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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1005 Taiwan

대만유람기 2019 (15) : [6일차] 타이중 호텔을 떠나 만난 역사와 전통의 도시 타이난

by 집너구리 2021. 5. 29.

타이중에서의 아침, 버틀러 호텔 조식뷔페

 

타이중에서의 짧은 체류를 마무리한 것은 우리가 묵은 버틀러 호텔에서의 조식뷔페였다. 영 수상쩍게 생긴 외관을 자랑하지만 시설은 제법 나쁘지 않았던 호텔이었는데, 식사 또한 제법 갖출 것은 잘 갖춰진 뷔페 형식이었다. 호텔에 묵게 되면 늘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곳이 바로 조식뷔페다. 기본적인 메뉴야 세계 어딜 가든 비슷하지만, 특별히 그 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 그것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를테면 홋카이도의 호텔에는 항상 고품질의 유제품이 준비되어 있다든가, 이슬람 교도가 많은 인도네시아에는 돼지 베이컨 대신 쇠고기 베이컨이 준비되어 있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곳 버틀러 호텔의 조식 또한 여느 조식뷔페와 거의 비슷한 형식이었지만, 대만 사람들이 식사용으로 즐겨 먹는 꽃빵(饅頭, 만터우)이라든가, 이것저것 토핑을 넣어 먹을 수 있는 흰쌀죽(清粥, 칭저우) 같은 것이 이채로웠다. 점심을 언제쯤 먹게 될지 확실하지 않아, 나름대로 착실하게 뷔페음식을 담아다가 먹었다. 재료들이 신선한 듯, 음식들은 모두 제법 맛있었다.

타이중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침밥. 

 

타이중을 떠나 타이난으로

 

이쯤 되면 눈치챈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만에는 섬의 중심을 기준으로 하여 위치별로 붙어 있는 지명들이 제법 있다. 워낙 인구가 서단에 대거 모여 살고 있는 탓에 이 도시들은 대부분 대만섬 서단에 위치해 있다. 북쪽에 치우친 수도 타이베이(台北), 섬의 중간쯤에 있는 타이중(台中), 섬의 남부에 위치한 타이난(台南)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모조리 섬 서안에 몰려 있다 보니 타이시(台西) 같은 지명은 없지만, 인구밀도가 영 희박한 동쪽에는 시도 아니고 현인 타이둥(台東)이라는 곳도 있기는 하다. 덕분일지 몰라도 대만 학생들은 지리 시간에 각 대도시들의 위치를 틀릴 일은 비교적 적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 대만의 양대 대도시를 꼽아 보라면 모두들 수도 타이베이와 항구도시 가오슝을 들겠지만, 사실 타이난이야말로 가장 처음 도시화된 곳이자 대만의 수도로서 오랫동안 기능한 곳이다. 말하자면 일본의 교토나 한국의 개성 내지는 경주 같은 곳이다. 대만에 처음 한족의 나라를 세운 정성공이 이곳을 수도로 정씨 왕국을 경영하였으며, 청나라 통치 시기에도 대만의 중심은 이곳 타이난이었다. 그래서인지 근대 이전의 역사적 유적들은 대부분 타이난 부근에 몰려 있으며, 타이난 주민들은 타이난과 대만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다고 한다. 

 

오늘은 타이중을 떠나 타이난으로 이동하는 날. 타이중에 들어왔던 날과는 반대로, TRA 타이중 역에서 구간차를 타고 고속철도 타이중 역으로 이동해 이 곳에서 고속철도를 탄다. 고속철도는 자주 오가지만 구간차는 배차간격이 제법 기므로 전날이나 출발하기 전에 미리 계획을 어느 정도 잡아 두고 가는 것이 좋다. 고속철도를 타고도 타이중에서 타이난까지는 44분 가량의 시간이 걸리는데, 타이베이에서 타이중까지 이동하는 시간과 맞먹는다. 여기에 아니나다를까 고속철도 타이난 역과 TRA 타이난 역은 별개의 역이므로 구간차를 타고 타이난 중심가까지 이동해야 한다. 고속철도 타이난 역에 접속해 있는 TRA 소속 역의 이름은 '샤룬(沙崙)역'인데, 이 역은 두단식 시종착역이어서 헷갈릴 것 없이 그냥 승강장에 가서 서 있는 열차에 타면 타이난 역까지 바로 꽂아 준다. 다만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도 구간차가 대략 30분에 한 번이라는 극악한 배차간격을 자랑하기 때문에 이동계획을 잡을 때 주의하는 것이 좋다.

