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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20911 싱가포르

02. 야쿤카야 토스트로 먹는 아침식사와 싱가포르 MRT 타기(2일차-01)

by 집너구리 2022. 10. 10.

아침. 호텔에서 나와서 밥을 먹으러 간다.

싱가포르는 화교 출신들이 많이 사는 여느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조식 문화가 무척 발달되어 있다. 호텔 예약을 할 때 조식 포함 옵션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을 게 바깥에 얼마나 많은데 매일같이 어딜 가도 비슷비슷한 느낌의 호텔 조식을 먹을 순 없지. 

 

호텔 밖으로 나와서 큰길을 대각선으로 한 번 건너면 '시티 스퀘어 몰(City Square Mall)'이라는 쇼핑몰이 나온다. MRT 북동선 패러 파크(Farrer Park) 역과 연결되어 있기도 해서, 지하철역을 통해 움직여도 된다. 이름은 '시티 스퀘어'인데 어째선지 광장 앞에 서 있는 문 장식에는 '신세계'라고 대문짝만하게 한자로 쓰여 있다. 일본 오사카에도 비슷한 이름의 동네가 있지, 신세카이(新世界)라고. 거기는 음식점이 쫙 늘어서 있는 다소 정신없는 상점가인데, 여기는 그냥 쇼핑몰이 덩그러니 있는 느낌이다.

 

 

싱가포르에서의 대망의 첫 끼니는 한국에도 들어와 있는, 익히 이름이 알려진 '야쿤 카야 토스트'. '야쿤亜坤'이라는 것은 브랜드명이고, 여기서 주로 파는 메뉴는 '카야 토스트'이다. 판단잎과 달걀, 코코넛을 가지고 만든 '카야'라는 잼을 노릇노릇하게 구운 토스트에 바르고 버터까지 같이 끼워서 먹는 요리이다. 보통 세트를 주문해서 먹는다는 모양인데, 세트로 주문하면 카야 토스트, 반숙 계란, 그리고 밀크티 내지는 커피가 같이 나온다. 야채가 없다는 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아침 당을 채우기에는 딱 좋은 구성이다. 

시티 스퀘어 몰 지하로 2층 내려가면 야쿤 카야 토스트 가게가 있다. 물론 싱가포르 이곳저곳에 야쿤 체인이 많기 때문에 굳이 한 곳에 집착할 것 없이 그냥 자기 숙소 근처에 있는 지점을 가서 먹으면 된다. 가게가 그리 큰 편이 아니므로 주문하기 전에 먼저 자리를 잡는 것이 좋은데, 우리는 줄을 서고서 한참 후에야 그걸 깨달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리가 애매하게 두 사람 앉을 자리 없이 차 있다. 다행히도 오랫동안 한 자리에 앉아서 다양한 메뉴를 즐기는 느낌이 아니라 바쁜 아침에 자기 먹을 것만 딱 먹고 미련없이 자리를 비우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자리 순환은 빠른 편이다. 우리도 순번대기표를 들고 가게 주위를 어슬렁거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인도계 할아버지 한 분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비우신 덕에 생각보다 일찍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둘 다 카야토스트 세트를 시켰다. 아내는 차가운 밀크티, 나는 따뜻한 밀크티를 주문한 점만이 다르다. 카야 토스트는 납작하게 구워진 빵이 한 장, 그 위에 버터가 한 겹, 다시 빵을 한 장 얹고 그 위에 카야 잼 한 겹, 그 위에 빵을 얹어서 누르듯이 구워낸 모양새이다. 아내가 조사해 온 바로는 달걀 위에 간장을 좀 뿌려 먹으면 맛있단다. 근데 세트를 줄 때 간장을 같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 자리에는 간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든 통이 같이 놓여 있다. 궁금해서 점원에게 물어봤더니 간장은 옆에 있는 선반에서 가져가면 된다고 한다. 가져와서 보니 까맣지만 그다지 짜지 않은 중국식 간장과 백후추 통이다. 간장만 수란에 좀 뿌려서 토스트와 같이 먹으니 무척 맛있다. 토스트와 달걀을 따로 먹어도 되고, 토스트를 달걀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다. 다만 카야 잼이 조금 달다는 느낌. 

