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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1005 Taiwan

대만유람기 2019 (14) : [5일차] 철덕의 천국 장화의 원형차고지, 가오메이(고미)습지의 아름다운 노을과 밤의 타이중 궁원안과

by 집너구리 2021. 5. 16.

철덕의 성지 장화 원형차고지, 그리고 뭔가 애매한 음식 로우위안

 

춘수당 버블티를 마시며 설렁설렁 타이중 역으로 걸어가는 길은 여전히 더웠다. 타이중이라는 거점도시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타이중 시내보다는 주위의 다른 지역들을 조금 더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이 향한 곳은 국철 타이중 역에서 구간차(완행열차)로 20분 남짓 걸리는 도시 '장화彰化'였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만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는 유명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의 배경지이자, 철덕들에게는 아시아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원형차고지가 소재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장화행을 결정할 때 아내는 큰 감흥이 없었지만, 철도를 좋아하는 내가 아내에게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하여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의견을 아무런 딴지 없이 받아들여 준 아내에게 정말 고맙다.

장화역에 내리는 순간 최소 20년 이상은 이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장화역은 소위 말하는 '바로타' 구조로 되어 있어서,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개찰구로 나아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날씨가 다소 흐린데다가 역사 내부는 물론이고 역 밖의 거리까지도 유달리 오렌지색이 많이 보인 탓에, 장화라는 도시의 첫인상은 1990년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는 쇠락한 동네라는 느낌이 컸다. 장화역에서 원형차고지로 가기 위해서는 역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꺾어 골목길을 제법 걸어올라가야 했는데, 도중부터 도로의 포장이 심하게 깨져 있는 통에 마치 시골 비포장도로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안산에 살던 시절에 수인선 연선을 도보로 답사했던 경험이 생각났는데, 당시에는 수인선이 재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오이도역에서 달월역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온통 흙밭이었다. 그때 걸었던 수인선 철로 옆길은 아직 아무런 인프라도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상태였지만, 장화 원형차고지로 가는 길은 번영했던 도시의 뒤안길을 보는 듯한 아련한 느낌마저 주었다.

 

장화 원형차고지는 지금도 사용되는 차량기지이지만 대부분의 시설이 일반에 공개돼 있다. 1922년에 세워진 건물이 지금도 있다.
탁 트인 공터에 부채꼴 모양으로 철로가 이어져 있고, 기관차가 십여 대씩 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검차구에는 사람이 못 들어가게 되어 있다.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타이완철로관리국의 디젤 동차들. 부채꼴 선로 가운데에 회전하는 차량 거치대가 있다.

 

장화 원형차고지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에 세워진 원형차고지(Roundhouse)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철도 차량기지는 직선형 선로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데, 후진을 하지 못하는 증기기관차가 주류를 이루던 예전에는 증기기관차를 회차하여 반대편 선로로 넣기 위해서는 고리선(loop line)을 선로의 말단에 설치하거나 차량거치대에 기관차를 실은 뒤 180도 회전시켜 주는 절차가 필요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대부분의 객차들도 한 방향으로만 운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회차 설비는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고리선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넓이의 땅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자연스레 증기기관차 차량기지는 회전하는 차량거치대를 중심으로 부채꼴의 배열을 띄게 되었다. 1940년대 이후로 양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객차를 비롯하여 디젤 동차와 전동차가 철도차량의 대다수를 점하게 되면서 새로 건설되는 차고지는 원형으로 더 이상 건설되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 곳들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그 중 장화에 있는 이 원형차고지는 일반에 관광지로서 공개되어 있으면서도 실제로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몇 안 되는 원형차고지이고, 따라서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차량들과 지금은 퇴역한 차량들, 그리고 100년은 족히 되는 차고지 건물들이 어우러져 무척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얼마나 오래 된 티가 나느냐면, 검차구 벽은 아주 오래 전부터 쌓인 검댕들로 인해 이미 예전에 무슨 색이었는지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고, 직원 숙소로 세워진 듯한 구석의 일본식 목조 건물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위태하게 생겼으며, 사무실동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에 설치된 화장실에는 아직까지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미닫이문이 입구에 달려 있는 식이었다. 특히 오랜 세월 동안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철도업계의 특성상, 지금도 장화 원형차고지에는 여자화장실이 잘 구비되어 있지 않으니 방문 예정이신 여성분들은 반드시 이 점을 인식하시길. 아내는 차고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한구석에서 양산을 받치고 내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중에 미안해서 물어봤더니 나를 구경하는 행위가 재밌어서 괜찮았다고 하는데... 영 마음이 걸리었다.

