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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0526 Fiji | Sydney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3. 로마니 리조트 돌아보기, 평범했던 점심식사와 맛있었던 저녁식사

by 집너구리 2021. 9. 26.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2. 피지 본섬에서 배를 타고 로마니 리조트로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1. 결혼식이 끝나고, 다음 날 밤 비행기로 피지 난디 공항까지 * 이

sankanisuiso.tistory.com

 

체크인 후, 금강산도 식후경

 

리조트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30분이라는 다소 이른 시간이었기에, 체크인을 하고서도 방으로 안내받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 동안 멍하니 기다리기도 뭐해서 식사가 가능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안내데스크 옆 건물에서 야외 식사가 가능하다고 하여 그리로 가기로 했다. 

 

손은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맹세코...

덩치 좋은 직원이 우리를 탁 트인 야외 레스토랑으로 안내해 주었다. 투숙객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것을 보니 점심 시간이긴 한 듯하다. 자, 무엇을 먹을까? 메뉴판을 찍어 두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일단 간단히 기억나는 대로 적어 두자면, 나는 수제버거, 아내는 오늘의 커리 비스무리한 것을 시켰다. 버거는 딱 예측했던 그대로의 무난한 맛이었으나, 커리는 좋게 말해서 독특하고, 나쁘게 말해서 이게 무슨 맛인가 싶은 맛이었다. 피지가 영국의 식민지이던 시절 인도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커리 비슷한 음식을 현지에 맞게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적어도 한국인 입맛에는 영 아니었던 것으로. 곁들여 나온 빵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아무튼 간에 뭐라도 뱃속에 들어가니 기분은 좋아졌다.

 

(좌) 아내가 먹은 알 수 없는 커리, (우) 내가 먹은 햄버거.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호화로운 방 구경하기

 

식사를 마치고 잠시 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으려니, 직원이 와서 방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식의 시간인가! 냉큼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레스토랑을 나섰다. 방들은 해안가를 따라서 독채로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직원이 알려주는 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세상에! 이렇게 좋은 집에 묵어도 되는 거야?

 

발코니로 나가는 창문 앞에서 찍은 방의 전경. 말로만 듣던 신혼여행 장식...!

흰색 기조의 널찍하고 탁 트인 방 안에는 폭신하고 넓은 침대와 고급스러운 무늬의 소파가 준비되어 있고, 아침에 잠에서 깨면 바로 바닷가를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환영 문구가 적힌 안내문과 축하용 샴페인, 웰컴 프루트 등은 소파 앞에 놓인 테이블에 올라와 있었다. 하나하나 공들여 준비한 것이 느껴졌다.

 

현관문 바로 안쪽에는 욕실이 있다. 우리는 관광여행만 다녀본 사람들이라 이런 휴양지는 인생 처음으로 오는 것이었는데, 욕실에 나가 보고 상당히 놀랐다. 아무리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지만 이렇게 욕실이 개방적이어도 되는 건가? 게다가 샤워공간 두 곳 중 한 곳은 아예 바깥 벽에 붙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샤워하면서 엄청 재미있긴 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밤에는 벌레 때문에 절대로 저쪽은 못 쓰겠다는 생각이 다음으로 들었다. 하긴 언제 내가 이런 천장이 다 뚫린 멋들어진 야외 샤워실을 써 보겠나. 점점 더 재밌어진다.

 

같은 자리에서 방을 한바퀴 돌아보며 찍은 듯한 사진. 그리 큰 방은 아니지만 탁 트인 느낌이 난다. 옷장도 엄청 크다.
샤워 공간이 건물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 깔끔하고 넓게, 그리고 개방적으로 만들어진 욕실.

큰 미닫이창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면, 오른쪽에 개별 풀장이 자그맣게 하나 준비되어 있고, 테라스에 의자 한 쌍, 그리고 바다 쪽으로 난 마당에 일광욕 의자가 한 쌍 놓여 있다. 그 앞은 (중간에 풀숲이 좀 있긴 하지만) 널리널리 펼쳐진 바다다. 이런 곳에서라면 며칠이고 있어도 물리지 않을 듯하다.