카야 잼이 달기는 하지만 외려 밀크티가 그렇게까지 달지 않아 균형이 잘 맞는다. 진하게 우려진 홍차에 연유를 타서 만드는 것 같은데, 제법 묵직한 맛을 낸다. 연유를 탄 커피를 마시는 경우도 있다지만, 이상하게 나는 이런 데에를 오면 꼭 차를 시키게 된다. 마지막 남은 토스트 조각과 계란을 같이 먹은 뒤 입가심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니 완벽한 아침식사 마무리가 된다. 첫 출발부터 나쁘지 않다. 

 

 

 

우리가 앞으로 싱가포르에 체재하는 동안 아주 뻔질나게 드나들 '패러 파크(Farrer Park)' 지하철 역이다.

싱가포르는 지하철이 제법 잘 되어 있는 나라에 속하는데, 도시철도(MRT)가 6개 노선에 경전철(LRT)이 3개 노선이나 존재한다. 경전철은 주로 주거지구에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관광객은 타 볼 일이 많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도시철도 노선을 이용하게 된다. 운영사가 2개 있고(SMRT, SBS Transit) 각 운영사 간에 아무런 제한 없이 환승이 이루어지는 등의 형태는 서울교통공사가 출범하기 전의 서울지하철 1-8호선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느 정도 철덕끼가 있는 게 아닌 한, 대부분의 관광객은 싱가포르 MRT가 두 개의 회사에 의해 운영된다는 걸 알아채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이용하느냐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통카드를 사고, 충전해서 찍으면서 다니면 된다. 이 카드는 '이지링크(ezlink)'라고 하는데, MRT는 물론 LRT와 시내버스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편의점에서도 간편결제로 사용할 수 있다. 한국의 티머니나 일본의 SUICA를 비롯한 다양한 교통카드들과 정말 비슷하다. 풍문에 따르자면 한국 신용카드 중에 마치 와이파이 신호를 눕혀 놓은 것 같은 마크가 붙어 있는 녀석들은 싱가포르에서도 교통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시험해 보지는 못했다. 

(좌) 우리가 구매한 이지링크 카드. 싱가포르 할머니가 그린 그림을 표지에 실었다. 귀엽다. (우) 여기에서 티켓을 사거나 카드를 충전한다.

구매 방법은 간단하다. 역 구내에 있는 역무원실에 가서 이지링크 한 장 달라고 하면 끝이다. 보통 한 장에 10SGD인데, 5SGD는 보증금이고, 나머지 5SGD가 가용 금액으로 충전되는 식이다. 역무원이 어떻게 카드를 사용하고, 어떻게 충전하는지 친절히 알려 준다. 개찰구 근처에는 보통 위의 사진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카드 충전기가 있어서, 카드를 기계 가운데에 있는 접촉부에 세운 뒤 현금 액수를 맞춰 충전하거나, 신용카드 결제로 충전시키는 식이다. 우리는 신용카드 결제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았고, 전부 현금으로만 결제하였다. 

 

(좌) 무스타파 센터의 남쪽 출입구. 값싸게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리틀 인디아의 명소다. (우) 무스타파 센터 옆에 있는 힌두교계 학교 건물.

공항에서 대략 100달러 정도만 환전을 했는데, 벌써 20달러가 사라졌다. 식물원에 가기 전에, 아내가 환전을 좀 미리 해 두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 왔다. 시내에서도 환전소를 잘 찾아서 들어가면 문제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는데, 기왕 환전소 근처까지 온 김에 아내 말대로 일단 환전을 좀 해 놓아서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구글 지도에서 '영업 중'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가장 가까운 환전소가 있는 무스타파 센터에 와 보니 웬걸, 환전소란 환전소는 전부 닫은 상태였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아직 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밤까지 불야성으로 영업하다가 좀 쉬자고 다들 셔터 내리고 들어간 건지는 알 길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센터 앞을 지나 다시 패러 파크 역으로 돌아간다. 환전소만 보면 바로 환전하는 것으로 하자고.

 

이제 본격적인 일정은 무려 1859년에 세워진 것으로 유명한 싱가포르 국립식물원(Singapore Botanic Gardens)에서 시작된다. 식물원이 무척 넓어서, 걷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한다.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는 순간이다. 

 

싱가포르 지하철에 대해 처음 받은 인상은 '무척 깔끔하고 무척 아기자기하다'는 것이다. 

