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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0526 Fiji | Sydney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6. 피지를 떠나 시드니로, 처음 해 보는 외국에서 외국으로의 비행과 시드니의 첫인상

by 집너구리 2022. 1. 10.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5. 리조트를 떠나 피지 본섬의 힐튼 호텔로, 호텔에서의 느긋한 하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4. 리조트에서의 둘째 날, 바다와 수영장에서의 물놀이와 섬 한 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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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 반에 짐을 챙겨서 나오는데, 호텔 직원이 먹으라며 챙겨 준 아침식사. 이것이 피지의 정인가...
한새벽에 차를 타고 진입하는 난디 공항. 피지는 영국의 영향을 받아 운전석이 우측에 있다.

 

아침에 일어난 것은 새벽 다섯 시 반이었다. 힐튼호텔 리조트를 조금 더 느긋하게 즐기고 싶지만, 비행기 표를 그렇게 끊어 놨으니 방도가 있나. 어젯밤에 가능한 한 모든 짐을 꿍쳐 놓고 잔 덕에 다행히도 아침에는 옷 걸치고 이 닦고 세수하는 정도의 준비만 하고 바로 로비로 나갈 수 있었다. 그 신새벽에도 호텔 프론트에는 직원이 있었다. 비몽사몽한 상태인 아내를 의자에 앉혀 두고 로비에 가서 체크아웃을 하는데, 고맙게도 직원이 "아침 식사를 못 하실 것 같아서, 저희가 챙겨 뒀습니다"라면서 과일 몇 개와 요플레, 생수가 들어 있는 쇼핑백 하나를 안겨 주었다. 딱히 미리 챙겨 달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배려를 받을 줄은 몰라서 더더욱 고마웠다. 이것이 피지인의 정인가!

 

피지에 도착한 이래로 계속 신세를 진 한국인 가이드 아저씨가 공항까지 태워다 주셨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은 졸릴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점점 정신이 말짱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 호주 퍼스에 살다가 이리로 옮겼고, 피지 영주권은 한 5년 정도 살면 별 어렵지 않게 신청할 수 있다는 등 아저씨의 흥미로운 호주살이 이야기를 잠시 듣다 보니 어느 새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후쿠오카 공항이 시가지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공항으로 유명하지만, 난디 공항도 만만찮다. 피지 제3도시인 난디 시가지에 딱 붙어 있는 데다가, 힐튼 호텔 리조트에서도 자동차로 고작 20분이면 도착이다. 그간 신세를 진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서 공항 안으로 들어간다.

 

난디 공항 국제선 터미널의 모습. 그다지 크지 않지만, 깔끔하고 정갈하다.

피지에 들어올 때도 거쳤던 난디 국제공항은 피지의 제1관문이지만, 나라의 규모가 작다 보니 공항의 규모 자체도 엄청나게 큰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터미널은 무척 깔끔하고 탁 트인 느낌을 준다. 짐을 부치고 나서 멍하니 앉아서 호텔에서 받아온 과일 바구니 안의 음식들을 까 먹었다. 작지만 알찬 사과와 귤 까듯이 까야 해서 다소 불편했던 오렌지, 그리고 요플레까지. 방 식탁에 놓여 있던 컵케이크도 혹시 몰라서 싸 왔는데, 기내식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이것까지 같이 까먹기로 했다. 아이싱으로 장식돼 있길래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맛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피지 생수 한 병씩까지 깔끔하게 비운 우리는(누가 보면 아침 거하게 먹는 이상한 동양인 커플로 보였을 것이다) 마침내 국제선 출국장으로 향했다. 공항 직원들 일처리가 느리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빠른 편은 아닌 듯, 줄을 한참 서서 기다린 다음에야 비로소 면세 구역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피지에 체재하던 기간 동안에는 늘 리조트에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피지 돈을 쓰게 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리조트나 호텔 비용은 이미 선지급한 상태고, 추가 비용 등은 모두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얼마 되지 않는 대기 시간 동안 우리는 열심히 피지 맥주를 찾아다녔다. 이 때가 아니면 더는 살 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이 면세점 저 면세점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한구석에서 피지 맥주를 여섯 병씩 묶어서 파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쾌재를 불렀다. 냉큼 한 묶음을 바구니에 넣고, 그 뒤로는 회사 동료 직원들에게 줄 답례품을 고르기로 했다. 피지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화장품 시리즈인 '퓨어 피지'라는 것이 있어서, 이 브랜드의 핸드 크림을 종류별로 한바탕 사들였다(나중에 이 핸드크림을 실제로 아내와 내가 다니는 회사에 각각 돌렸는데, 다들 무척 좋아해 주었다). 핸드크림을 잔뜩 샀다고 '퓨어 피지' 에코백을 증정품으로 받은 건 덤이다(지금도 열심히 장바구니로 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맥주를 구매할 경우 기내 반입용 수하물로 액체가 든 병을 들고 탈 수 없다는 항공 규제로 인해 그 자리에서 손님에게 인도하는 대신 구매 증명서만을 발급해 준다는 점이었다.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면 부치는 짐으로 받아 볼 수 있다고.

