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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경기도 고양시 '라빈리커스토어'

by 집너구리 2022. 11. 13.

경고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를 유발합니다. 임신 중 음주는 기형아 출생 위험을 높입니다. 또한 알코올 중독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음주는 성인이 되고 나서 신중하게 합시다.

최근 아내가 드디어 운전면허를 땄다. 우리 부부에게는 차가 없는데, 기껏 딴 면허를 놀렸다가는 장롱면허가 될 결말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연수 기간이 끝나는 대로 카셰어링을 활용하여 여기저기 동네 마실을 다니고 있다. 

이것은 연수기간이 끝나고 나서 처음 아내가 모는 차를 타고 일산 마실을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 부부는 술을 둘 다 잘 마시지 못하면서도 누가 우리 집에 놀러 올 것을 대비해서 술을 일정 정도 이상 쌓아 두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마침 그 전전 주쯤 해서 집에 쌓아 놓은 술이 다 떨어졌다. 일산을 왔다갔다 할 때 눈여겨 뒀던 자유로변의 '라빈리커스토어'라는 가게가 있었는데, 기왕 나가는 김에 여기에 한 번 방문해서 어떤 술이 있는지 둘러보기로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라빈리커스토어에 도착했다. 1층 주차장에 어떻게 어떻게 차를 대는 데 성공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엘리베이터는 1-2층에만 운영하고, 그 위층들은 내부에 있는 무빙워크를 타고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대형 마트도 아닌데 무빙워크라니 다소 흥미로운 대목이다. 방문했던 시점에는 사케와 와인, 위스키를 가을 대목 할인이라는 이름으로 할인판매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벌써 한 달도 더 전의 일이다.

처음 2층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우리를 맞이하는 광경이 이렇다. 주당들이 죽어서 가는 천국은 이런 느낌일까? 왼쪽을 봐도 술, 오른쪽을 봐도 술, 앞을 봐도 술, 뒤를 봐도 술이다. 더구나 여기는 아직 와인만 전시되어 있는 공간. 다른 술들을 구경하려면 한 층 더 올라가야 한다. 와인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들 하던데, 과연 이렇게나 갖가지의 종류가 있어서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와인을 찾으려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게 생겼다.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와인을 고를지 고민하는 손님들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롭다.

한 구석에는 내추럴 와인만을 모아 놓은 코너도 있다. 사촌 누나에게 내추럴 와인의 세계를 배운 뒤로는 다른 와인보다도 공연히 내추럴 와인 코너를 한 번씩 기웃거리곤 한다. 어느 정도 맛이 표준화되어 있는 일반 와인과 달리 내추럴 와인은 매년 맛이 이리저리 널뛰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더욱 궁금함을 자아내기도 한다. 개중에는 마셔 본 술들도 몇 가지 보인다.

무빙워크를 중심으로 반대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여기는 술보다는 와인잔을 비롯하여 다양한 액세서리나 안줏거리 진열장이 준비되어 있다. 듣자 하니 와인은 그 종류별로도 잔의 모양새가 무척 다양하다고 하던데, 그저 모양새가 예뻐서 구경할 맛이 나는 녀석들도 제법 있다. 안주류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으나 치즈와 샤퀴테리, 절인 과일류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이태원의 유명한 치즈 및 샤퀴테리 제조업체인 '치즈플로'의 제품들도 눈에 띈다. 여기는 두어 번 가 본 적이 있었지만 갈 때마다 치즈의 질에 만족하며 돌아오곤 한다. 다만 우리 집에는 치즈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샤퀴테리 두어 종류로 만족하기로 한다. 치즈플로의 제품 하나, 그리고 또 다른 가게의 제품 하나를 구매한다.

이 술병은 그냥 예뻐서 찍었다. 밑바닥이 장미 모양이다.

