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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은 거창하게/홈카페

[취미생활은 거창하게] 공짜로 얻은 Moica 콜드브루 메이커로 점적식 콜드브루를 내려보았다

by 집너구리 2021. 8. 8.

나름대로 홈카페를 꾸리고서 이것저것 해 봤다고 생각했지만, 콜드브루만큼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시도해 볼까 마음먹었을 때쯤 해서, 침출식 콜드브루를 만들고자 사 뒀던 딱 하나뿐인 유리제 프렌치 프레스를 깨먹었다. 그 이후로는 완전히 의욕을 잃은 채로, 거진 일 년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며칠 전,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콜드브루 메이커가 손에 들어왔다.

 

짜잔.

 

집 근처에 '알맹상점'이라는 가게가 있다.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가게인데, 이 가게의 입구에 들어서면 방문객들이 각자의 집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가져다 두는 공간이 있다. 누구나 여기에 자기가 쓰지 않는 물건을 갖다 놓고, 누구나 그 중 필요한 것이 있으면 자유로이 가져올 수 있다. 1-2주에 한 번씩은 이곳을 찾는데, 놀랍게도 여기에 아주 멀쩡하기 짝이 없는 콜드브루 메이커가 놓여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게 웬 횡재야? 싶어서 냉큼 가방에 넣어 집까지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콜드브루 커피를 만드는 방법으로는 물방울을 조금씩 떨어뜨려 추출하는 '점적식'과 아예 물에 푹 담가서 추출하는 '침출식'이 있는데, 이번에 가져온 콜드브루 메이커는 대만 기업인 'Moica'라는 곳에서 만든 점적식 콜드브루 메이커다. 오픈마켓 등에서 찾아보니 신품이 8만 원을 조금 넘는 모양인데, 신품에는 추출된 커피를 담는 피처가 딸려 있지만 내가 가져온 물건에는 피처가 딸려 있지 않았다. 아마 알맹상점 물품교환소에 이 녀석이 놓여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건 그렇고 '콜드블루 커피'라니. 푸른색 커피를 누가 마신다고 저렇게 써 놓은 건지 모르겠다.

 

자, 그럼 이제 콜드브루 커피를 만들어 보자.

이 레시피는 여기저기 유튜브와 블로그들을 다니면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므로,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1. 필터를 커피 컨테이너 안에 깔아 준다.

 

커피 컨테이너에 커피를 바로 담으면 밑 빠진 독처럼 줄줄 새어나올 것이 뻔하다. 필터는 구하기 쉬운 종이 필터 등을 원형으로 잘라서 사용하면 된다. 나는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대신 천 필터를 원형으로 잘라서 사용하기로 했다. 다 사용한 천 필터는 깨끗이 물로 헹군 뒤 맹물이 담긴 컵이나 병에 담아 보관하거나, 냉동시켜서 보관한다.

 

 

2. 커피 원두를 20g만큼 계량하여 분쇄한다.

 

커피 컨테이너 자체가 그렇게 큰 것이 아니므로, 20g 정도면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쇄도는 보통 핸드드립 분쇄도보다 다소 굵은 정도로 잡으면 된다. 물론 배전도나 개인 취향에 따라 분쇄도는 조절이 가능하다. 무슨 추출 형태든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굵기를 가늘게 할수록 원액이 점차 진해진다. 말인즉슨 더 써질 수도 있단 뜻이다.

 

3. 커피 원두를 탬핑해 가면서 조금씩 채운다.

 

물이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원두는 잘 다져 두는 게 좋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꾹꾹 누르다간 유리제 컨테이너가 깨질 수 있으니, 조금씩 채우고 골라서 꾹꾹 다지는 작업을 반복한다. 집에 있는 51mm 탬퍼로 탬핑하니 둘레가 아주 살짝 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채널링(물길이 한쪽으로만 생겨서 그 부분의 원두에서만 커피가 과다추출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가루의 수평을 최대한 맞춰 주도록 하자.

 

4. 찬물을 붓고 물 떨어짐 정도를 조정해 준다.

 

콜드 브루라는 것이 상대적 개념이라, 기본적으로 뜨거운 물로 내리는 것이 아니면 보통 콜드 브루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요새는 날씨가 제법 덥기 때문에, 얼음을 좀 넣어 주더라도 곧 녹으리라는 계산으로 물과 얼음을 같이 넣어 주기로 했다. 물의 양은 얼음 양을 감안해서 총 300ml 정도가 되도록 부어 줬다. 이때 점적부 꼭지가 열려 있으면 물이 줄줄 떨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물을 붓기 전에 반드시 꼭지가 잠겨 있는지를 확인하도록 하자. 또, 점적구에서 물이 떨어지면서 가루를 파헤칠 수 있기 때문에, 물을 떨구기 전에 커피가루 상부에 필터를 한 장 더 얹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어떻게 알았느냐면...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5. 커피를 내린 뒤, 원액을 원하는 대로 조제해서 마신다.

 

물이 떨어지는 속도가 늦어질수록 커피 원액이 진해진다. 위의 물이 전부 떨어질 때까지 커피를 내리는데, 이번에는 뭔가 조절을 이상하게 했는지는 몰라도 고작 4시간 만에 물이 다 내려왔다. 또, 원액을 담을 병이나 피처가 깊어야 중간에 추출이 멈추면서 커피 컨테이너가 넘치는 일이 없을 듯하다. 다 내린 원액은 물을 부어 아메리카노 비슷하게 먹거나, 우유를 부어 라떼로 마실 수 있다.

 

여름이 슬슬 막바지에 접어들려 하고는 있지만 아직 더위는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만큼, 시원하게 내려 먹고 냉장고에 보관까지 할 수 있는 콜드 브루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즐거운 일이다. 이제 이 녀석을 부엌 어디에 두어야 할지를 한 번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