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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꼬까자'

by 집너구리 2023. 2. 12.

혹자는 '부산까지 와서 화과자냐?' 라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화과자는 서울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논지일 것이다. 그러나 기실 화과자가 일본 과자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면, 오히려 외국 요리인 화과자야말로 한국 어디에서 먹든 맛있으면 그만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로 찾은 화과자집. 부산진구 전포동에 있는 '꼬까자'다. 

같이 부산에 놀러 온 친구가 찾아 둔 화과자집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음식들은 웬만하면 몇 번씩은 먹어 봤기 때문에, 이제 미식의 스펙트럼을 좀 넓힐 때도 되었다. 화과자를 그다지 자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싶어 한번 다녀와 보기로 했다.

 

여행 가이드 출신인 택시기사 선생님의 유쾌한 입담과 함께 전포동에 도착했다.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골목에 그득그득하다. 에그타르트 집이라든지 일본식 빵집이라든지 에스프레소 바 등등 흥미를 끄는 것들이 많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는 화과자를 먹으러 여기까지 왔으니 안 들어가 볼 수는 없다. 그렇게 길을 얼마 들어가지 않아 적벽돌 건물의 1층에서 화과자집 '꼬까자'를 발견했다. 간판이 매우 작기 때문에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무척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느낌의 작은 가게다. 유리로 된 미닫이를 밀어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곳의 화과자는 아마도 앙금을 반죽해서 시기에 따라서 다른 구성으로 만드는 네리키리練りきり인 모양이다. 지금 시즌에 판매되는 화과자의 모형을 계산대 위에 올려두고 있으니 참고해서 고르면 될 듯하다. 토끼해가 밝은 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온통 토끼 모양의 과자들이 가득하다. 네 명의 일행이 갔으니 매진된 것 이외의 과자들은 웬만하면 겹치지 않게 하나씩 시킬 수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다만 가게 내가 다소 협소한 고로 두 명씩 자리를 나눠 앉을 수밖에 없다. 나와 같이 앉은 친구의 테이블로는 유자앙금이 들어간 분홍빛 토끼, 흑임자 앙금이 들어간 까만색 토끼, 그리고 인절미 앙금이 들어간 하트, 이렇게 세 개의 과자를 시켰다. 화과자는 또 차와 같이 먹어 줘야 한다. 쌉쓰레한 차의 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더 달게 만드는 것이 화과자니까. 꼬까자의 차는 독특하게도 모두 블렌드 티인데, 마주 앉은 친구는 '복숭아 시간'을, 나는 '꼬까차'를 주문했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다정한 이불'과 '가벼운 산책'을, 그리고 우리가 시키지 않은 다른 과자들을 세 개 정도 주문했다. 과자 모양새도 귀엽고, 가게 이름도 귀엽고, 차 이름도 하나같이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이라 좋다. 

다과상차림의 모습.
이번에 주문한 차들을 설명해 주는 티 카드. '별빛을 보라'는 아쉽게도 주문하지 못했지만 카드는 받았다.

한 10분 정도 기다리자 다과가 나왔다. 마치 한 상차림처럼 준비해 주시는데, 1인당 찻주전자 한 개에 찻잔 한 개, 찻잔받침 한 개, 포크 하나와 꼬치 하나가 준비되고, 슈가파우더를 뿌린 정갈한 접시 위에 과자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나온다. 이 모양 자체가 그저 너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좋다. 화과자는 눈으로 한 번 즐기고 나서 입으로 한 번 즐긴다더니, 이 다과상 한 상차림 자체가 눈으로 먼저 즐기기에 아주 훌륭하다. 특히 저 꽃 모양의 찻잔과 나무로 만든 찻잔받침은 너무 예뻐서 어디서 사셨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꼬까티는 우롱차 베이스의 산뜻하고 깔끔한 차. 리치의 향이 은은하게 맴돈다. 친구가 마시는 복숭아 시간은 조금 더 기름지고 풍성한 풍미의, 복숭아 크림 같은 향의 차이다. 달달한 과자와 함께 들기에는 깔끔한 느낌의 꼬까티가 조금 더 어울리지만, 차 자체만 마시기에는 복숭아 시간도 괜찮다. 그건 그렇고 화과자를 먹기 위한 도구로 포크와 꼬치가 각각 하나씩 준비되어 있는 것이 궁금했는데, 물론 전통적인 취식 방법으로는 꼬치로 잘라서 찍어먹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지만 그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포크도 같이 제공하고 계신다고 한다.

 

자, 드디어 본론인 과자 맛에 대한 것인데, 그야말로 부담스럽지 않고 잘 조화된 맛이 난다. 물론 다과로서 차에 곁들여 먹는 과자이다 보니 달착지근한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하게 달기보다는 은은하고 뭉근하게 올라오는 단맛에 가깝다. 앙금의 향도 무척 절묘하다. 입에 막 털어 넣었을 때에는 강렬하지 않고 은근한 느낌의 향이 나는데, 제법 향이 강한 차를 같이 입에 머금어도 앙금의 향이 차 향에 지지 않는다. 흑임자도, 유자도, 인절미도 모두 맛있어. 느긋하게 따뜻한 차 한 잔과 달달한 과자 한 입을 들면서 여유를 만끽하기에는 제격이다. 아, 꼭지 쪽 껍질이 살짝 까진 귤 모양의 화과자도 있었는데, 이건 정말 껍질이 까진다! 껍질은 평범한 화과자 반죽 맛이고, 안쪽의 귤 모양 과자는 흰앙금이 들어가 있다. 정말 귤맛이었으면 재미있었겠지만 이건 이것대로 재미있다.

가게 안의 모습을 둘러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이다. 화과자 가게라지만 저고리를 수놓은 수틀이라든지, 호랑이가 그려진 족자라든지, 나전칠기장 같이 한국스러운 소품들도 은근히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선물용 포장에 색동끈을 쓰는 것도 재미있다. 벽에 붙어 있는 테이블에는 매년 계절별로 바뀌는 화과자 메뉴를 그림과 함께 설명해 둔 작은 책자들이 놓여 있어서 하나하나 들추어 보면서 봄의 과자는 이렇구나, 여름에는 이런 걸 먹으러 오고 싶다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 다과회의 본질 중 하나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다과회에 곁들이기 위한 좋은 화젯거리 중 하나일 것이다.

 

화과자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즐겁게 먹고 마신 시간이었다. 도중에 일행 중 한 명이 회사 일로 서울로 돌아가야 했던 것이 다소 아쉽기는 했으나, 그도 나름대로 잘 먹고 잘 마시고 갔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은 이 날보다 조금 뒤였기 때문에, 과자를 사 가지는 못했지만 차 티백은 몇 종류씩 사서 기념으로 들고 왔다. 나중에 또 부산에 올 일이 있으면 다시 방문해서 느긋하게 다과를 즐기고도 싶은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