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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1005 Taiwan

대만유람기 2019 (16) : [6일차] 대台/화華/양洋이 공존하는 타이난 시내 관광, 그리고 가오슝으로

by 집너구리 2021. 5. 30.

간단하지만 제법 괜찮았던 굴튀김 점심

 

안핑수옥을 나와 이번에는 안핑 옛거리 쪽으로 나선다. 낮의 길거리는 어떻게나 사람들이 많은지, 잠시만 정신을 놓고 있다간 사람들 사이로 휩쓸릴 것만 같았다. 각종 먹거리를 비롯하여 애들 장난감, 기념품, 어른들용 마사지 용구 등을 부려 놓고 시끌벅적하게 팔고 있는 노점들을 보면서 지나가고 있자니, 이런 오래 된 시장통은 동아시아 어딜 가든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에 뭔가 흥미로웠다. 

 

민족영웅 정성공의 동상은 정말 어딜 가든 있다.

낮 시간이 되었으니 슬슬 요기를 해야 한다. 아침을 배불리 먹었기도 하고 이런저런 요기도 했기 때문에 여기서의 식사는 유명한 굴튀김 집에서 간단히 때우기로 한다. '진가커쥔'이라는 가게인데, 마치 패스트푸드점인 양 엄청난 속도의 회전을 자랑한다. 가게 앞에서 줄을 잠시 서서 기다리면 이내 카운터 앞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는데, 여기에서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면 바로 갓 튀겨진 각종 튀김류를 받을 수 있다. 식사 공간은 2층에 널찍하게 마련되어 있어 여기 올라가서 자리를 잡아 먹으면 된다. 대만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음식점의 광경이다.

 

 

제법 큰 가게이고 회전도 빠른 편이다. 메뉴는 대강 이렇게 되어 있다. 영어로 주문해도 대강 알아듣는다.

우리 부부는 굴말이튀김(커쥔, 蚵捲) 2인분에 새우튀김(샤빠이, 蝦派) 2인분을 시켰다. 거의 주문과는 상관없이 인기 메뉴는 연거푸 튀겨지고 있는 듯, 주문하자마자 거의 바로 갓 튀겨진 뜨끈뜨끈한 튀김이 나왔다. 2층에 가서 자리를 잡고 먹는데, 자리를 청소하는 점원은 한 명밖에 되지 않은 탓에 식사공간이 다소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음식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얇고 파삭한 튀김옷 속에 적절하게 간이 된 굴과 새우가 촉촉하게 그 속살을 드러내는데, 전혀 비리지 않고 고소하니 맛있었다. 이것만 먹어도 어느 정도 요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가커쥔에서 먹은 굴튀김 4조각과 새우튀김 4조각. 바삭바삭하니 괜찮았다.

 

네덜란드인이 세우고 타이난의 상징이 된 안핑고보(질란디아 요새)

 

위장에 섭섭하지 않을 만큼 음식을 담아 준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중국어로는 '안핑고보安平古堡', 영어로는 '질란디아 포트Zealandia Fort'라는 곳이다. '보堡'라는 한자는 본래 흙과 돌을 가지고 쌓은 작은 성채를 뜻하는 말인데, 강화도에 남아 있는 요새인 '광성보'에도 쓰이는 한자이다. 그러니까 풀이하자면 '안핑에 위치한 오래 된 성채'라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17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이곳을 경영하기 위하여 세운 요새이니 오래 되기는 엄청나게 오래 된 성채이지만, 머지않아 정성공이 타이난을 공격해 네덜란드 세력을 쫓아내고 이곳을 명나라 부흥의 거점으로 삼게 되면서 네덜란드인들이 이 곳을 자기네 요새로 활용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았다.

 

 

역시나 예쁜 디자인의 입장권.
네덜란드 통치기의 질란디아 요새 전경. 전형적인 유럽식 다각형 성채의 모습이다. 일본 하코다테에도 비슷한 성터가 남아 있다.

덕기양행에서와 마찬가지로 50위안을 내고 입장권을 사서 들어갈 수 있다. 옛 네덜란드 사람들이 세웠던 성채는 지금은 몇 개의 건물들밖에 남지 않았고, 대부분은 전쟁 때 부서진 뒤 복구되지 않고 그대로 폐허처럼 남아 있다. 이 폐허들을 슬금슬금 뒤덮고 있는 벵골보리수나무 몇 그루도 눈에 띈다. 마치 단수이의 홍모성을 생각나게 하는 형태의 구조지만, 한때 대만의 중심지였던 곳에 세워진 성채인 만큼 홍모성보다는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다만 계단을 타고 꼭대기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은 영 좋지 않았다. 발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아내는 특히 올라가는 데 제법 고생을 했다.