 

필수품 구매를 마친 다음에도 살짝 시간이 남아, 기념품 가게에 가 보았다. 원래부터 마그넷 수집을 좋아하는 아내가 이 때 반쯤 즉흥적으로 던진, "앞으로 이렇게 길게 여행을 가게 되면 각 지역의 마그넷을 하나씩 사서 모으자"는 이야기가 우리 부부의 전통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날 친구들에게 줄 것까지 몇 개의 마그넷을 샀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영어로 "친구들이 피지 갔다 왔다더니 이런 거지 같은 마그넷만 기념품이랍시고 줬다(MY FRIENDS WENT TO FIJI AND ALL THEY GOT ME WAS THIS LOUSY MAGNET)"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진 녀석이었다. 나는 이런 게 이상하게 늘 좋더라고.

 

(좌) 면세점의 모습. 이게 다는 아니고, 여기저기 여러 곳 있다. (중) 피지 비터를 이렇게 묶음으로 두고 판다. 이건 못 참지. (우) 탑승 대기 장소.
입국할 때 약간 바꿔 두고 한 푼도 못 쓴 피지 돈을 이제야 쓰게 됐다. 기념품 가게에서 재미있는 마그넷을 좀 샀다.

 

쇼핑까지 다 마치고 짐을 바리바리 든 채로 근처에 앉은 호주인(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의 재롱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었다. 줄을 서서 티켓을 확인받고 탑승교로 향하는데, 특이하게도 탑승하기 직전에 탑승교 문 앞에 한 번 더 카운터가 있고 면세품을 들고 타려는 손님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절차까지 마치면 피지항공 비행기를 탈 수 있다.

 

비행기는 정말 더럽게 추웠다. 바로 전날까지만 하더라도 30도를 넘나드는 염천하에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니 이건 도저히 반팔 반바지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수준으로 에어컨을 틀어 주고 있었다. 담요를 받고 싶었는데, 담요마저도 몇 장 준비되어 있지 않단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아내도 나도 시드니의 날씨를 감안해서 미리 두꺼운 옷을 꺼내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이 옷들을 껴입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내 자체가 추운 것은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비행기는 서서히 이륙하여 피지 상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가 타지는 않은 피지항공 비행기.
비행기가 시드니로 향할 때, 우리가 머물렀던 곳들의 상공을 스치듯 지나간다. 왼쪽은 마지막 날 머물렀던 데나라우, 오른쪽은 2박 3일간 머무른 말롤로레일라이 섬과 그 근처의 대보초.
기내식은 전형적인 영국 스타일이다. 빵과 쿠키, 버터, 스크램블드에그와 해시브라운, 소시지. 음료는 커피와 티 중 고를 수 있다(티는 밀크티). 나는 커피를, 아내는 티를 골랐다.

 

야트막한 피지의 산하를 떠난 비행기는 곧 탁 트인 푸른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피지 난디에서 호주 시드니까지의 비행 시간은 대략 2시간 30분 남짓. 서울에서 도쿄 가는 것보다 다소 길고, 삿포로 가는 것보다는 다소 짧은 시간이다. 새삼 피지와 호주가 얼마나 가까운지 짐작이 간다. 나쁘지 않은 (그러나 다소 짭짤한) 기내식 식사를 마무리한 뒤에도 기내는 여전히 냉동고마냥 추웠다. 나는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고, 아내는 좌석 스크린에 내장된 게임을 하며 추위를 잊으려 노력하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그저 하늘과 바다와 구름만 보이던 비행기 창 밖으로 별안간 거대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지에 다닥다닥하게 들어선 수많은 집과 건물들, 무엇보다도 거대한 만에 걸쳐 있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거대한 철제 교량과 조가비 모양의 건물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하버 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의 도시,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 시드니 상공으로 접어든 것이다. 비행기는 시드니 상공을 몇 바퀴 선회하면서 고도를 천천히 낮추다가 마침내 착륙했다. 한빙지옥 같은 이 비행기에서도 드디어 탈출이다!

 

하늘에서 본 시드니 전경. 하버 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가 멀리 보인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지평선까지 탁 트여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우리 부부에게 늘 익숙한 자유 관광의 시작이다. 다만 어딜 가든 한자가 적혀 있고, 가끔씩 한글도 눈에 띄는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시드니의 첫인상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으나 '온통 영어뿐인 동네'였다. 피지는 이따금 피지어 간판이라도 눈에 띄곤 하는데, 호주는 역시 영어권 국가라 그런지 남의 나라 말을 병기해 준다는 생각 자체를 애초에 하지 않는 듯했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살짝 어색한 느낌이랄까? 

