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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홈카페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홈카페를 만들어보자

by 집너구리 2021. 4. 17.

도대체 이 블로그의 주제가 정확히 뭔지 나도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 죽어라고 대만 유람기를 적어서 올리다가 어느 순간 여기저기 집 근처에서 다녀온 커피집들 얘기를 하지를 않나, 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일본의 이야기꾼 할배 얘기를 하다가도 또 신변잡기스러운 이야기를 잔뜩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아마 출판사에 내가 쓴 글을 책으로 엮고 싶다고 가져가면 당최 이걸 가지고 무슨 내용을 만들고 싶은 것이냐고 퇴짜를 맞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근데 돌아보면 나는 항상 이랬다. 아니 정확히는 내 글들이 항상 이랬다. 정말 아무데서나 힌트를 얻어서 아무런 내용이나 쓰고, 그나마도 시리즈물로 이어가는 것을 잘 못하다 보니 늘상 일을 벌리기만 잘 하고 정작 제대로 마무리되는 것이 없다.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글을 쓰면서 지내온 시간이 어느덧 십여 년이 넘었다(!).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 시절에 썼던 글들을 보면 참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 글들에서 느껴지는 것은 나 자신의 체취일 밖에 없다. 소잿거리가 잘 떠오르지 않아 예전에 썼던 글들을 보러 갔다가 정신적인 타격을 받고 돌아온 것 같다면 그 생각이 맞다. 어찌 보면 다른 의미로, 글을 쓰는 자세만큼은 참 일관적이었다 싶다. 그러니까 지 하고 싶은 말만 주야장천 써대는 자세가 그것이다. 

 

서두가 길었지만, 그래서 또 말도 안 되는 말머리를 또 하나 붙이고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 말머리를 가지고 몇 개나 되는 글을 짜낼 수 있을지, 스스로도 귀추가 주목되는 지점이다.

 

 

활동적인 집콕이는 빵을 좋아해요

 

요즘 주위 사람들이 회사 안팎을 막론하고 늘 묻는 말이 있다. "재택근무가 오래 되면 지루하거나 좀이 쑤시거나 하진 않으세요?" 그에 대한 내 대답은 항상 일관적이다. "네, 저도 제가 이렇게 집을 좋아하는 줄 몰랐답니다." 꼭 필요한 일이 있거나 운동을 나갈 때가 아니면 집 밖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은 지 어느덧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아내는 평소와 다름없이 평일에는 매일같이 투덜거리며 출퇴근을 하고, 나는 집에서 하루종일 지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안일의 대부분을 내가 하게 되었다. 이 집안일이라는 것이 참 특이해서, 세세하게 신경을 쓰려면 한도끝도 없이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기를 치우면 또 저기 있는 먼지가 눈에 띄고, 밥 시간이 다 돼서 반찬을 다 차려 놓고 밥을 푸려고 보면 밥솥에 밥이 한 톨도 없는 식이다. 일찍 일어나 회사를 가야 하는 아내에게 아침밥을 차려 주고 배웅하고 나면 내 출근 시간까지 한두어 시간이 남는데, 또 뭔가를 붙잡고 만들고 있다 보면 어느덧 출근 시간을 알리는 스마트스피커의 알람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다행히 결혼 전에 집에서 하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집안일이 손에 붙는 것 자체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밥반찬 하는 방법을 물어보려고 양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돌리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덩달아 의문의 효도까지 한 것은 비밀.

 

집안일이 손에 익어 웬만한 것은 후닥닥 해치우게 되자, 슬슬 시간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 오고가는 사이라든지 주말이라든지, 하여튼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자기계발을 위해 공부를 하거나 나름대로 노력들을 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아니 대학을 다닐 적부터 기본적으로 편도 2시간은 걸리는 통학길/통근길을 주로 잠이나 게임으로 보내던 게으르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말하자면 타고난 한량인 셈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나 자신을 (업무적으로) 발전시킬까보다는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내가 즐거울 수 있을까'를 골똘히 고민하는 인간이 나라는 인간이다. 물론 책을 읽거나 흥미로운 지식이 담긴 콘텐츠를 소비하는 등의 여가 활동들도 예전에 비해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나는 뭔가 손을 움직이고 싶었다. 유치원 때부터 뭔가 혼자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러나 본격적으로 취업을 하고 만날 자판을 두들기는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손맛'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각하게 된 것이 '뭔가 만들어 먹어 보자'는 것이었고, 때마침 운이 좋게도 아내가 생일 선물로 소형 오븐토스터를 받아온 것이 계기가 되어 베이킹을 시작하게 되었다.

