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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21

한낮에 한 헌혈 : 레드커넥트 앱으로 예약해서 성분헌혈 다녀오기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헌혈을 한 번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창졸간에 들은 이야기라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긴 했는데, 헌혈 자체는 한 번 하러 가긴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어서 나름대로는 기꺼운 일이었다. 아내와 나는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에 이른 사이인데, 며칠 전에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의 졸업생 게시판을 돌아다니던 아내가 한 동문이 올린 지정헌혈 요청 게시글을 본 모양이다. 아내 또한 금방이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혈액을 필요로 하는 환자와 혈액형이 달라서 고민하다가 마침 같은 혈액형인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듣자하니 딱한 사정이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집 근처에 있는 혈액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알다시피 무작정 혈액원에.. 2021. 6. 13.
(의도치 않았던 사회공헌) 타일벽화 그림 그리기 지난번 도토리 사건(2021.02.21 - [잡담] - 집씨통 참여하기: 도토리나무 재배일지 01)도 그랬지만, 아내가 이번에도 뭔가 자기 회사의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내게 해 보겠느냐고 물어봤다. 내용이 뭔고 하고 물어봤더니, 뭔가 미술 같은 프로젝트인 모양이다. 여러 개의 퍼즐로 구성된 타일 벽화를 그려서 지역 아동복지시설에 기증하는 프로젝트로, 신청한 사람에게 무작위로 번호가 배정된 빈 타일을 주고 그것에 정해진 색으로 색칠을 해서 다시 제출하면 된다고 한다. 이것을 구워서 완성된 형태로 아동복지시설에 전달된다고. 좋은 취지인 것 같기도 하고, 손을 놀리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서 일단 해 보자고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아내가 봉투에 담긴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언젠가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듯도 .. 2021. 4. 10.
하야시야 히코로쿠 이야기 라쿠고 이야기를 기묘하게도 꾸준히 적게 된다. 한국에는 워낙 팬이 적다 보니,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도 이야기할 만한 상대가 없어 별 수 없이 이렇게 글로나마 적어 두며 적적한 마음을 푸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이미 노령으로 세상을 떠난 라쿠고가가 있다. 그러나 그의 별세 이후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젊은 라쿠고 팬들은 아마 그의 말투나 행동거지에 대해 마치 직접 본 듯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그 답은 스승이 돌아가실 무렵의 나이에 거의 가까운 연령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그의 제자가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살아 있는 제자로 인해 돌아가신 스승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셈이다. 라쿠고가의 이름은 시간에 따라 종종 변하곤 한다지만, 그의 이.. 2021. 3. 27.
길찾기꾼의 관상 남들보다 배는 더 어떤 일을 겪는 사람이 꼭 있다. 내 얘기다. 지나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꼭 날 붙잡고 길을 묻는다. 생긴 게 좋게 말해서 무던하게, 나쁘게 말해서 만만하게 생겼기 때문인가 싶다. 저 사람에게 물어보면 적어도 내치고 쌩 제 갈 길이나 가 버리지는 않겠구나 싶을 테지. 거울 속에서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들어 버리는 것이다. 간단하게는 지하철 승강장에 서 있을 적에 무슨무슨 역으로 가려면 이 승강장이 맞느냐는 질문부터, 운동삼아 동네 산책을 나섰는데 헙수룩한 차림새의 웬 아저씨가 동대문까지 걸어가려면 이 길이 맞느냐는 물음까지도 받아 보았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와 아저씨가 있던 곳에서 동대문까지는 편도만 14킬로가 넘어가는 거리.. 2021. 3. 21.