빛바랜 적벽돌 기단 위로 푸르른 나무들이 다수 심겨져 멋들어진 풍경을 자랑한다.
과거와 현재.jpg

처음 '세계사 속의 주체로서의 대만'을 일으킨 정성공이 가장 먼저 발을 딛은 곳이 이곳 타이난인 만큼, 한때 네덜란드의 거점이었던 이 요새에는 오늘날 온통 정성공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옛 정씨 왕국의 군부로 기능했던 시절의 표지석들과 정성공의 동상이 이곳저곳에 서 있는데다가, 심지어 내부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무려 정성공이 모델인(?) 과자들마저 팔고 있었다. 힙한 손동작을 하고 있는 정성공 씨가 후손들에게 망고맛 감자칩을 먹어 보라고 권하는 과자봉지 디자인이 그야말로 이색적이기 짝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대만의 힙스터인가?

 

물론 전시관 내부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거래했던 다양한 품목들이나 이곳에서 지냈던 네덜란드인들의 유물도 전시되어 있었다. 총포를 비롯하여 각종 교역품, 기독교 유물 등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힙스터 정성공의 아성을 넘기는 힘들어 보였다.

 

높은 곳에 세워진 요새인 만큼 여기에서 내려다보는 동네 풍경 또한 쏠쏠하다.

 

담자면은 실패했지만 나름대로 즐거웠던 타이난 시내 관광, 그림간판과 동과차 한 잔에 적감루까지

 

안핑고보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중정로 쪽으로 나왔다. 이곳에 타이난의 명물인 담자면擔仔麵 전문점이 있다 하여 튀김만으로는 다소 부족했던 배를 채우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브레이크타임에 걸린 상태였다. 브레이크타임이 끝나기 전까지는 제법 시간이 남아서, 일단 여기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있는 적감루 쪽을 먼저 들렀다가 돌아와 보기로 했다.

 

걸어가는 길에 '전미희원全美戲院'이라는 건물이 있다. 노리고 지나가게 된 것은 아닌데, 너무나도 눈길을 확 잡아끄는 탓에 그만 이곳 앞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딱 보기에도 영화관 건물인데, 이미 한국에서는 대부분 사라진 손그림 포스터로 상영 중인 영화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옛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어린 시절 안산 중앙역 앞에 있던 지금은 사라진 영화관들에서도 이런 식으로 그림 포스터를 걸어 놓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관 맞은편에는 이 그림들을 작업하는 화가 분의 작업실이 있는 듯, 예전에 그렸던 그림들을 벽에 장식해서 여럿 걸어 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영화관이 그림 포스터를 사용하는 영화관으로서는 대만 전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란다. 우연이 겹쳐 운 좋게 이런 멋진 광경을 볼 수 있게 되다니.

당시 인기리에 상영 중이던 영화들의 포스터가 걸려 있다. <기생충>도 눈에 띈다. 강호 형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이야.
영화관 맞은편의 낡은 건물에는 이렇게 예전에 그려 놓았던 그림들을 전시해 두기도 했다.

전미희원을 지나 북쪽으로 더 걸어가다 보면 거대한 붉은색 흙담벼락이 눈에 들어온다. 도교의 신을 모신 대천후궁이다. 대천후궁 담벼락의 맞은편에 작은 테이크아웃식 찻집이 있다. 차양을 쳐 놓은 가게 앞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동과冬瓜'라는 야채가 있는데, 이것의 씨를 달여 차로 마시는 '동과차'를 파는 곳이다. 영 생소해 보이는 야채 이름이긴 한데, 이름의 한자를 풀어 보면 '겨울 박', 즉 '윈터 멜론winter melon'이다. 공차에서 파는 윈터멜론 밀크티가 바로 이 동과차를 밀크티 형태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 이 여행기를 적으면서 자료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더욱 충격적이게도, 한국에서도 예전에는 이 동과를 제법 많이 재배했다는 것이다. 한국말로는 동과를 '동아'라고 부르는데, 동화 <해님달님 이야기>에서 남매가 타고 하늘로 올라갔던 '동앗줄'이 바로 이 동아의 줄기를 꼬아서 만든 밧줄이라는 것이다! 다만 오늘날에는 수요가 영 떨어지는 데다가 보관성이 낮아서 국내에서는 잘 재배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대만에서는 여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동과씨로 차를 달여 차갑게 식혀 먹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동과차 가게가 성업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캔에 담긴 동과차를 편의점 등지에서 팔기도 한다. 배리에이션 또한 무척 다양하다. 우리는 평범한 동과차 한 잔을 마시려던 것이 실수로 레몬이 담긴 동과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고소한 바탕 맛 위에 레몬의 향이 상큼하게 올라와 어쩐지 언밸런스하면서도 흥미로운 맛이 났다. 마치 보리차와 레모네이드를 반반 정도씩 섞은 듯한 맛. 막상 진짜 동과차는 한국에 돌아와서 동네 중국 식자재 마트를 갔다가 캔 동과차를 사와서 처음 맛보게 되었다는 것이 유머 포인트다. 그래도 워낙 날씨가 더운 탓에, 청량하고 시원한 음료를 한 입씩 나눠 마시니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적감루 앞에 있는 '의풍아천동과차' 가게. 구수함과 상큼함이 반반씩 섞인 듯한 레몬동과차를 한 잔 나눠 마셨다.