 

베이킹에 빠지게 된 것이 대략 작년(2020년) 중반경의 일이다. 정말 미친 듯이 빵과 과자를 구웠다. 심지어는 새벽 2-3시까지 오븐을 붙잡고 있다가 결국 아내에게 한 소리 듣기까지도 했다. 정작 오븐의 주인은 사용방법조차 잘 알지 못하는데, 임차인이 어느 순간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그러구러 몇 달이 지나자, 이제 기본적인 식사빵이나 좋아하는 과자류(예: 초코칩 쿠키 등)는 레시피를 보지 않고도 어느 정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빵이나 과자의 레시피라는 것이 사실 큰 틀에서는 기본적으로 유사해서, 조금의 차이만 잘 지켜내면 그 다음부터는 수월하게 맛있는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법이다.

빵요정 시절의 사진들... 뭔가 중간에 스파이들이 있지만 무시하도록 하자

이렇게 하여 베이킹이 어느 정도 일상에 녹아들게 되자, 당연하겠지만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다. 운동을 한다고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빵이나 과자에 들어가는 탄수화물과 지방의 양이란 것이 장난이 아니다. 먹는 열량이 많으니 당연히 살이 찔 수밖에 없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결국에는 점차 베이킹의 빈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베이킹 취미가 살짝 시들해졌다. (물론 좋아하긴 했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참아야 했다). 이렇게 되니 다시 슬슬 딴생각을 할 여윳시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뭔가 손을 바삐 움직일 수 있으면서 그 결과물이 유용하거나 즐거운 것이 없을까? 바느질도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장비발을 세우기 좋아하는 성격상 덜컥 미싱을 사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쉽사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가운데, 대학 동기들끼리 이야기하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누군가가 커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원두를 사다가 갈아서 직접 커피를 내려먹는다는 행위가 이전에는 썩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집 근처 카페에만 가도 충분히 맛있는 커피가 수두룩한데(나는 홍대 근처에 산다!), 굳이 집에서 내려먹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러나 지금은 카페조차도 마음껏 갈 수 없는 시기다. 카페가 다 뭔가! 집이 아닌 다른 실내 공간에 들어가서 마스크를 벗는다는 것 자체가 두려운 시기가 아닌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직접 커피를 내려먹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그 친구에게 입문용 커피용구를 추천받은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이제 이 주방은 제 겁니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깔끔한, 모카포트

 

발단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에서 김영하 선생이 웬 이상한 주전자로 커피를 내려 마시는 장면을 스쳐 지나가듯 본 순간이었다. 친절하게도 자막으로 그것이 '모카포트'라는 물건이며, 이탈리아 사람들이 커피를 내려먹을 때 쓰는 독특한 종류의 주전자라는 사실까지 같이 흘러나왔던 기억이 난다. 첫 추출용구로 모카포트를 사기로 결심한 것은 이때 김영하 선생이 특유의 우아한 몸짓으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멋들어져 보여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들이게 된 것이 비알레띠 사의 '브리카'였다. 일반적인 모카포트와는 달리 추출구에 압력추가 달려 있어 보다 높은 압력으로 추출되고, 따라서 더 상업용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형태의 커피가 나온다는 선전 문구에 홀랑 넘어간 것이다. 처음에는 영 익숙하지 않아 커피와 구정물 사이의 그 무언가를 추출하곤 했지만, 점점 손에 익으면서 이제는 먹음직스럽게 크레마가 올라오는 커피를 곧잘 뽑아내게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브리카로 내린 커피의 모습.

내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니, 다음으로는 손님들이 왔을 때 대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카포트의 몇 안 되는 단점이라면 포트마다 추출량이 정해져 있다는 점인데, 내가 갖고 있는 녀석은 1-2인분만 뽑아낼 수 있는 용량이어서 여러 명이 집에 찾아오면 대접할 수가 없다는 점이 불편했다. 놀랍게도 동네 이마트에 좀더 큰 용량의 일반형 모카포트를 팔고 있어서, 그것을 사다 집에 두기로 했다.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모카포트를 들여놓고서 집에 손님이 온 일은 한두 번밖에 없었지만, 본가에 갈 때 모카포트를 들고 가서 식구들에게 커피를 내려 주는 방식으로 영업(?)에 성공하긴 했다. 선물로 포트와 핸드밀을 사다 드렸더니 주말마다 열심히 내려 드시고 계신다는 후문.

