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기] 서울시 마포구 '무슈부부 커피스탠드'

예전에 회사 동료로부터 망원동 근방의 커피 맛집을 몇 추천받은 적이 있다. 그 때 추천받은 곳 중 하나가 '무슈부부 커피스탠드'다. 원래는 합정동에 더 가까운 곳에 있어서 교보문고를 다닐 적에 몇 번 그 앞을 지나다니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없어졌다 싶더니 망원동으로 이사를 갔더라. 마침 망원동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그 근방을 지나게 되어, 아침 커피도 못 마셨으니 한 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실 겉보기에 너무 힙해 보이는 가게라서 살짝 쫄아서 들어갔다는 것은 비밀.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이른 주말 시간이라 그런지 아직 손님은 나 혼자뿐이다. 한국에서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카페를 들어갈 때면 보통 에스프레소를 먼저 주문하는 편이다. 빨리 마시고 갈 수 있다는 압도적인 시간상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 커피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에스프레소를 받아 눈으로 보고 맛을 보면 대강 어떠한 스타일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지 조금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무려 에스프레소 바이기 때문에 말할 것도 없이 에스프레소를 한 잔 시킨다. 먼저 탄산수 한 잔 하시겠느냐고 물어 보시길래, 주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 한 잔 받았다. 에스프레소 바라는 것을 처음 와 봐서 영 뜨내기마냥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에스프레소 바에 오면 보통 탄산수 한 잔 하고 시작하는 것이 통례인가?

안경에 잔뜩 서린 김을 닦아낸 뒤 가게 안을 한번 둘러본다. 일반적인 주류들도 판매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수 있듯, 여기저기에 술병이 가득하다. 주로 위스키와 럼주 종류다. 전석이 카운터 석으로 되어 있어, 바리스타들이 일하는 모습을 상당히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 

커피 주문이 들어가면 이렇게 바리스타가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준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에스프레소'라는 이름치고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을 때쯤에 커피가 나왔다. 주문할 적에 설탕을 넣을지 말지를 물어보는데,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는 것이 무슨 어린아이 입맛임을 수치스럽게 공개하는 행위도 아니고, 발상지인 이탈리아에서는 오히려 그렇게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쓴 맛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얌전히 시키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쓴 맛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지만, 설탕을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설탕을 조금 넣어 달라고 했다.

마침내 나온 에스프레소. 설탕이 들어 있으니 한 번 살짝 저은 뒤에 설탕을 긁어서 떠내 드시라는 안내를 받았다. 숟가락을 푹 집어넣고 몇 번 휘휘 저어도 크레마가 전혀 풀리지 않을 만큼 쫀쫀하게 올라가 있다. 바리스타 선생님의 설명대로 다소 강배전된 원두다. 고소하면서도 진하고 씁쓸한 풍미가 묵직하게 코 안쪽을 때리는 느낌의, 맛있는 한 잔이다. 최근에 이곳저곳 동네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에스프레소만 매번 주문하고 다니는 내적 에스프레소 빌런으로 활동해 온 입장에서는, 요즈음은 영업을 거의 하지 않는 성산동의 모 카페 이후로 가장 맛있는 에스프레소였다. 훌륭하다. 

 

손님이 나뿐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리스타 선생님에게 이곳의 원두나 커피 내리는 방식에 대해서 사뭇 자세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강배전 원두로 에스프레소를 내렸을 때의 훌륭한 풍미라든지, 어떤 원두를 어떻게 볶아서 쓰고 있다든지, 바리스타님 본인이 내릴 때에는 어떤 식으로 세팅을 한다든지 같은 이야기들이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따라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할 일도 그다지 없다 보니 이렇게 전문가의 귀중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커피를 나름대로 취미로 삼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다. 조곤조곤 흥미롭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에스프레소 한 잔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고, 심지어는 탄산수도 벌써 다 마셨다. 마침 원두가 다 떨어질 때쯤이어서 덧붙여 원두도 함께 한 팩을 주문했다. 한 주 정도 더 묵혀서 룽고로 내려 드셔 보시라는 조언과 함께 원두 팩 하나까지 계산하고 나왔다.

 

기분 좋은 커피 한 잔이었다. 근처를 지날 적에 사람이 없으면 또 들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