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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0526 Fiji | Sydney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5. 리조트를 떠나 피지 본섬의 힐튼 호텔로, 호텔에서의 느긋한 하루와 시드니 여행 준비하기

by 집너구리 2021. 11. 7.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4. 리조트에서의 둘째 날, 바다와 수영장에서의 물놀이와 섬 한 바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3. 로마니 리조트 돌아보기, 평범했던 점심식사와 맛있었던 저녁식 *

sankanisuiso.tistory.com

 

왠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이끌려 찍은 리조트 냉장고... 수박과 과자는 결국 못 먹었다. 물은 챙김.
아침은 어제보다 더 본격적인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소시지가 참 맛있었다.

 

아침 일곱 시쯤에 일어났다. 짐은 전날 얼추 싸 두었기에 일단 아침을 먹기로 했다. 리조트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게 될 테지만, 우리는 또 밥을 안 먹으면 기분이 매우 안 좋아지는(?) 부류의 사람들이니까. 한국인은 자고로 밥심이거든. 뷔페 형식의 아침식사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뭔가 가능한 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느낌을 내 보고 싶었다. 예전에 영국남자 채널에서 봤던 대로 구운 양송이와 계란, 소시지, 해시 브라운과 베이컨, 구운 토마토를 담아다가 먹었다. 사실 시간이 그리 많이 주어진 것이어서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는 것에 가깝기는 하지만, 어쨌든 먹고 나니 든든해졌다.

 

밥을 챙겨 먹은 뒤 짐을 가지고 프런트로 나갔다. 영어 스피킹이 잘 안 되는 탓에 다소 혼란 속에서 체크아웃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무척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는 성공한 것 같다. 웃으며 직원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러 나간다. 

 

다시 여기 바닷가, 너와 나 단 둘이.

선착장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은 표를 구하는 것이다. 피지에 처음 입국할 때 만났던 한국인 가이드 아저씨에게 받았던 바우처를 선착장 매표소에 건네 주고 플라스틱으로 된 회수권을 받았다. 배를 탈 때 내면 된다고 한다. 대학 다닐 때 학생회관 식당에서 사 쓰던 식권 비슷한 느낌이다. 배가 올 때까지는 1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주로 선착장 근처에서 바닷물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때웠다. 맑은 바닷물 속에서 오고가는 물고기들, 아침부터 나와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 한가하게 아침 산책을 즐기는 어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벌써 떠나는 것이 아쉬워졌다. 

 

 

배를 타고 그저께의 그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한인 가이드 아저씨가 다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번에는 힐튼 호텔로 이동한다. 여기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시드니로 떠나게 된다. 왜 이렇게 혼란한 동선인가 하면... 그... 신혼여행 예약해 주는 여행사가... 아휴 아니다. 적어 봐야 타자 치는 손가락만 아프고 괜히 나만 다시 화나지. 여행 일정 예약할 때의 스트레스를 떠올리면, 차라리 선착장에서 만난 백인 영감님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콘니치와'라고 인사한 정도는 그냥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망할 영감. '미안합니다, 나는 한국과 김치를 좋아해요' 정도로는 아시아인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

그래도 어딘지 모르게 고길동을 닮은 한인 가이드 아저씨는 정말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 주셨다. 이렇게 자주 움직이는 신혼여행 커플도 얼마 없을 텐데, 전혀 꺼려하는 티 없이 시종 싹싹하셨다. 다음 날에도 새벽 일찍 아저씨의 신세를 져서 공항에 나가게 될 것이다. 가이드 아저씨가 친절한 덕에 그래도 갈 길 없던 짜증이 다소 잦아들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힐튼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열 시 반이라는, 체크인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시간이었다. 일단 직원에게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려 주고 짐을 맡겼다. 다만 체크인 시간인 세 시까지는 별 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하여,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일단 힐튼 호텔 부지를 한 바퀴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보아하니 부지도 제법 넓은 것 같으니 뭐 좀 돌아다니다 보면 한두 시간은 잡아먹을 수 있겠지. 밥도 먹고.

 

(여기에서부터는 사진에 캡션을 다는 형식으로 이야기하는 비중이 늘어날 듯하다.)

 

힐튼 호텔 리조트의 체크인 카운터. 이런 힐튼 카운터는 생전 처음 봤다.
말레이시아 식당인 'MARAVI'. 피지 힐튼에 웬 말레이시안?
의외로 무난하게 생긴 석불상까지 있다. 의문의 갬성...
이른 시간이라서 아직 수영장에 나와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먹을 것을 호시탐탐 노리는 새. 힐튼에 오니 이런 새들이 정말 많았다.
계단형 수영장에서 바라보는 바닷가. 여기는 바닷가보다도 수영장에서 노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어른들 전용 식당 겸 바인 '코로'. 피지어로 '마을'이란 뜻이란다.
풀숲 속에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전통 석상. 갑자기 분위기 제주도....
리조트 내를 돌아다니는 순환 버스도 있다. '불라 익스프레스'.

전날까지 묵었던 로마니 리조트가 소규모로 조용하게 즐길 수 있는 아늑한 곳이라고 한다면, 힐튼호텔 리조트는 뭔가 이것저것 서양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잔뜩 때려넣은 호화로운 느낌의 공간이었다. 수영장도 두세 군데 있고, 바다를 보며 일광욕을 즐길 수도 있고, 부지도 제법 넓어서 한 바퀴 도는 데만 한참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부지 뒤쪽으로는 공사 중인 곳이 많아서, 그냥 바다 쪽을 바라보고 노는 게 마음 편하다. 아직 정오 전이라 그런지 수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는데, 기분 탓인지 몰라도 피지 본섬이 살짝 날씨가 서늘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오세아니아는 초겨울이라고 하지만 리조트에 있을 적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땅이 조금 넓어졌다고 벌써 살짝 온도가 내려가나 싶어서 신기했다. 리조트에 있을 때는 계속 반팔만 입고 다녔던 아내도 얇은 가디건을 한 장 꺼내 입었다.