 

뜯어보면 모카포트는 참 희한하면서도 예쁘게 생겼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기묘할 정도로 수집벽이 고개를 들게 만드는 녀석이기도 하다. 한번은 어라운지에 갔다가 아주 작고 귀여운 1컵짜리 모카포트에 홀려 그 자리에서 구입해 돌아오기도 했고, 최근에는 당근을 기웃거리다가 무려 카푸치노를 만들 수 있는 모카포트를 발견해 사들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더 사게 되면 도저히 둘 공간이 없을 것 같아 최근에는 자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특유의 짤뚱하면서도 귀여운 모양새만 보면 지갑으로 향하는 손을 뜯어말리느라 애를 먹곤 하는 것이다. 

 

집에 모아 둔 모카포트들. 비알레띠 사의 제품이 대부분이다. 

 

 

커피입문의 필수품, 핸드밀

 

쓸 만한 자동 그라인더의 가격은 무시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가장 신선한 원두의 향을 즐기기 위해서는 바로 간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것이 제일인데, 10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는 전동 그라인더의 가격은 도저히 내 용돈의 범위 안에서 살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대신 눈을 돌린 것이 핸드밀이다. 물론 핸드밀도 비싼 것은 기십만 원을 호가하는 것들이 있지만, 입문용으로 괜찮은 칼리타 사의 KH-3 모델은 3만원 언저리에서 구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서 산 모델이었는데, 과연 입자도 제법 고르게 갈리고 절삭력도 괜찮아서 한동안 정말 열심히 돌렸다. 그러나 뚜껑이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인해, 주말에 커피를 갈고 있으면 아내가 카페인 향기를 맡고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점차 잦아졌다. 

 

마침 산책 삼아 찾아간 어라운지에서 하리오 슬림 핸드밀을 할인해서 팔고 있기에 업어오는 데 성공했다. 무게도 가볍고, 뚜껑이 있어서 커피 향이 상대적으로 덜 빠져나오는 것이 매력 포인트였다. 여행용으로 가지고 다니기에는 제격이기도 했고. 열심히 커피를 갈아 내리던 어느 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친구가 더 이상 모카포트 수준의 곱기로 원두가루를 갈아내지 못하고 헛도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청소할 적에 스프링을 자꾸 뺐다 꼈다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너무 많이 써서 날이 닳아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말하자면 결국 이 핸드밀로는 프렌치 프레스나 핸드드립용 곱기로만 원두를 갈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관리가 어렵더라도 쇠로 된 날을 좋아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쇠날인 칼리타  KH-3과 세라믹 날인 하리오 슬림.

 

 

넣고, 물 붓고, 누르면 뚝딱, 프렌치 프레스

 

하루는 홈플러스에 장을 보러 갔다가, 우연히 할인판매를 하고 있는 보덤 사의 프렌치프레스 제품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커알못이라 '좋은 회산가...?' 라는 의문이 들어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더니 무려 프렌치프레스를 처음 만든 회사란다. 유리로 만든 제품과 보온병용 스테인리스 재질로 된 제품이 있었는데,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스테인리스제 프렌치프레스를 사기로 했다.

 

 

왜 굳이 '프렌치'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렌치 프레스야말로 바쁜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 커피용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커피를 갈아 담고, 뜨거운 물을 붓고, 4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거름망으로 눌러 따라 마시면 그만이다. 심지어 유명 바리스타 제임스 호프만 선생이 만든 '궁극의 프렌치 프레스 테크닉' 영상에서조차, 추가로 필요한 테크닉이라곤 그저 시간을 더 들이고 숟가락으로 액체 위쪽을 몇 번 저어 주는 정도일 만큼 프렌치 프레스는 간단하면서도 풍부한 맛을 뽑아낼 수 있는 기구이다. 지금 이 글 또한 프렌치 프레스로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쓰고 있다. 아, 뜨거.

 

한때는 '커피가 직접 내려가는 과정'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워 다이소에서(그렇다, 다이소에도 이런 것이 가끔씩 팔린다) 싸구려 프레스를 하나 들여놓고 쓴 적이 있었는데, 고작 두 달 만에 유리가 작살나 버렸다. 코로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테인리스제인데다가 구조가 비교적 간단해서 설거지하기도 쉬운 편인 이 프레스가 여행할 때 간단하게 내려 마시기에는 가장 괜찮은 용구인 듯하다. 후술할 휴대용 에스프레소 머신도 있지만, 아무래도 편의성의 측면에서는 프렌치 프레스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겠다.

 

오늘도 커피를 내리는 데 썼던 보덤 사의 여행용 프렌치프레스.

