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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경기도 성남시 '클준빛날영'

by 집너구리 2023. 5. 21.

용인에 이사 온 이후로 용인-성남 근방의 맛집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아내가 판교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쪽 식당들을 다니다가 괜찮은 곳들을 발견하면 같이 가자며 알려 주고는 하는데, 나는 재택근무라 집을 나갈 일 자체가 많지 않아서 같이 뭔가를 먹으러 가기가 애매하다. 결국 가물에 콩 나듯 사무실 나갈 때에나 외식을 노리게 되는데, 그래도 이사 오고서 얼마 동안은 집에 인터넷이 없어서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어 있었다. 출근하는 회사원의 불쾌한 정서를 오랜만에 맛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다가 퇴근하려는데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라멘이나 한 그릇 먹으러 갈래? 아내는 라멘 맛에 퍽 까다로운 편이기 때문에, 이런 기회는 퍽 흔치 않다. 가게 위치를 물어보고 바로 퇴근하자마자 판교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오늘 갈 라멘집은 '클준빛날영'. 판교 제2테크노밸리인 삼평동에 있는 가게이다. 지하상가에 있는데, 제법 구석진 곳에 있어서 한참을 지하를 빙글빙글 돌다가 겨우 찾아냈다. 별도의 간판이 붙어 있다기보다는, 광목 비슷한 천에 '클준 빛날영'이라고 판본체로 인쇄되어 있는 두루마리 족자가 걸려 있다. 이건 이것대로 캐릭터가 명확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그렇고 상호 구성을 보아하니 사장님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쓴 듯하다.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가게는 보통 자신감이 있다는 뜻으로 일단 받아들이고 들어가는 편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맛있는지 한 번 솜씨를 받들러 가 보실까.

제법 정취가 있는 천막 간판
가게 앞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식이다.

가게 문 바깥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주문하고 나서 점원에게 티켓을 전달하면 주문이 들어가는 식이다. 가게 안에는 비교적 늦은 시간인데도 사람이 많이 있어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다만 독자의 흥미를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요즘 많이 생겨나는 카운터석 형태의 라멘 가게다. 디귿자 모양의 카운터석이 가게 가운데에 있고, 직원이 그 가운데를 왔다갔다하면서 주문을 받거나 자리를 청소하는 식의 형태이다. 아내는 시오파이탄을 주문하고, 나는 미소라멘을 주문했다. 파이탄이란 한자로 풀이하자면 '백탕白湯'인데, 아마도 중국어식으로 읽었을 때의 발음인 '바이탕'을 일본식으로 옮긴 게 아닌가 싶다. 닭으로 끓인 육수인데 마치 사골마냥 국물이 뽀얀 것이 특징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사골마냥 닭뼈의 골수가 녹아나올 만큼 뭉근하게 끓여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가게에서는 소금(시오)으로 간하는 '시오파이탄'과 간장(쇼유)으로 간하는 '쇼유파이탄'을 팔고 있고, 그 외에도 매운 라멘과 미소라멘을 팔고 있었다. 미소라멘은 평소 웬만해서는 맛있게 하는 집을 찾기가 어려운데, 여기 미소라멘이 괜찮다는 후기를 읽고 혹해서 시켰다. 

시오파이탄.
미소라멘.

자리에 앉아서 그리 길게 기다리지 않았음에도 식사가 상당히 빨리 나왔다. 서로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먼저 서로의 라멘을 한 젓갈씩 먹어 본 다음에 본격적으로 자기 음식을 먹기로 했다. 

공통적으로 느껴진 것은, 면이 딱 좋게 삶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부부 모두 평소 면을 꼬들꼬들하게 삶아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흔히 하카타 사투리로 바리카타(バリかた)라고 하는, 딱딱하다시피 꼬들꼬들한 면의 식감에 가깝게 삶겨져 있어서 식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파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도 좋고, 맛달걀과 차슈도 무척 맛있었다.

각각의 요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우선 시오파이탄은 상당히 정석적인 라멘이었다. 국물이 진하면서도 깔끔하고, 꼬들꼬들한 면과 무척 잘 어울린다. 닭이란 것이 은근히 잡내 잡기가 어려운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 미소라멘도 베이스는 같은 닭육수라 그런지 기본적인 향과 맛은 시오파이탄과 같은 결 위에 있는데, 미소로 간을 해서 그런지 은근히 달착지근한 맛이 올라온다. 미소라멘을 많이 먹어 보지를 않아서 이것이 미소 자체의 단맛인 것인지, 아니면 당을 더 첨가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입맛에는 조금 달게 느껴졌다. 라면 종류별로 위에 올라간 고명을 조금씩 달리한 것도 흥미로웠다. 미소라멘은 클리셰를 충실하게 따른 듯 스위트콘이 올라가 있고, 시오파이탄은 김과 잘게 썬 목이버섯이 올라가 있다. 물론 각 고명들도 국물과 면과의 조화가 퍽 자연스럽다.

일본 문화에 익숙한 경우가 많은 게임업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라 그런지, 홍대 바깥에서 먹어 본 라멘 중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밸런스도 좋고, 기호에 따라 양념이랄까, 간 재료를 다르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다소 찾기가 어렵다는 맹점은 있지만. 은근히 생각날 만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