 

테라스로 나가면 개별 풀장(매우 작음)이 마련되어 있다.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쉬는 것도 가능.
테라스에서 내다본 바다!
바다라는 것이 이렇게 맑고 하얗게 부서지는 것이었나?
그야말로 열대에 왔다는 기분이 물씬 들게 해 주는 야자나무들.

방 밖으로 나오니 그야말로 열대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다라는 것이 이렇게 맑고, 이렇게 푸르고, 이렇게 하얗게 부서지는 것이었나, 새삼스레 놀라웠다. 같은 바다여도 내가 평생을 봐 왔던 서해안의 갯벌과는 많이 달랐다. 이거야말로 휴양지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해 주는, 뭐라 말하기 힘들 만큼 아름답고 새로운 광경이었다.

 

방에 들어오니 그 때부터 밀린 피곤함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노곤해지니 바로 옷을 갈아입자마자 침대 속으로 파고들어갔고, 우리는 한참을 낮잠을 잤다. 거의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잠든 듯했다.

 

 

아름다운 남도의 저녁놀과 호화로운 저녁식사

 

 

서너 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우리 숙소는 섬의 서쪽 해안선을 향해 지어져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테라스로 나가면 섬의 노을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야자수 너머로 비치는 노을빛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생각해 보면 피지에 와서 처음 경험한 일들이 참 많았다. 수풀을 넘어서 해변으로 나가니 썰물 시간대인지 물이 제법 많이 물러나 있었다. 10년을 넘게 서해 바닷가에 살면서 썰물은 질리도록 봤는데 남태평양까지 와서 썰물을 보게 될 줄이야, 어쩐지 재미있어 웃음이 났다. 

 

우리는 해가 완전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바닷가에서 놀면서 불가사리 같은 것을 건드리고 놀다가, 슬슬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보통 이런 리조트는 저녁 식사가 진짜 별미라고 하기에 저으기 기대가 되었다. 점심에 식사를 했던 리조트 한가운데의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식사는 코스요리로 나왔는데, 나는 메인으로 쇠고기 스테이크를, 아내는 양갈비를 시켰다.

 

버터를 바른 식전빵. 보드럽고 고소했다.
전채. 구운 새우와 마늘이 들어간 태국 스타일의 샐러드(좌)와 튀긴 칼라마리를 얹은 카나페(우). 피지는 섬나라라 해산물이 신선하다.
본요리. 내가 시킨 쇠고기 스테이크(좌)와 아내가 시킨 양갈비구이(우). 둘 다 맛있었지만 양갈비가 조금 더 입에 맞았다.
후식인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카사바 케이크. 너무너무 맛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식사를 하며 사진을 찍다 보니 이게 사진인가 싶을 만큼 낮은 질의 사진밖에 건지지 못했지만, 음식은 정말 먹음직스러웠고 실제로 맛있었다. 섬나라인 피지 특성상 당연히 해산물이 맛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했는데, 의외로 고기 요리가 무척 훌륭했다. 쇠고기도 부드럽고 향이 잘 살아 있어서 맛있었고, 양갈비 프렌치랙 구이가 상당히 훌륭했다. 지방과 살코기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질기지 않게 딱 맛있는 정도로 구워져 있어서, 내일도 고기 식사를 하게 된다면 양고기는 꼭 시키자고 다짐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후식인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곁들여 먹는 카사바 케이크가 정말 별미였다. 카사바 전분으로 만들어 따뜻하고 쫄깃쫄깃한 케이크 위에 달콤하고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는 요리인데, 처음 먹어 보는 조합임에도 너무나도 절묘한 조화를 자랑한 나머지 신혼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그 맛을 잊지 못했다(실제로 두어 번 만들어 먹기까지 했다. 다음에 만들어 먹을 때에는 레시피를 잘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려고 한다).

 

배부르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천천히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완전히 밤이 되어 쏟아질 것처럼 별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에 별을 모두 담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남반구에 오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남십자성을 보는 데에는 성공했다. 돌이켜보면 피지에 있는 동안에는 정말 질리도록 남십자성을 본 듯하다. 쉽게 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뇌리에 새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피지에서의 첫 날은 긴 듯 짧은 듯하게 마무리되었다.

 

야자나무 아래로 살짝 들여다보이는 남십자성.
집 앞에 붙어 있던 귀여운 도마뱀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