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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방문기] 서울시 마포구 '칼디 커피'

by 집너구리 2023. 1. 14.

 

'젊음의 거리'라는 말로 수식되는 곳, 홍대에 간다. 수많은 음식점과 카페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이곳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이 몇 있다.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고는 있으나 사실 나도 홍대 쪽에 발을 붙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뜨내기이기는 하다. 홍대 길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수많은 가게들 중에서도 특히 이내 뜨내기 발걸음을 붙들어매는 곳들이 몇 곳 있는데, '칼디 커피'가 그 중 하나다.

 

에티오피아의 한 산골, 이상하게도 기운 넘치게 뛰노는 양떼들을 따라갔다가 커피를 발견했다는 목동의 이름이 '칼디'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카페가 문을 연 것이 1991년이다. 오륙십 년은 고사하고 10-20년 된 가게 찾기도 쉽지 않은 이 나라에서 30년씩 카페를 영위하고 있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 홍대를 그렇게 들락거려도 이 카페를 발견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길거리를 걷다가 엄청난 규모의 장식품과 모카포트 컬렉션을 발견하고 궁금해서 들어가 보게 된 것이 작년인가 재작년 무렵이다. 범상치 않은 외관을 자랑하는 데다가 수많은 가게들이 명멸하는 이곳에서 자랑스럽게 개업연도를 붙여 놓은 것을 보니 궁금해서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칼디 커피는 평소, 특히 주말 낮에서부터 저녁에는 사람으로 꽉 차 있는 것이 다반사이지만, 주말 아침에는 거의 전세를 낸다고 해도 될 만큼 사람이 없다. 덕분에 이른 아침에 홍대로 출타를 나갔다면 모닝 커피 한 잔 하기에는 딱인 곳이다. 피크타임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기 때문인지 이용 시간을 2시간으로 한정해 뒀다. 카운터 뒤의 찬장에도 사장님의 컬렉션인 듯싶은 커피 용구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다양한 종류의 커피잔과 드립 주전자가 눈에 띈다. 붉은색의 예쁜 칼리타 펠리컨 드립포트만 보면 나는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다. 법랑이라 직화에 올릴 수 없다는 점을 늘 되뇌면서 구입을 참고 있다는 것은 비밀.

 

기본적으로 칼디에 오면 나는 핸드드립 커피를 주문하는 편이다. 원두 종류별로 고민하면서 고르기도 좋고, 무엇보다도 맛이 좋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들이 카페 음료의 주류가 되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도 칼디를 비롯한 홍대~연남동으로 이어지는 동네에는 핸드드립을 주력으로 하는 카페들이 많이 있어서 좋다. 과테말라 한 잔을 따뜻하게 주문하고 나서 가게 안을 구경한다. 이 날도 역시나 사람이 없어서 거의 전세 낸 느낌으로 카페를 구경할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식물 카페'들처럼 식물을 엄청나게 들여놓은 것은 아니지만, 칼디의 볼거리 중 하나라고 한다면 역시 생각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는 식물들이 있다. 수는 적지만 상태가 다들 제법 괜찮다. 여인초가 다소 괴로워 보이기는 하지만. 역시 카페라서 그런지 커피나무가 두어 그루 창가의 볕을 받으며 서 있는 것이 보인다. 한번은 칼디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창가에 놓여 있던 깅기아눔 화분과 안스리움 화분을 열심히 다른 곳으로 옮겨다 놓는 직원들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식물을 잘 관리하면서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벽에는 에티오피아를 의식하고 있는 듯한 아프리카 느낌의 액자들이 걸려 있다. 전반적으로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내가 카페를 처음 다니기 시작했을 때쯤의 느낌이 물씬 나는 인테리어다. 나는 이런 느낌의 아늑함을 사랑한다.

가게 가운데에는 철제 선반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는데, 인테리어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없지만 이건 거의 순전히 사장님의 그라인더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닌 게 아니라 몇십 개의 그라인더와 그 사이에 살짝살짝 숨어 있는 흔치 않은 커피 용구들(예: 나폴리타나 포트)이 선반에 빼곡하게 놓여 있는 광경은 장관이기는 하다. 쿠키와 드립백 선반도 있고, 물 서버도 있으니 물 한 잔이 고픈 사람은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이런저런 상패와 사진 같은 것들을 잔뜩 걸어 놓은 것도 그야말로 오래 된 가게라는 느낌이다(칭찬이다). 아저씨 취향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없겠으나 나는 이상하게도 원래부터 이런 장식들이 마음에 들더라고. 이유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정작 자기 집에는 사진도 잘 걸어 놓지 않으면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아내와 카페에 가면 늘 아내는 차를 주문한다. 오늘의 메뉴는 아내는 캐모마일 티, 나는 과테말라 핸드드립. 차는 프렌치프레스에 담겨서 나온다. 속도를 조절하면서 알아서 따라 마시면 된다. 제법 추운 날이었어서, 따뜻한 차와 커피 한 잔씩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몸이 점점 녹는 것이 느껴졌다. 특별할 것도 없이 음료 한 잔씩을 끼고서 이렇게 느긋하게 보내는 아침이 좋아서 오전의 카페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웠으면 아주 뻔질나게 드나들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