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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0526 Fiji | Sydney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4. 리조트에서의 둘째 날, 바다와 수영장에서의 물놀이와 섬 한 바퀴 돌기, 그리고 리조트에서의 마지막 밤

by 집너구리 2021. 11. 6.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3. 로마니 리조트 돌아보기, 평범했던 점심식사와 맛있었던 저녁식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2. 피지 본섬에서 배를 타고 로마니 리조트로 * 이 여행기는 코로나

sankanisuiso.tistory.com

아침은 평범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깔끔하고 정갈한 맛이었다. 아내는 팬케이크를 먹었는데, 늘 야심차게 도전하지만 자기 입맛에 맞는 팬케이크를 찾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피지에서 맞는 첫 번째 아침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반짝이는 햇살 사이로 부서지는 물살과 눈부실 만큼 푸르른 야자수. 일어나자마자 맞는 풍경이 늘 이렇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피지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왜 사람들이 그토록 휴양지에 열광하는지'를 사무치게 깨닫는 중이었다. 늘상 관광만이 여행의 즐거움인 줄 알았는데, 휴양은 또 휴양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는 듯하다.

 

아침을 먹으면서 수영장 쪽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즐겁다. 무슨 수영장이 이렇게 예뻐?
그냥 하늘만 올려다보고 사진을 찍어도 윈도우 배경화면 급의 물건이 나온다.

 

오늘은 아침을 먹고 잠시 쉬다가, 시간에 맞춰서 스노클링 체험을 가기로 했다. 나는 물놀이를 퍽 좋아하는 편이지만 바다에서 수영해 본 적은 없고, 아내는 바닷물은커녕 민물에서도 노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푸른 바닷속을 한 번쯤 보지 않으면 손해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액티비티 한 번은 하고 가야 신혼여행 가서 좀 놀아 봤다고 할 수 있지. 수영복으로 일단 갈아입고서 배 타는 곳으로 나오니 같이 갈 사람들이 두세 팀 정도 나와 있었는데, 절반은 백인, 절반은 아시아인(우리까지 포함)이었다. 전부 독채에서 머무는 사람들인 때문인지 서로 간에는 그렇게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배를 운전해 나가는 직원 양반이 무척 유쾌해서 나름대로 즐거운 항해를 했다.

멀리 피지 본토가 아스라하게 보인다.

날씨가 워낙 좋아서 먼 바다로 나가는 내내 배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머물던 말롤로 제도를 비롯하여 피지의 섬들이 전반적으로 야트막한 편이라, 바다로 나가는 동안 주변에서 드문드문 보이던 섬들도 얼마 안 있어서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얼마나 항해했을까, 보트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더니 어느 한 지점에 정박했다. '말롤로 대보초(Malolo Barrier Reef)'다. 여기에서 물로 뛰어들어서 놀면 되는 듯한다. 다만 스노클용 물안경과 오리발은 미리 리조트 측에서 빌렸는데, 깜박하고 구명조끼를 빌리는 것을 까먹어서 다소 당황했다. 남아 있는 것이 구명조끼 한 벌과 부양용 비트판 하나였는데, 나는 수영을 할 줄 알고 아내는 수영을 거의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아내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나는 비트판을 들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쯤해서 드는 안타까운 생각.

물 속은 정말 아름다웠다. 야생의 살아 있는 산호라는 것을 나는 생전 처음 봤다.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산호가 있고, 그렇게 다양한 물고기들이 산호 속에서 살고 있는지 나는 그토록 알지 못했다. 이렇게나 시원하고 이렇게나 아름다운 경치를 물 속에서 보고 왔는데, 사진을 도통 남기지를 못했다. 카메라는 고사하고 방수팩에 핸드폰을 넣어서 가져간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하지 못한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노는 것도 해 본 놈이나 하는 거라더니, 우리가 딱 그 짝이었다. 물놀이 같은 걸 다니지를 않으니 카메라를 준비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한 것이다. 에라이 파토다. 한참을 놀고 나왔지만, 남은 사진이라고는 돌아가는 길에 배 위에서 찍은 얕은 바다의 산호뿐이다. 이것만 해도 어디냐.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그래도 마지막까지 배 위에서 낚시를 해 보이겠다며 너스레를 떠는 직원 양반 덕분에 돌아오는 길마저 즐거웠다. 

 

그렇게 놀고 왔는데... 남은 건 이것뿐...