3층으로 무빙워크를 타고 올라가면 여기는 전통주를 비롯한 각종 '비-와인' 술들이 가득하다. 가장 먼저 보이는 오른쪽 냉장고가 전통주 냉장고, 그리고 그 왼쪽은 사케와 일본소주 냉장고이다. 전시장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자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사케와 일본소주라고 해도 될 것이다. 동네 슈퍼나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팩사케부터 제법 이름 있는 양조장의 사케들까지 나름대로 라인업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지역 특산주보다는 널리 알려진 전국 단위의 양조장에서 온 술들 위주로 구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케나 일본소주 정도면 도수가 퍽 있기 때문에 술이 재고처리된다고 해도 변질되거나 할 가능성은 낮겠으나, 아무래도 수입하는 사람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다양하게 술을 들여오려면 갖가지 애로사항이 있을 것으로는 짐작한다. 자동차로 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음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초심자가 내 입에 맞는 술을 찾으러 가기보다는 이미 술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술을 사러 가기에는 최적화되어 있는 곳이라는 인상이다.

물론 중국 술을 빼놓으면 섭하다. 나는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 술이 이렇게 종류가 많은 줄도 몰랐다. 기껏해야 고량주, 소흥주, 공보가주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술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다만 중국 술은 내게는 너무 독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구경만 하고 넘어간다.

다음으로는 양주 코너이다. 양주는 정말 다양한 종류가 구비되어 있다. 흔히 양주 하면 생각나는 위스키 종류는 물론이고, 각종 리큐르와 럼 등등 그저 병 구경만 하기에도 재미있다. 요리나 베이킹에 종종 이런 독한 양주를 쓰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녀석을 구하려면 여러모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데, 한번씩 찾아와서 필요한 술을 사 가는 것도 괜찮겠다. 

양주 코너를 지나오면 드디어 우리 부부의 주종목인 맥주 코너가 나타난다. 그래 이거지. 물론 흔히 마트 등에서 팔리는 맥주들도 있지만, 그보다 우리는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각종 세계맥주에 더 관심이 많다. 에스토니아 맥주 같은 건 정말 구하기도 어려운 주종이다. 이것저것 서로의 취향에 맞춰서 카트에 넣다 보니 순식간에 카트 안이 그득히 찼다. 한참을 맥주 냉장고 앞에서 서성거리며, 내가 좋아하는 에일류 조금과 아내가 좋아하는 흑맥주 조금을 남기는 데 합의했다. 술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술 고르는 데는 누구보다도 진지하다.

요즈음은 전통주라는 이름을 단 국산 술들도 정말 많이 나오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로 옛날 옛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양조법으로 만든 술들도 있거니와, 그러한 양조법을 기반으로 해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 새로운 느낌의 한국 술도 많이 있다. 다만 아직 우리 부부에게 한국 술은 너무 독하거나 너무 달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번에는 이런 술들도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흥미롭게 구경하면서 넘어가기로 한다(집에 아직 독주가 많은 탓이기도 하다). 희석식 소주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가게의 나름대로의 소신(?)을 짐작할 수 있다. 희석식 소주는 술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내 개인적 견해와 맞닿아 있다고 느껴져 무척 마음에 든다.

그 가운데 우리의 눈길을 잡아끈 독특한 술이 하나 있었으니, 이른바 '떠먹는 술'이라고 하는 이화주가 그것이다. 막걸리의 한 종류라는데 일반적인 술의 제형인 액체 형태가 아니라 마치 요거트처럼 떠 먹을 수 있는 형태라고 한다. 유통기한도 생각보다 길어 누가 놀러 왔을 때 같이 먹어 보기에는 딱인 것 같았다. 호기심에 한 병 담아 본다.

덮어놓고 담다 보니 이렇게 술이 무려 열두 병(캔 포함)이 쌓였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말은 이런 광경을 두고 하는 말일까. 술도 잘 못 마시는 사람이 이러고 있으니 다소 우습기는 하지만, 친구들의 방문을 대비해서 나름대로 만전의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이라 마음이 풍족해진다. 점원의 친절한 대응까지 더해져 이번 방문은 대성공. 다음에는 포트와인이나 전통주 등도 좀 더 도전해 볼까 싶다. 다만 우리 부부가 늘 가장 원하는 바이엔슈테판 코르비니안은 아쉽게도 구하지 못했다. 어디든지 코르비니안을 들여놓은 가게가 있다면 제보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