당근마켓에서 만난 귀인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을 겪는 일이 있다. 야근 후 피로에 전 상태로 올라탄 4호선 전차에서 고등학교 시절 제법 친하게 지냈지만 소식이 끊겼던 동창생을 만난다든지, 별 생각 없이 둘러보던 회사 재직자 명단에서 같은 학부를 졸업한 친구를 발견한다든지, 길거리를 걷는데 누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중학교 시절 늘 붙어다녔던 단짝이었다든지 하는 일이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길을 가다가 커피가 땡겨 들어간 가게가 알고 보니 그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카페였다든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해 드린 할아버지가 흘러간 은막의 스타였다거나 하는 일도 있다. 인터넷이 손 안으로 들어와 누구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거리를 걷는 요즈음에는 제대로 자기 걷는 앞을 보며 걸어가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어진 느낌도.. 2021. 3. 8.
집씨통 참여하기: 도토리나무 재배일지 01 아내가 며칠 전에 기묘한 이야기를 꺼냈다. 도토리 키워 볼래? 결혼 이전에 본가에서 살 적에도 늘 식물이 있는 환경에서 살아 온 만큼, 식물을 키운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관리에 약간 소홀한 나머지 집에 있는 친구들이 전부 비실비실하긴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근데 갑자기 도토리를 키워 보겠느냐니 이게 무슨 소린가? 알고 보니, 난지도 노을공원에 나무를 키우자는 봉사활동에 아내네 회사가 참여하고 있어서, 도토리를 받아서 키운 다음 노을공원에 심는다는 꽤 솔깃한 취지로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풀때기라면 몰라도 나무를 키운다는 건 생판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참여하는 것은 좋긴 하지만 과연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 2021. 2. 21.
기획서 쓰기의 중요성: 앱 개발을 시작도 전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돌이켜보면 나는 희한하게도 '처음', '시작'이라는 개념에 늘 가까워 있었던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갈 적에도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학과에 들어갔고, 취업할 때에는 사내 최초의 프로토타입 제작자로 들어갔고, 지금은 우리 회사에서 처음으로 '각 잡고' 틀을 잡으려는 UX 리서처라는 직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 디자인 전공을 한 적도 없는데 어쩌다 보니 디자인실에 들어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처음 해 보는' 일들을 맡아서 진행해 왔지만, 이제야 와서 생각해 보니 막상 '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서 작성은 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직무 특성상 프로젝트 런칭 초반부터 참여하는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기획서 작성의 경험이 얕다는 사실을 눈앞에 두고.. 2021. 2. 15.
요세寄席의 추억: 일본 대중문화의 오래된 미래 도쿄에 갈 때마다 어떻게든 짬을 내어 들르는 곳이 있다. 정확히는 '곳들'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키하바라秋葉原를 오고가는 길에 들르는 적도 있고, 출장 기간에 여유 시간이 나면 찾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부득불 캐리어를 끌고 찾아가는 일도 있다. 요즈음은 세월이 좋아져서 한국에서도 오타쿠 굿즈를 사 모으기 어렵지 않고, 도쿄를 자주 드나들다 보니 웬만한 동네는 얼추 다 다녀 보았기에 때로는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할 줄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에는 신주쿠新宿에서 주오 본선中央本線을 탄다. 아마도 일본이 아니면 지금껏 그랬고 앞으로도 경험하기 어려울, 어떤 경험을 하러 가는 것이다. 2016년경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애니메이션 하나가 있었다. 이라는 작품이다. 쿠모타 .. 2021. 2. 15.
인터넷을 통근하는 재택근무자를 위한 가이드: 1. 늘어난 시간을 어찌할 줄을 모르겠어서(1) 여느 때와 다름없는 월요일 아침, 잠에 절어 있는 아내에게 아침을 먹여 출근을 시키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고 게임을 조금 하며 커피를 곁들인 내 몫의 아침을 먹는다. 그러다가 문득 달력을 보았다. 작년 추석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설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오히려 이름조차 거론하고 싶지 않은 그 질병이 여전히 위세를 떨고 있는 탓에, 올해는 새해 첫 날을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것조차도 어떠한 종류의 사치가 되어 버린 것만 같다. 올해 설은 그렇고, 지난 설은 어땠더라. 생각이 꼬리를 문다. 돌이켜 보니 회사에 매일같이 출근해서 일을 하던 시절도 벌써 퍽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작년 2.. 2021.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