된 점포 안에 사람들이 저마다 훠궈 냄비를 끼고 앉아 연신 먹거리를 담갔다 뺐다 하고 있는 느낌이다. 시스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메뉴판을 가지고 온 점원에게 탕의 종류와 먹고 싶은 재료를 주문하고 난 뒤 소스를 직접 만들어서 갖고 와 재료들을 익혀 먹는 식이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흔히 아는 홍탕과 백탕 외에, 점원이 뭔가 독특한 탕 하나를 추천해 주는 것이었다. 점원의 말로는 '절인 배추를 사용해서 끓인 일종의 백탕인데, 깔끔하고 님들 같은 한국 사람들이 좋아해요'라는 것이었다. 마라맛에 진심인 우리 부부는 백탕은 그다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었기에, 그렇다면 백탕 대신 그 절인 배추탕을 달라고 주문하였다. 재료는 버섯과 야채, 양고기, 완자 등등 평소에 훠궈로 해 먹기 좋아하는 녀석들을 시켰다. 재미있게도 공기밥을 원하면 무료로 준다고 하기에, 일단 한 그릇씩 시켜 보기로 하였다.

 

과연 별점 4.5점이 아깝지 않은 식사였다. 재료들은 하나같이 신선했고, 홍탕과 백탕의 조화도 훌륭했다. 특히 백탕이 정말 재미있었다. 절인 배추로 끓였다기에 반신반의하며 시켰더니 처음에는 시큼한 맛만 나며 영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백탕에 익힌 재료들을 밥과 같이 먹어 보았더니, 마치 맵지 않은 김치찌개를 먹는 듯한 상당히 익숙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이래서 한국인들이 환장하는 맛이라고 했구나 이 자식들! 절인 배추가 마치 백김치 같은 맛을 내다 보니 첫 맛이 산미였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또 따로 시킨 옥수수도 제법 별미였다. 옥수수야 뭐 다 비슷비슷할 것 같았는데, 아내가 "예전에 홍콩 가서 먹었던 옥수수가 너무 맛있었어! 이쪽 옥수수는 뭔가 종자가 다른 것 같아. 한번 시켜 보자"고 하기에 속는 셈 치고 시켜 본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요 녀석이야말로 한국에서 먹는 찰옥수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말하자면 기대하지 않았던 종류의 '진한 단맛'이 나는 옥수수였던 것이다. 옥수수가 아니라 무슨 독특한 과일 종류를 먹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강화된 옥수수 향에 더불어 상큼한 단맛이 세게 치고 올라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과연 한국에서는 옥수수를 쳐다도 보지 않는 아내가 굳이 추천하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먹은 훠궈가 너무 맛있어서, 우리는 하염없이 음식을 입으로 집어넣으며 '다시는 하이디라오 안 간다'는 다짐을 연신 박았다. 실제로 계산서를 받고 나서도, 그렇게 미친 듯이 먹었는데 하이디라오에서 평소 나오는 가격보다 더 적게 나온 것이 눈에 보이다 보니 더욱 하이디라오는 성에 차지 않게 된 것이다. 눈만 쓸데없이 높아져갖고는 참.

 

소스는 여느 훠궈 전문점처럼 직접 섞어 만든다. 홍탕은 우리가 흔히 먹는 마라탕 국물, 백탕은 당근과 절인 배추,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우리가 시킨 재료들. 고기는 양고기로 두어 번 시켰다. 후식으로는 구기자 푸딩이 나온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한 번 더 전날 갔던 마사지 샵을 들러 마사지를 받았다. 이틀 연속으로 오니 마사지사님들이 더욱 반가워하며, 더욱 신경을 써서 마사지를 해 주셨다. 온천에다가 마사지까지 받고 나니 더욱 힘이 솟았지만, 다음 날을 위해서 일단은 일찍 잠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체크아웃도 해야 하고, 게스트하우스 외부에 나가서 아침을 먹어야 하는 날이니까.

 

나흘 남짓 정들었던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간다.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를 보며 멍하니 밖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