 

도대체 왜 셔틀노선 선형을 이렇게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늘 느끼지만 고속철도 역들은 항상 한껏 현대적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사실상 고속철도에서 내린 거의 모든 승객이 저 4량짜리 꼬마 구간차에 타야 한다. 당연히 빨리 갈수록 좋다.
승강장은 장화역의 그것과 똑 닮아 있지만 이곳은 타이난 역입니다.

타이난역에서 작은 문제거리가 하나 생겼다. 시내를 돌아다니려면 캐리어를 어딘가에 맡겨야 하는데,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오고가는 역의 규모에 비해 역사에 준비되어 있는 라커의 수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당연히 역 안에 있는 모든 라커는 완전히 꽉 차 버렸고, 작지도 않은 크기의 캐리어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 보니 어떻게든 라커는 찾아야겠고... 아내는 많이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전날부터 물집이 두어 개 잡혀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 아내를 역사에 앉혀 두고 나 혼자 이리저리 처음 온 타이난역 주변을 돌아다니며 라커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15-20분 정도 돌아다닌 끝에 역 뒤쪽 한구석에 라커 몇 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남은 건 다른 사람이 채 가기 전에 얼른 아내에게 돌아가 캐리어를 끌고 와서 빈 라커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우려하던 일은 없었고, 우리는 라커에 짐을 넣어 둔 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물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으니 버블티 한 잔은 해야지.

 

 

눈과 입만은 즐거웠던 소금박물관

 

타이난 역 앞에서 버스를 탄다. 대만은 구글지도로 길 찾기가 비교적 쉬운 나라라서, 목적지 이름만 중국어나 영어로 쓸 수 있다면 나머지는 구글이 알아서 찾아 준다. 버스를 탈 때도 번호가 틀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탈 수 있는 버스 번호를 알아보고 정류장에서 기다렸다가 타면 된다. 다만 소요시간은 상당히 다를 수 있는데, 이번에 우리가 찾아가기로 한 석유출장소 소금박물관은 타이난 역에서 버스를 타고 47분 가야 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30분 안팎의 시간을 버스로 간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유 출장소'라고 써 있긴 하지만 석유石油와는 상관이 없다. 한자로 풀면 석유夕遊, 그러니까 대강 '저녁 유람' 정도의 의미이다. 서쪽 바다 근방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보니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본래 이 석유출장소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염전 기숙사로 지어진 곳인데, 세월이 지나 소금과 관련된 각종 기념품을 파는 '박물관'의 이름을 건 '기념품 판매소' 비슷한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덕기양행/안핑수옥'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초소형 해수욕장 비슷하게 생긴 것이 눈에 들어오는데, 나름대로 '백사탄 공원'이라는 이름의 소규모 공원이고 실제로 바닷물이 들어온다고 한다. 여기서 한 번 더 꺾어서 들어가면 바로 석유출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위의 지도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겠지만, 타이난 북서부의 지형은 온통 네모진 저수지 비슷한 모양새가 가득 들어차 있는 독특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모두 옛날부터 이어져 온 염전의 흔적들이다. 지금도 타이난시 베이먼구 쪽으로 올라가면 타일을 깔아서 소금을 만드는 염전들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타이완 시가지에 가까운 안핑 부근의 옛 염전들은 지금은 대부분 생태보존을 위한 습지화가 진행되고 있다. 석유출장소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바로 널찍한 타이장 국가공원(국립공원)이 펼쳐지는데, 모두 갯벌을 간척해 만들었던 염전 지대에 다시 자유로이 바닷물을 드나들게 하면서 생태계 복구가 이루어진 곳들이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의 염전 사업은 상당히 번창했기에 석유출장소처럼 염전 노동자들을 위한 기숙사가 세워져 관리되는 등의 역사도 있었던 것이다.