 

점심은 리조트 안쪽에 있는 식당인 '코로'에서 먹기로 했다. 이른 시간이라 우리가 마수걸이인 듯했다. 피자와 한입 샌드위치 세트, 그리고 삼겹살 샐러드를 시켰다. 드링크는 뭘로 하겠느냐고 물어보기에, 낮부터 벌써? 싶기는 했지만 언제 또 시켜서 먹어 보나 싶어서 이번에는 피지 골드 맥주와 논알콜 모히또 한 잔을 시켰다. 의외로 상큼한 야채들과 잘 어울리는 얇게 썬 삼겹살 샐러드와 맛이 없을 수 없는 피자, 무난하게 맛있는 샌드위치였다. 다만 피지 골드는 생각했던 것보다 다소 평범한 맛이었다. 역시 피지는 비터 맥주여야 한다.

 

피지 골드와 함께 하는 한껏 서양식인 점심식사.
열린 창문 밖으로 수영장이 내다보인다.

 

점심 식사를 하고 마저 한 바퀴를 돈 뒤 다시 카운터로 돌아왔는데도 시간이 한참 남았다. 하릴없이 카운터에 나란히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시간이 되어 카운터에서 수속을 하고 방을 받았다. 3층짜리 건물의 2층에 위치한 방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뭐가 되게 많다. 회사 찬스로 이런저런 국내 리조트는 여러 번 다녀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리조트를 상급까지 끌어올리면 이런 느낌이 되는 건가 싶었다. 집에 온 것 같은 느낌.

 

벌써 두 번째 맞이하는 백조. 부엌에는 냉장고부터 핫플레이트, 전자레인지, 없는 게 없다. 식사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듯.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텔레비전. 뭔가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다.
미닫이문으로 침실과 이어져 있는 욕실. 빨래할 수 있도록 세탁기와 건조기, 빨래 널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바베큐 그릴도 준비되어 있다. 느긋하게 놀기에는 제격.
발코니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
웰컴 푸드로 준비된 컵케이크와 웰컴 카드. 다음 날 아침에 비행기 타러 가기 전에 잘 먹었다.

 

아내는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난 탓인지 짐을 풀자마자 잠이 들었다. 나는 그다지 졸리지 않아서, 다음 날부터 관광하게 될 시드니의 이런저런 장소들을 찾아보면서 코스를 짰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해 온 맥북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인터넷도 빵빵하게 터지고 말야. 마음 같아서는 이런 리조트에서 맨날맨날 살고 싶다니까. 시드니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볼 시간도 없이 그저 결혼 준비를 하는 데만 바쁜 나머지 이제서야 코스를 짜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하긴 뭐 밖에 나간들 이미 다 돌아본 곳들이고, 물놀이도 혼자서만 하면 재미 없으니까.

그렇게 코스를 짜고 있자니 아내가 잠에서 깨어 테이블로 왔다. 물 한 잔 마신 뒤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마저 코스를 짰다. 주로 시드니 시티 안에서 돌아다니는 코스로 짰음에도 볼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특히 시립 천문대에서 제공하는 관람 코스가 있다고 하기에, 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홀린 듯이 천문대 예약까지 마무리했다. 

 

제법 비싸긴 하지만 천문대에서 설명도 듣고 별도 볼 수 있다면 일석이조지.

코스를 다 짜고 나니 슬슬 배가 비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느지막하게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진 상태였다. 오전에 봐 뒀던 말레이시아 음식점 'MARAVI'로 향해, 나시 고렝과 미 고랭을 한 그릇씩 시켰다. 양식을 계속 먹었기 때문에 슬슬 아시아의 맛이 땡길 즈음이었는데, 다행히도 무척 맛있었다. 미 고렝도 양이 많고 맛있었는데, 나시 고렝이 생각지도 못하게 무척 매콤달콤하니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저녁을 배불리 먹은 탓에 다시 배를 꺼뜨리기 위해 근처를 슬슬 산책하기로 했다. 수영장 건너편에서 뭔가 왁자한 소리가 들리면서 번쩍번쩍한 조명이 깜박거리는 것이 보였는데, 잘 보니 무려 야간 클럽이 개장한 모양이다. 다들 광란의 땐스 파티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인싸들의 갬성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피해 최대한 멀리 돌아서 낮에 봐 뒀던 작은 카페로 향했다. 쿠키나 구움 과자들도 팔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여기서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도통 잊히지 않아 호키포키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고소하면서도 달달하니 후식으로 먹기에는 딱이었다. 

 

밤의 'MARAVI'와 여기에서 먹었던 말레이시아 음식.
간식 가게로 향하는 길에, 수영장 옆에 차려진 야외 클럽을 보았다. 으으 인싸들...
다양하게 준비된 쿠키와 컵케이크들을 뒤로 하고, 맛나는 아이스크림 한 팩을 사다가 먹었다.
목욕은 나 혼자 했다. 즐거워.

 

내일은 벌써 정든 피지를 떠나는 날이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짐을 챙겨 체크아웃을 하고 가이드 아저씨의 픽업 차량을 타야 한다. 이른 시간에 잠이 들어야 다음 날 무리 없이 일어날 수 있다. 체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나는 목욕을 좀 한 뒤에 잠자리에 들기로 했고, 체력이 아직도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아내는 다시금 침대 속에 파묻혀 있다가 일찍 잠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빨래도 좀 돌리고 건조기도 좀 쓰려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을 듯하였다. 일단은 자고, 내일 다시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