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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홈카페

오븐 업그레이드하기: 브레빌 BOV820

by 집너구리 2021. 7. 19.

지난 일 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아내가 생일 선물로 받아 온 오븐 토스터기는 사실상 내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이걸로 정말 별별 것을 다 구웠다. 빵부터 시작해서 쿠키, 케이크, 피자, 마들렌, 휘낭시에, 심지어는 까눌레까지 잘도 구워댔다.

 

기념비적인 첫 시도에서 나온 멋진 빵들. 저렇게 작게 만들었는데 엄청나게 부풀어서 난리가 났었다.

 

지금도 기능에는 문제가 전혀 없지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크기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과자류를 구울 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잘 부푸는 케이크류나 빵류를 구울 때면 거의 백 퍼센트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부 열선에 들러붙어서 타들어가곤 했다. 물론 청소에도 제법 고생을 했고.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던 일들이지만 여러 번 반복되니 점차 짜증이 쌓이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더 이상 탄 빵을 먹기도 싫고,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집에 있을 거 로스트나 스튜 등 성능 좋은 오븐을 써야 하는 요리들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마침내 오븐을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모델은 호주의 주방가전 명가 브레빌(Breville)의 BOV820으로 정했다. 발매된 지는 제법 된 모델이지만, 지금까지 라인업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베이킹 카페 등을 뒤져 보니,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움색도 얼룩덜룩하지 않고 일정하게 나오고, 내구성이 좋아서 오래 쓸 수 있다는 추천글을 보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LG나 SK, 삼성 등 굴지의 한국 가전들도 물론 좋은 제품들이 많지만, 많은 녀석들이 전자렌지 기능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애용해 온 전자렌지가 있는데 굳이 전자렌지 기능이 붙은 걸 하나 더 산다고? 말도 안 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브레빌 특유의 무광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외부 디자인이 내 취향을 저격했다. 난 이런 투박하면서도 구석구석이 세련된 제품들을 보면 사족을 못 쓴다. 

 

브레빌코리아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했더니 정품 대나무 도마가 따라왔다. 도마로 써도 무방하지만, 오븐 위에 올려놓고 선반으로 써도 괜찮단다. 집이 좁아서 주방에 이것저것 둘 게 많은 사람 입장에서는 반가운 이야기이다. 

박스를 열면 이렇게 부스러기 받침대와 그릴 하나가 스티로폼에 꼭 끼어 있다.

스티로폼 포장을 꺼내 보면 내부용 부품들이 더 있다. 베이킹용 팬과 로스트용 소형 그릴, 그리고 큰 그릴이 하나 더 나오고 피자 팬까지 끼어 있다. 오븐을 활용해서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요리를 위한 구성요소는 다 준비된 셈이다. 

 

오븐을 제자리에 둔 뒤에는 설명서대로 첫 공회전을 했다. 오븐 구성품들을 깨끗하게 씻어 말리고, 오븐 내부도 깔끔하게 물로 닦아낸 뒤 실시한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의 공회전이 으레 그렇듯 정말 끔찍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반드시 환기를 철저히 하고 마스크를 낀 채로 공회전을 시키는 것이 좋다. 이렇게 했는데도 공회전 이후 공기청정기를 켰더니 미세먼지 지수가 마치 봄날이라도 된 양 치솟았다는 점도 참조하시길. 덧붙여, 같이 온 대나무 도마를 올려놓고 공회전을 하면서 도마 위가 얼마나 뜨거워지는지도 확인해 보았는데, 살짝 따끈해질 뿐 물건을 올려놓기에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덕분에 사 둔 오븐 선반은 환불하고 이 위에 갈 곳을 잃은 주방기구들을 올려놓고 쓰기로 했다.

 

실제로 이 오븐을 활용해서 만들어 본 첫 음식은 식빵이었다. 브리오슈 반죽을 하고 발효시킨 뒤 틀에 넣어 구웠다. 원래 쓰던 소형 오븐토스터는 수동으로 예열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 오븐은 '베이킹' 기능을 설정하면 기본적으로 예열을 해 준 뒤 예열이 마무리되는 순간부터 타이머가 돌아간다. 제대로 된 오븐을 처음 사용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기하기 그지없다.

 

 

다 구워진 빵을 꺼내 보았다. 매번 시꺼멓게 윗거죽이 탄 빵만 보다가 색깔이 제대로 난 빵을 보니 다소 어색했다. 옆으로 뉘어 보니 정말로 구움색이 아주 일정한 갈색으로 예쁘게 나 있었다. 첫 시도가 너무나도 성공적이어서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그야말로 '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달걀을 굽는 모습(좌), 초코칩 쿠키를 굽는 모습(중), 땅콩버터 쿠키를 굽는 모습(우).

오븐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도해 본 음식은 많지 않다. 쿠키 두 번을 구워 보고, 달걀을 구워 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예전에 쓰던 오븐 토스터에 비해 열이 강하고 일정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사용해 온 레시피 기준으로는 다소 과조리되는 느낌이었다. 초코칩 쿠키의 초코칩이 녹아서 절절 끓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지. 다만 달걀의 경우는 오히려 불이 강한 덕분에 같은 시간을 굽더라도 달걀의 수분이 더욱 효율적으로 빠져 탱글한 식감을 냈다. 쿠키를 구울 때는 굽는 시간을 약간 짧게 하고, 달걀을 구울 때에는 지금대로만 하면 될 듯 하다.

 

일단 일 주일 정도 사용해 본 경험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럽다. 이제 슬슬 고기 요리 등도 시도해 보면서 특기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업데이트해 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닭고기 통구이라든가. 국내 브랜드의 상품들과는 달리 발효 기능이 없기는 하지만, 따뜻한 곳이야 어디든 있으니 그다지 아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