 

타이완 중부지방의 별미인 '로우위안肉圓'을 파는 가게, '아장육원阿璋肉圓'. 사장님이 차이잉원 총통의 열렬한 지지자인 듯하다.
돼지고기를 전분옷에 감싸 조린 '로우위안'과 곁들여 나온 바지락맑은국. 나와서는 입가심을 위해 버블티를 한 잔 마셨다.

우리 여행의 주된 목표 중 하나가 미식탐방인 만큼, 이번에는 장화 지방의 특산요리라고 하는 '로우위안'을 먹으러 차고지를 나왔다. '로우위안'이라는 것은 돼지고기를 두터운 전분반죽 옷에 감싸 양념으로 조린 요리인데, 앞에서도 말했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에서도 주역들이 이것을 먹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해당 장면을 촬영했다는 가게인 '아장육원'에 찾아가니, 애매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손님은 한 명도 없고 머리가 허옇게 센 노파 한 분이 가게를 지키고 계시다가 주문을 받았다. 배가 그렇게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로우위안 한 덩어리를 주문했더니, 큼지막하고 물컹해 보이는 덩어리가 담긴 접시와 함께 맑게 끓인 바지락국 한 그릇이 나왔다. 몸짓발짓을 섞어 가며 주인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곁들여 먹으라고 서비스로 주는 국이란다. 그러나 아쉽게도, 간장과 향신료를 베이스로 한 양념에 조려진 전분과 그 속에 들어 있는 삶긴 돼지고기의 조합은 나나 아내로서는 영 맞지 않는 맛이었다. 다행히 곁들여 나온 바지락국만큼은 무척이나 시원하고 맛있었는데, 마치 한국에서 맑은 조갯국을 끓여서 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잘 입에 맞지 않는 로우위안을 먹고 나와 장화역으로 가면서 입가심으로 버블티를 또 한 잔 사서 마셨는데, 아무래도 압도적으로 싼 가격과 더운 날씨 탓에 점차 버블티에 대한 내성 자체가 감소하고 있는 듯했다.

 

 

찾아가기는 어렵지만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저녁놀이 아름다운 갯벌 가오메이 습지

 

장화역에서 다시 구간차를 타고 30분 남짓을 간다. 아까 타이중에서 장화로 넘어올 때에는 다소 허름하고 낮은 스카이라인이 차창을 지나가더라도 어쨌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장화를 벗어나 북쪽으로 향할수록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점점 시골의 그것으로 변해 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건물보다는 논에 빼곡이 심긴 벼들의 모습이 더욱 많이 보일 때쯤, 우리는 칭쉐이清水 역에 도착했다. 이제 이 곳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저녁놀이 아름답다는 바닷가의 가오메이高美 습지로 가는 것이다.

 

사실 처음 여행을 계획할 적에는 가오메이 습지를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첫째로 아내가 자연경관을 보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또 나로서도 평생을 서해안변에 살면서 갯벌은 지긋지긋할 만큼 봤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몇 달 먼저 타이중에 다녀왔던 아내의 동생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가오메이 습지 찬양을 하는 것이다. 꼭 한 번은 가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장관이라기에, 팔랑귀인 우리 부부는 그것을 덥석 물었다.

 

칭쉐이 역의 승강장은 마치 귀신이라도 나올 듯 황폐하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그런 색감이 보인다.

칭쉐이 역에서 내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역에서 습지로 바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이미 떠나 버렸다는 사실을 구글 지도에서 알게 된 우리는 당황했다. 그렇다고 걸어서 가기에는 방금까지 기차 바깥으로 내다보이던 주변의 황량함을 생각하니 도저히 엄두도 나지 않거니와, 거리도 너무 길고 해는 뉘엿뉘엿 이미 서쪽으로 떨어지는 티를 내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역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무리의 택시 기사들에게 '가오메이 습지로 가고 싶다'는 취지로 한문을 대강 써서 보여줬더니, 빈랑을 하도 씹어 이가 다 녹아내린 중년의 택시 기사가 선뜻 차에 타라고 손짓해 주었다. 역에서 출발해 최단거리로 가오메이 습지 안내소까지 가는데도 10분이 넘게 걸렸는데, 걸어간다는 마음이라도 잘못 먹었었다간 큰일날 뻔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약 500미터 정도의 산책로가 바다 한가운데까지 펼쳐져 있다. 풍력발전기 사이로 지는 해가 퍽 장관이다.