모든 승강장은 대략 4-6칸 정도의 열차를 최대한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지어져 있는데, 거의 예외 없이 천장이 뚫려 있는 섬식 승강장으로 되어 있어서 개방감이 대단하다. 행선지의 경우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길목에는 일단 종점역 표시만 되어 있는데, 바로 그 앞에 진행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노선표가 세워져 있기 때문에 바로 확인 후 승강장을 골라 갈 수 있다. 깔끔하기 짝이 없는 UX다. 우리는 하버프런트(HarbourFront) 방면으로 한 정거장 가서 다운타운 선(Downtown Line)으로 갈아타야 한다. 한 정거장 정도면 사실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이지만, 최대한 걸음을 적게 걸어야 앞으로의 여행이 편해질 것 같은 여행자로서의 직감이 강하게 경보음을 울리고 있었다. 얌전히 지하철을 이용합시다.

열차는 모두 무인으로 운행되고, 깔끔하고 명확한 디자인의 내부 전광판으로 진행 방향과 접근 승강장, 그리고 열리는 문의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지하철이라면 대부분 적혀 있는 '두리안 반입 금지' 표시가 정겹기까지 하다. 자카르타에서도 저런 걸 봤었지. 금연 표지나 인화성 물질 소지 금지 표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면, 음식물 섭취 금지 표지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표지다. '차내 음식물 섭취 금지'로 유명한 것은 사실 대만이다. 지하철 객차 내에서 뭘 먹다 걸리면 몇십 만 원씩의 벌금을 각오해야 하는데, 그건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걸리면 한 번에 500SGD(한화 약 50만 원). 어차피 코로나 시대고 하니, 차 안에서 공연히 물 같은 거라도 꺼내다 마시다가는 경을 칠 수 있으므로 그냥 지하철에서 내린 다음에 역 구내를 벗어나서 뭘 마시든 하자.

동북선(Northeast Line, NE)을 타고 한 정거장 가서 리틀 인디아(Little India) 역에서 내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근처에 타밀계 싱가포르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다시피 역명은 로마자 표기, 중국어 표기, 타밀어 표기의 세 가지로 표기되는 것이 원칙이다.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의 4개 공용어를 모두 사용하는 나라다운 표기 방식이다. 차내 안내방송 중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간격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안전 방송도 4개 언어로 방영된다. 이런 식이다. 

 

영어 : Please mind the gap.

표준중국어 : 请小心空隙。

말레이어 : Berhati-hati di ruang platform.

타밀어 : தயவு செய்து தளம் மேடை இடைவெளியை கவனத்தில் கொள்ளவும்.

 

환승역일 때에는 '환승역(Interchange)'이라는 표현을 꼬박꼬박 붙여 주는 것도 특기할 부분이다. 

 

예) 일반역 접근 시

Next Station, Farrer Park. 花拉公园。

예) 환승역 접근 시

Next Station, Little India interchange. 小印度。

 

아무튼 리틀 인디아에서 내려서, 이번에는 다운타운 선을 타러 움직인다. 환승 동선이 조금 길다. 다운타운 선은 기묘하게도 도심 곳곳을 마치 매듭처럼 한 바퀴 돌아나가는 선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싱가포르 초행길인 사람이나 길치인 사람은 더욱 확실히 노선 방향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

도대체 누가 노선 선형을 이런 식으로 긋냐고요...
이렇게 다시 승강장으로 내려가서 정면에 있는 노선도를 보고 방향을 찾으면 된다.
사실 정면에 있는 진행방향표 말고도 이렇게 스크린도어에 진행방향이 잘 표시되어 있다.

다행히도 리틀 인디아 역에서 식물원(Botanic Gardens) 역으로 가려면 도심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해서 헷갈림의 정도는 훨씬 낮다. 편안한 마음으로 부킷 판장(Bukit Panjang)행 열차를 기다려 탄다. 세 정거장 가면 식물원 역이다.

도착!

드디어 싱가포르 국립식물원에 도착했다.

전철역 출구가 (당연하겠지만) 여러 군데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특별히 식물원 입구로 바로 이어지는 출구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하자. 아침 식사를 마무리한 지 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아홉 시 반인데 벌써 날씨가 제법 덥다. 아내가 야심차게 산 짐벌을 휴대전화에 장착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본격적으로 첫 관광길에 나선다. 

 

...걷기 시작한 지 5분 만에 양산 겸 우산을 꺼내 들었다. 싱가포르의 위도는 대략 북위 1도. 적도의 태양은 생각보다 강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