물놀이를 한참 하고 왔더니 배가 무척 고파졌다. 점심을 먹으려고 바로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조금 더 갖춰 입은 차림으로 다시 와 달라고 하기에, 일단 간단히 소금기를 씻어낸 뒤 옷을 입고 다시 식당으로 갔다. 아무리 리조트라고 하더라도 레스토랑에 드레스 코드는 있는 모양이다. 새콤달콤한 소스에 버무려낸 새우튀김과 쇠고기 스튜, 시그니처 샌드위치 세트를 시키고, 후식으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새우튀김과 샌드위치 세트는 딱 생각했던 그대로의 괜찮은 맛이었는데, 쇠고기 스튜가 제법 재미있는 맛이었다. 스튜인데, 위에 얹힌 것은 고수고, 밥과 샐러드를 같이 주는데, 스튜의 맛은 향신료 향이 다소 독특하게 코를 찌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너무나도 익숙한 갈비찜의 맛이다. 이역만리에서 맛보는 어쩐지 정겨운 소갈비찜 스타일의 스튜... 이것은 굉장히 귀하군요. 밥에 비벼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밥을 먹고 나서는 잠시 근처 원두막에 앉아서 쉬다가, 아직 물놀이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 앞의 수영장에서 놀기로 했다. 아내가 계곡이나 바다에서의 물놀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극도의 벌레 공포증 때문인데, 잘 관리된 수영장이니 벌레 걱정도 없고, 물도 깊은 편이 아니라서 즐겁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둘이서 거의 수영장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 잠수도 하고, 아내에게 수영도 가르쳐 주고, 숨 참기 가위바위보도 하고... 결혼준비 때문에 체력이 많이 떨어진 아내는 곧 지쳐서 다시 원두막에 누워서 잠이 들었고, 나는 잠수를 너무 열정적으로 하다가 그만 바닥에 입을 부딪혀 앞니가 살짝 나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놀이를 여러 시간 이어 하니 피곤해져서 한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인 후, 자전거를 빌려 섬을 돌아보기로 했다.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옆 플랜테이션 아일랜드 리조트까지를 돌아보는 것이 허용되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우리가 들어왔던 선착장까지 슬슬 갔다 오기로 했다. 플랜테이션 아일랜드 리조트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단체로 많이들 놀러와 있어서 사람이 드글드글했는데, 그 탓에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다. 대신 나중에 가족 단위로 놀러오면 이리로 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바퀴를 쭉 돌고 리조트에 돌아올 때쯤 되니, 해가 점차 석양 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긴 듯 짧은 하루가 벌써 저물고 있다.

 

불을 환하게 밝힌 저녁의 리조트 사무동.
바닷가 모래를 담아 만든, 각별한 모양새의 촛대.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석양 지는 바닷가에서의 식사. 밤이 되면 모기가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기에 모기 예방약을 잔뜩 바르고 챙겨까지 왔다. 야외에서 석양빛과 촛불에 의지해 식사한다는 드문 경험으로 리조트에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특별한 기분이다. 식사는 코스 요리로 준비되어 있고, 식전 빵부터 찬찬히 요리가 나오는 식이다. 이번에는 양고기 프렌치랙 스테이크와 해산물 파스타를 주메뉴로 주문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식전빵과 버터. 맥주도 추가로 주문했다. 피지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로는 동일한 회사에서 출시되는 '피지 비터(Fiji Bitter)'와 '피지 골드(Fiji Gold)'의 두 가지가 있는데, 골드는 살짝 달콤한 느낌이고 비터는 말 그대로 쌉쓰레하고 강한 맛의 맥주란다. 생수를 만들어서 팔 만큼 물의 질이 좋은 곳이니 맥주 맛도 좋겠거나 싶어 피지 비터를 한 병 시켜 나눠 먹기로 했는데, 올라오는 취기만 아니면 한 병 더 시킬 걸 그랬다 싶을 만큼 훌륭한 맛이었다. 마셔 본 라거류 중에서는 거의 최상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쌉쌀한 맛과 구수한 향이 묵직하게 올라오면서도 뒷맛이 무척 깔끔한 이상적인 맥주 한 잔이었다. 

 

전채로는 구운 조개관자와 오징어(칼라마리, calamari) 튀김 샐러드가 나왔다. 상큼하면서도 관자의 탱글함과 따끈따끈하게 잘 튀겨진 오징어의 감칠맛이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양고기로 유명한 오세아니아 국가이니만큼 프렌치랙이 맛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섬나라인 피지의 특색을 십분 살린 해산물 파스타 또한 정말 훌륭한 맛이었다. 해산물 파스타가 뭐 얼마나 다르겠나 싶은데, 정말 차원이 다른 싱싱함이었다. 그리고 이 식사의 대단원을 장식한 것은 카사바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조합이었다. 동그랗게 썰린 카사바 케이크를 시럽과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먹는 형태인데, 이게 생각보다 정말 잘 어울린다. 아무튼 간에 피지 비터와 카사바 케이크의 맛을 잊지 못하게 되어 버린, 그런 근사한 식사였다(그리고 이 부부는 한국에 와서도 망령처럼 피지 맥주를 구하는 방법과 피지식 카사바 케이크 레시피를 찾아 헤매게 되었고, 실제로 맥주 수입을 위한 절차까지 알아봤으며, 카사바 케이크는 두 번이나 해 먹는 데 성공했다는 후문이다). 

그야말로 마무리로서 완벽했던 저녁 식사. 모기만 없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방으로 돌아와서 아내는 방에서 밀린 게임을 하며 놀고, 나는 모처럼 테라스에 딸린 간이 수영장을 안 써 보는 것은 아쉽다는 생각에 잠시 물놀이를 조금 더 즐겼다. 세상에 내가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거야? 물에 들어가 있으면 모기한테 물릴 일도 없고, 기분 좋은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물놀이하고 있자니 제법 기분이 좋았다. 다만 다음 날에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피지 본토로 돌아가야 하니, 너무 놀아서 체력을 소비하는 것만큼은 피하기로 했다. 일단은 들어가서 씻고, 내일을 대비해야지.

 

수영장...독점...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