물론 한국의 갯벌과 모양새가 크게 다르지는 않기는 했지만, 도열해 있는 풍력발전기 사이로 붉은 해가 서서히 잠겨드는 모습은 과연 훌륭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로를 맨발로, 혹은 슬리퍼나 샌들 차림으로 오가는 가운데, 바람이 하도 강하게 부는 나머지 우리 부부가 찍은 셀카는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휘날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500미터라는 거리를 계속 걸어가다 보니, 육지로부터의 거리에 따라 변화하는 식생의 모습을 관찰하기에는 제격이었다. 또 모조리 허여멀건한 색깔을 띤 갯벌게들이 무수히 우리 주위를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는 모습도 보여 재미있었다. 한국 게들은 천적을 피하기 위해 모조리 어둠침침한 개흙 색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어쩐 일인지 전부 하얀 갑각을 뒤집어쓰고 있다니. 산책로의 끝에 다다르면 실제로 갯벌에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런 체험 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산책로 위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내가 들어가 갯벌을 밟아 보았다. 모래가 퍽 많이 섞여 있는지 빠져들지 않고 제법 단단한 느낌을 주는 것이 한국의 갯벌과는 퍽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그러고 놀고 있자니 어느덧 폐쇄 시간이 되어, 우리는 경사로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 바닷가 방조제 쪽으로 나왔다. 이곳에서 다시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칭쉐이 역으로 돌아온 뒤, 드문드문 다니는 기차를 타고 타이중 역으로 돌아왔다.

놀라울 만큼 옛날 간이역의 분위기를 풍기는 칭쉐이역. 저 멋들어지게 오래 된 시각 및 운임표를 보시라.
밤의 타이중 역.

 

타이중의 밤, 궁원안과에서

 

가오메이 습지에서 해질녘 보기에 성공했다는 말은, 우리의 이 날 거점인 타이중으로 돌아왔을 때쯤에는 이미 너무 시간이 늦었을 수도 있다는 말과 그 의미가 통한다. 아까 먹었던 로우위안과 버블티도 아직 소화가 안 된 상황이고, 그렇다고 가게를 가기에는 일반적인 밥집들은 다들 주문을 마감하는 추세의 시간이어서 끼니 때우기가 좀 애매했다. 결국 특단의 조치로 숙소 근처에 있는 '궁원안과宮原眼科'를 돌아보고 거기서 뭐라도 좀 사 먹고 끝내자는 흐름이 되어, 설렁설렁 걸어 궁원안과로 향했다.

 

'궁원'이라는 이름의 한자를 뜯어보자면, 일본어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문득 같은 한자를 쓰는 일본 성씨인 '미야하라'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이 건물의 이름은 일제강점기 당시 이곳에서 안과의원을 했던 일본인 미야하라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물론 안과의원은 없어진 대신 그 자리를 각종 문화공간과 식당들이 채웠다. 우리는 이 곳에서 모듬 아이스크림 한 컵을 사 먹었는데, 제법 괜찮은 맛이기는 했지만 지금 떠올리려고 하면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 이 곳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었지'의 수준인 게다. 다만 건물 자체가 워낙 멋들어지게 꾸며진 건물이다 보니, 이곳저곳에 훌륭한 사진촬영 포인트가 있었다는 점만큼은 확실했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면서 터덜터덜 집에 돌아온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기로 했다. 내일은 다시 타이중을 벗어나 더 남쪽, 타이난으로 향하는 날이다. 퍽 피곤한 만큼 푹 쉬고, 다음 날 또 일찍 일어나서 맛있는 아침식사 한 번이라도 더 가져다가 먹어야지 않겠는가.

 

전형적인 근대 일본식 적벽돌로 외벽이 꾸며져 있어 부드러우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안과' 콘셉트를 살리기 위해 제법 노력하는 듯했다. 아이스크림은 맛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