 

한국 여권은 전자여권인 덕에 깔끔하게 자동출입국심사로 입경을 완료한 뒤, 짐(과 면세품)을 찾자마자 바로 우리가 한 것은 그 때까지 입고 있던 반팔과 반바지를 모두 긴팔과 긴바지로 갈아입는 것이었다. 30도를 넘나들던 피지와는 달리, 시드니의 당시 기온은 대략 10도에서 20도 사이를 오고가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날씨였다. 결혼식을 올렸을 때의 한국은 늦봄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며칠 사이에 한여름을 거쳐서 순식간에 늦가을의 땅으로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반구에 왔다는 사실이 다시금 뼈저리게 느껴진다.

 

전자여권 소지자들은 까다로운 호주 입국심사를 깔끔하게 통과할 수 있다. 한국 사람도 해당된다!
G'day! 호주에 왔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는 환영 안내판.

 

우리가 묵을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공항철도 '에어포트 링크(AirportLink)'를 타고 '뮤지엄(Museum)' 역에서 내리면 된단다. 공항철도가 제법 잘 되어 있는 덕에, 상대적으로 외곽에 위치한 시드니 공항에서 중심가인 '시티(City)' 권역까지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도 시의 전통적인 중심부는 '시티'라고 하는 모양인데, 전통적인 '시티 오브 런던'과 '그레이터 런던'을 구분해 둔 영국 사람들이 세운 도시답다는 생각이 든다.

 

공항 환전소에서 가지고 간 미화를 호주 달러로 환전한 뒤 공항철도 개찰구로 향한다. 시드니의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탈 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 '오팔'을 구매해 얼마간의 돈을 충전한 뒤, 개찰구를 통해 승강장으로 나간다. 제법 현대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 공항철도 승강장에서 기차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놀랍게도 2층짜리 기차가 승강장으로 유유히 들어온다. 알고 보니 시드니의 도시철도는 대부분이 2층이란다.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끌고 높디높은 계단을 올라 기차에 올라탄다. 여기서 다섯 정거장만 가면 바로 뮤지엄 역이다. 참 쉽죠?

 

대만의 그것과 무척 닮은 태그식 개찰구(좌). 승강장에 내려가면 이렇게 공항철도를 타고 갈 수 있는 지역 지도가 걸려 있다(우).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기차역에는 2층짜리 열차가 늘상 오간다. 'BEWARE GAP WHEN BOARDING'이라는 표현이 어쩐지 낯이 익다.
런던 언더그라운드의 유산이 진하게 느껴지는 뮤지엄 역 역명판. 플랫폼도 상당히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1926년부터 영업하고 있다는 아주 오래 된 기차역, 뮤지엄 역에 내려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침 슬슬 점심 시간인지라 길거리는 식사를 하러 나온 듯한 사람들로 붐볐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더니즘 스타일의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영국 여행 영상 같은 데서나 봤던 넓고 트인 공원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섞여 있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유럽스러운 도시라는 인상이 시드니의 거리를 처음으로 마주한 나의 첫 감상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길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걸어 마침내 우리가 묵을 '파크 레지스 시티 센터(Park Regis City Center)' 호텔에 도착했다.

 

일단 체크인을 먼저 하고 방 키를 받아 올라가기로 했다. 제법 오래 된 호텔인 모양인지 이곳저곳에서 낡은 티가 풀풀 나는 곳이었는데, 몇 층 이상부터는 레지던스로 운영하고 있고 그 아래층이 호텔이란다. 9층에 있는 우리 방으로 들어가니 이건 거의 일본에서 봤던 비즈니스 호텔 느낌이다. 다시 한 번 신혼여행 여행사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래도 방이 무척 깔끔하고 정갈하다는 점에 위안을 얻기로 했다. 어차피 뭐, 호텔 방에서 하루종일 있을 건 아니니까. 짐을 부려 놓고 방 구경을 좀 더 한 뒤, 옷을 좀 더 껴입고 밖으로 나가 보기로 했다. 호주 사람들도 점심 시간일 테고, 우리도 슬슬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큰 공원이 섞여 있는,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던 유럽 스타일이 여기 있었다. 여기는 하이드 파크 근처.
하이드 파크에서 바로 고개를 돌리면 이렇게 현대적인 빌딩 숲이 나타난다. 순간 서울인 줄. 시청 방향으로 걸으면 호텔이 나온다.
이거 토요코인 아냐? 아니 그래도 토요코인은ㅋㅋㅋㅋㅋ 욕조라도 있었지. 다행히 침대는 퍽 괜찮았다. 온수와 어메니티가 거지 같은 점만 빼고.
창 너머로 하이드 파크가 보이는 것만큼은 좋았다. 무려 1968년부터 영업한 '모텔'이라구.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