 

 

깔끔하고 향이 살아나는 커피를 위한 핸드드립 용구

 

사실 핸드드립 용품은 엔간해서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종이 필터를 매번 써야 한다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소모품이 들어간다는 시점에서 환경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썩 내키지는 않는 상황이었는데, 마침 알맹상점에서 천 필터를 파는 것을 보고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필터를 보자마자 낼름 핸드드립 용구를 사온 것을 보면, 결국에는 한번 내려 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커피와 관련하여 늘 신세를 지고 있는 제임스 호프만 선생의 경우, 핸드드립을 할 때 제일 선호하는 필터는 메탈도 종이도 아닌 천 필터라고 한다. 관리만 잘 되면 나머지 양쪽의 장점만을 모두 취한 훌륭한 한 컵을 뽑아낼 수 있다고. 나는 메탈 필터와 종이 필터는 직접 써보지 않아 그 의견에 100% 공감할 순 없지만, 과연 천 필터를 사용하여 내린 커피 한 잔이 무척 훌륭하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향미가 살아나면서도 기름맛이 덜 나 깔끔하고, 무엇보다도 아침에 내려 놓은 은 서버 속의 커피가 햇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모를 아름다움이다. 다만 천 필터는 내리자마자 깔끔히 씻어서 냉동실에 얼려 두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어, 무척 좋은 원두를 받았을 때나 핸드드립 자체의 즐거움을 즐기고 싶을 때 이외에는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리오 V60 드리퍼와 서버. 세트로 구비했다. 관리가 쉽고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준다.

 

 

앞날을 대비하여 준비한 휴대용 및 반자동 에스프레소 기계

 

사실 이렇게까지 다양한 용구들을 하나씩 써 보고 있자면, 결국 최종보스까지 한 발짝씩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홈카페 매니아들의 궁극적 귀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에스프레소가 그것이다. 압력과 물 온도, 입자의 굵기와 커피의 종류까지 너무나도 다양한 변수가 있는데다가,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 기구와 그라인더를 구비하려면 기십만 원은 우습게 태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잘 내린 에스프레소에 얹혀 있는 폭신한 크레마와,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머금었을 때 느껴지는 풍성한 향과 은은히 올라오는 단맛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한번 에스프레소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좌) 휴대용 에스프레소 기구. 상단의 펌프는 접어서 보관할 수 있다. 컵까지 일체형이다. (우) 당근에서 싸게 업어왔는데 아직까지 혼란스럽기만 한 에스프레소 머신.

 

에스프레소 용품은 대부분 당근마켓을 통해 샀다. 앞으로 여행을 가거나 할 때 사용하려고 산 휴대용 에스프레소 기구와, 드롱기에서 나온 다소 연식이 된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이 그것이다. 부속 용품들인 우유 피처나 탬핑매트, 탬퍼 등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어라운지를 이용해서 구매했다. 휴대용 에스프레소 기구는 커피를 넣고, 탬핑 스푼으로 다지고, 뜨거운 물을 부은 뒤 위에 달린 펌프로 여러 번 공기압을 주입해 주는 식으로 커피를 내리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라도 처음 내릴 때 퍽 시큼한 맛의 커피가 나왔다. 찾아보니 원두의 입자가 너무 굵을 때 그런 문제가 생긴다기에, 다음에는 좀더 굵게 원두를 갈아서 사용해 보려고 마음만 먹었다. 말인즉슨 아직까지 어디 돌아다니거나 할 일이 없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서 출장이 자유롭게 풀리게 되면, 아마도 프렌치 프레스와 이 녀석을 뻔질나게 들고 다니면서 열심히 커피를 내려먹게 되지 않을까.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은 요즈음 열심히 에스프레소 연습에 사용하고 있다. 앞에서 에스프레소에는 너무 변수가 다양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조금만 뭔가 잘못되어도 커피가 전혀 내려오지 않거나 물을 퉤퉤 뱉어내기 일쑤여서 갖은 고생을 하고 있다. 원두는 열심히 쓰는데 정작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가 안 나오다 보니, 집에 제법 많이 쟁여 놨다고 생각했던 원두가 미친 듯한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것은 덤이다. 지난번에 사온 엘카페 블렌드와 베라커피 에티오피아 아리차만이 남아 있는데, 얘네들은 아무래도 좀 아껴먹고 싶어서 일단은 연습은 잠시 보류해 둘까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못해도 바리스타 자격증 하나는 따 둘까 생각하고 있는데, 에스프레소가 너무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