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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홈카페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너무 늦은 듯하지만 스타벅스 화이트사이렌 그라인더를 사용해 보았다

by 집너구리 2021. 9. 20.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수동 에스프레소 머신 Flair Pro로 에스프레소를 내려 보았다

홈카페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런 사람일 수록 꼭 장비발을 세우고 싶게 마련인 모양이다. 한때는 모카포트만 보면 홀린 듯 사제끼다가, 지금은 잠시 소강기에 접어들기는 했

sankanisuiso.tistory.com

플레어 에스프레소 메이커를 사용하게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카페뮤제오 아울렛에서 사 와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던 보덤 그라인더가 발단이었다. 드롱기제 반자동 머신을 쓰던 때는 보덤 그라인더의 '에스프레소' 단계로 원두를 갈아서 쓰면 문제가 없었는데, 플레어를 쓰기 시작하면서는 추출이 다소 들쭉날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멋진 한 샷이 나올 때도 있는가 하면, 마치 불량배가 이 사이로 침을 뱉듯 포터필터 아래로 이리저리 커피가 새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안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보다 확실히 가는 분쇄도로 원두를 갈 수 있어야 할 듯했다.

 

마침 스타벅스에서 몇 달 전에 사 두고 완전히 잊고 있었던 화이트사이렌 그라인더가 생각난 것은 그 시점이었다. 한동안 열심히 쓰던 하리오 핸드밀이 완전히 맛이 가 버린 이후 망령처럼 휴대용 그라인더를 찾아 헤매다가 제법 괜찮은 평가를 보고 홀린 듯이 녀석을 찾아 집 근처의 스타벅스 매장을 배회하던 일도 있었다. 최근 물량이 많이 풀리면서 집 근처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사들여 뒀는데, 보덤 그라인더를 잘 쓰고 있던 것도 한몫하여 지금까지 서랍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테스트 삼아서 뜯어서 한번 작동해 보기로 했다.

 

 

흰색과 녹색 기조의 종이 상자 안에 그라인더가 들어가 있는 모양새이다. 원두를 담는 부분은 흰색, 갈린 원두가 담기는 통 부분은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다른 리뷰에서도 '흰색 바탕이라서 원두 색이 밸까 봐 걱정이다'라는 표현들을 많이 써 놓았던데, 과연 걱정될 만 하게 생겼다.

 

상자 내부에는 그라인더의 사용법을 그림과 함께 상세히 적어 두었다.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서 잘 적어 둔 것 같긴 한데, 대략적인 원두 굵기 설정 기준 정도는 더 적어 줬으면 좋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단계가 적혀 있어서 이것을 보고 돌려 가면서 원두의 굵기를 조절할 수는 있다 하여도,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계속 원두를 갈아서 소모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원두 굵기는 이렇게 다이얼을 화살표에 맞춘 뒤, 핸들을 걸어 고정시키는 식으로 설정한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1단계로 원두를 갈아 봤다. 갈리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열이 발생하고, 힘도 많이 들고, 결정적으로 너무 잘게 갈아지는 바람에 플레어에 원두를 탬핑해 넣고 눌렀다가 실린더가 퍽 하고 물을 뱉어내는 대참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팔이 빠져라 30분 넘게 갈았던 내 자신이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스타벅스 홈페이지에서 검색을 해 보니 에스프레소에 권장되는 굵기로 갈기 위해서는 첫 바퀴의 6-8단계 사이로 설정해서 갈면 된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아니 이걸 포장에 적어 달라고... 왜 꼭 사람을 두 번씩 일하게 하냐고... UX 왜 이러냐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어쨌든 다시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카페인이 고프다. 이번에는 제대로 7단계로 돌려서. (놀랍게도 이 그라인더는 8단계를 3바퀴 더 돌릴 수 있다고 한다. 24단계의 분쇄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좀 패키지에 적어 놓으라고...)

 

15g의 원두를 넣고 갈기 시작.

 

그라인더의 성능을 가늠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갈기 전의 원두 양과 간 후의 원두 양을 비교하는 것이다. 원두 손실량이 적을수록 날 사이에 끼거나 하는 일이 없이 잘 갈린다는 뜻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15g의 원두를 넣고 갈기 시작했다. 결과는?

 

 

다행히도 15g 간 만큼의 원두를 잘 뱉어내 주었다. 손실 자체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다만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점은, 갈린 원두가 날 부분에 너무 잘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추출기에 원두 가루를 옮기기에 앞서 갈린 원두 통보다도 그라인더 날 쪽을 한 번 먼저 털어 줬기 때문에 정량 분쇄에 성공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만 원두 입자는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균일하고 잘게 잘 갈린 상태다.

 

* * *

 

이렇게 간 원두를 플레어에 넣고 내려 보니, 딱 기분 좋은 압력이 걸려 멋진 퀄리티의 에스프레소를 뽑아낼 수 있었다. 유달리 민감한 수동 에스프레소 메이커에서도 무난하게 에스프레소를 뽑을 수 있을 정도의 그라인더이니, 성능 하나는 보장된 것이라고 하겠다. 다만 팔이 좀 아플 뿐이고, 가볍게 사기에는 가격이 퍽 흉악한 편(7만 원대)일 뿐이다. 앞으로 다른 커피라면 몰라도, 에스프레소를 내릴 때에는 신세를 좀 지게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