 

석유출장소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
매일의 생일에 맞춰 다양한 색상의 소금을 전시해 두고 있다. 관련된 소금 상품이나, 소금을 활용해 만드는 도장도 팔고 있다.
전시장 구석에는 소금으로 만든 취옥백채 모형도 놓여 있다! 소금 아이스크림도 팔았는데, 퍽 맛있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곳은 소금 '박물관'이라는 이름만 걸려 있지, 사실상 소금 '기념품샵'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매일의 날짜에 해당하는 소금을 각각 전시해 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이 소금들을 기념품으로 팔거나, 심지어는 도장에 넣어 자신의 생일에 해당하는 소금도장을 만들 수 있다고도 선전하고 있었다. 도장을 거의 쓰지 않게 된 한국인들에게는 영 매력이 떨어지는 품목들이지만, 도장에 아직도 이상할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일본인들이라면 눈이 뒤집힐 법하다. 심지어는 일 년 열두 달의 이름조차 서양식으로 1월, 2월, 3월, 4월... 식으로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식으로 '무츠키(睦月, 1월)', '키사라기(如月, 2월)', '야요이(弥生, 3월)', '우즈키(卯月, 4월)' 하는 식으로 쓰여 있었다. 누가 봐도 일본인이나 일본을 좋아하는 대만 사람들을 노린 것이 뻔했다. 다만 소금 아이스크림은 생각보다 상당히 맛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우유 아이스크림인데, 여기에 소금을 살짝 뿌린 것이다. 우유에 간이 되면 조금 더 고소해진다고는 하지만, 아이스크림에 소금을 쳐서 먹으니 안 그래도 고소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이 훨씬 더 깊은 맛을 내는 것이 퍽 신기했다.

 

 

자연의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지는 안핑수옥

 

석유출장소(소금박물관)에서 나와서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 한 3분 정도 동쪽으로 걷다 보면 언젠가 단수이에서 보았던 샤오바이궁(소백궁)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두 번째 목적지인 덕기양행(徳記洋行) 건물이다. 1800년대 말엽에 청나라가 대만을 개항할 때 단수이와 더불어 이곳 타이난 안핑에 각각 세관을 설치하고 항구를 열었는데, 이 때 영국인 테이트가 이 곳에 자신의 회사 건물로서 세운 것이 바로 지금의 덕기양행 건물이다. '덕기'라는 한자 표기는 테이트의 이름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고, '양행'이라는 말은 서양과의 무역을 주로 하던 회사들의 이름에 주로 붙던 이름이다. 한국인이라면 지금도 존재하는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이라는 회사의 이름으로 아마 익숙하리라.

 

 

 

50위안을 내면 덕기양행과 부속건물(이었던 것)인 안핑수옥,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주지우잉 기념관'까지 총 세 곳을 관람할 수 있다. 타이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입장권을 살 때 보면 입장권이 퍽 수려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타이난이라는 도시의 브랜딩 디자인의 한 부분으로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한 것이 눈에 보였다. 

밖에서 본 덕기양행 건물의 전경. 여기서 성인 1인당 50위안(약 2-3000원)을 내고 들어간다.

가장 먼저 가볍게 둘러보기로 한 것은 서예가 주지우잉 선생 기념관이었다. 덕기양행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집 앞에 세워진 안내소에서 티켓을 사 들어가야 하고, 모든 건물들은 서로 담장에 난 문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 주지우잉 선생이 살던 옛집을 개조하여 기념관으로 만들었다는데, 1층의 전시관은 주로 체험공간 위주로 꾸며져 있었다. 특히 물에 붓을 적셔 돌에 글씨를 써 보게 하는 체험공간이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귀여워). 나도 간만에 붓을 잡고 몇 자 적어 보기는 했는데, 역시 펜글씨로는 한자가 잘 써지지만 붓글씨는 영 어렵다는 사실만 새삼스레 깨닫고 말았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주지우잉 선생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곳은 대강 이런 분이 살았구나 하는 감상만을 안고 넘어가게 되었다.

 

뜨거운 한낮에도 에어컨을 틀어 놓아 시원했던 주지우잉 기념관. 아이들이 붓을 들고 고사리손으로 글씨를 써 보고 있다.

주지우잉 선생 기념관 문을 나와 오른쪽으로 꺾으면(즉, 건물을 마주보고 왼쪽) 덕기양행 건물로 나가는 작은 문이 있다. 덕기양행 건물 자체는 전형적인 1800년대 개항장에서 볼 수 있었던 서양식 건물의 형태로 단수이에서 봤던 많은 건물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건물 안의 전시물들 또한 대만 개항의 역사를 다룬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많은 지점에서 단수이에서 얻었던 느낌과 지식의 리플레이와 같았다. 그러나 덕기양행 부지의 진가는 건물 뒤쪽으로 돌아갔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건물 앞에서 보았을 때에는 섣불리 짐작하기 어려웠던, 마치 별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은 괴상한 덩어리가 시선을 압도한다. 이것이 바로 '안핑수옥安平樹屋'이다.

 

덕기양행의 회랑과 정문 파사드는 옛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여기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안핑수옥의 입구이다.

 

'수옥'이라는 아기자기하기 짝이 없는 한자로는 이곳의 괴기스러움을 도저히 다 담을 수 없다. 벵갈보리수 나무가 창고 세 동을 완전히 집어삼켜 버린 이 폐허는, 인간의 건축물이 관리 없이 버려졌을 때 어떻게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지를 아주 직설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다. 고작 한 그루의 나무가 이 곳에서 자라나기 시작해 점차 새끼를 치면서 벽돌 건물을 짓누르고 부수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셈이다. 지금이야 관광자원으로 쓰이면서 어느 정도 내부 정비가 이루어진 상황이고, 이 공간을 활용하여 각종 전시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지만, 버려졌던 이 작은 정글에 사람들이 다시금 첫발을 내딛었을 때 느꼈을 어떠한 압도적인 감정은 지금까지도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 실제로 처음 이 곳에 들어갔을 때 나와 아내 또한 이 공간 자체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기도 했고.

그나마 탁 트인 공간 안에는 이렇게 화단 비슷한 것도 조성되어 있다. 이날은 대만 전국의 개구리들에 대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개굴개굴 소리가 온데 사방 천지에서 들린다.
나무가 기둥인지 기둥이 나무인지, 나무가 지붕인지 지붕이 나무인지 알 수 없다. 나무가 지붕을 짓눌러 이미 부서진 곳도 있다.
그나마 나무의 마수(?)가 덜 뻗친 공간과, 나무가 완전히 잠식해 버린 공간이 대조적이다.
어찌나 생명력이 강한지, 나무뿌리가 기둥을 휘감고 지나가거나 아예 문설주를 밀어제끼기도 한다.

안핑수옥을 완전히 뒤덮어 버린 이 벵골보리수나무라는 수종은 다른 말로 '반얀나무'라고도 한다. 고급호텔리조트 체인 이름인 '반얀트리 리조트'의 그 반얀나무이다. 가지와 줄기에서 수많은 헛뿌리가 내려와 땅으로 이어지는 형식으로 증식하기 때문에 한 그루의 나무라도 멀리서 보면 마치 숲처럼 보인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하늘로 수없이 뻗어 있는 가지들로부터도 여전히 헛뿌리들이 이어져 내려오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고, 더욱이 헛뿌리들이 이리저리 얼기설기 엮이어 건물의 약한 틈바구니로 파고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무라기보다는 차라리 수많은 거대한 잿빛 뱀들이 우글거리는 듯한 모습이다.

 

안핑수옥 건물 뒤쪽으로 나오면 길 건너편의 전망대로 이어지는 작은 잔도가 있다. 이곳으로 넘어가서 조망하는 안핑수옥의 모습 또한 상당한 볼거리이다. 안에 있을 때나, 덕기양행 건물 근처에서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르게, 멀리 떨어진 전망대에서 안핑수옥을 돌아보면 창고 건물의 잔해를 완전히 짓누르고 있는 나무의 거대한 형태가 훨씬 더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인간이 자연을 뭉개고 세운 건축물도 결국 인간이 없어진다면 이윽고 자연의 거대한 힘에 의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당연하지만 쉽사리 와 닿지는 않던 진리가 마치 머릿속에 직접 구멍을 파고 기어들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 인간은 자연의 거력을 이길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뒤를 돌아보면 타이쟝 국립공원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의 모습과 타이난 시가지의 모습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