동과차 한 잔을 마시고 나서 다시 기운을 내고 길거리에 나서면 바로 눈앞에 담벼락 안으로 우뚝 서 있는 적감루의 모습이 보인다. 높은 기단 위에 붉은 기와를 올린 중화풍의 누각이 앞뒤로 늘어서 있는데,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가면 이것이 이어져 있는 두 채의 2층 누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대로변에 면해 있는 남쪽 누각이 적감루赤崁樓,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북쪽 누각이 문창각文昌閣이다. 마당에 있는 중국식 정원 너머로 들어가면 청나라에서 문인 양성 목적으로 세운 '봉호서원鳳壺書院'이 있는데, 이쪽의 사진은 찍어 놓은 게 없어서 아쉽다.

 

 

역시 50위안을 내면 예쁜 티켓과 함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살 수 있다.
적감루와 문창각의 전경. 문창각 앞으로는 제법 화려하게 꾸며진 중국식 정원이 있다.

적감루 또한 원래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세운 요새에서 비롯되었다. 본래 이곳에 처음으로 요새가 세워졌을 때에는 단수이의 명소 이름처럼 '털이 붉은 놈들이 세운 성'이라 하여 '홍모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일대의 정치/경제적 중심지로 기능하였는데, 정성공의 대만 침공 이후로 네덜란드 사람이 쫓겨나면서 대만의 관청으로 쓰이게 되었다. 이어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타이난 대지진으로 인해 네덜란드인이 세운 옛 요새 건물은 무너졌고, 한동안 터로 방치되었다고 한다. 몇십 년 후에 이곳에 지현으로 부임한 관리 심수겸沈受謙이 오늘날의 것과 유사한 형태의 적감루와 문창각, 봉호서원 건물을 건립했으며, 이어 일본 통치시기로 접어들면서 적감루 건물은 통째로 육군병원으로 쓰였다가, 해방 이후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목재부를 철근콘크리트로 대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기단부 쪽이나 건물 뒤편에는 네덜란드 요새 시절의 흔적들이 여럿 남아 있다.

 

적감루와 문창각 모두 2층 누각으로 되어 있어 좁디좁은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으며, 1층은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적감루는 2층에 이 동네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른바 '국성야国姓爺' 정성공의 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공간이 원래 해신을 모시던 '해신묘'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대만 해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어떠한 권위를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다. 문창각은 이름대로 도교의 학문신 '문창공'을 모신 곳인데, 제법 무시무시하게 생겼지만 의외로 붓을 칼마냥 멋들어지게 들고 있는 목신상이 바로 이 문창공이라고 한다. 도교 신앙을 가진 타이난 사람 가운데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퍽 많단다. 재미있게도 적감루에서는 이제까지 대만을 돌아다니면서 거의 보지 못했던 일본인 노인 단체 관광객들을 몇 팀씩 볼 수 있었는데, 일제 시대에 자신들이 이 건물을 육군병원으로 썼다는 이야기를 퍽 자랑스럽게 떠드는 가이드와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노인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요즈음까지 이렇게 해외 여행을 다닐 정도로 정정한 노인들이라면 아마 전후 세대일 듯한데, 그들이 생각하는 일본의 대만 통치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했다. 아마도 한국인이나 대만인이 보기엔 영 유쾌하지만은 않은 모양새이리라.

 

도교의 학문의 신 문창공과 사실상 현존했던 해신 취급을 받는 인간 정성공의 대조가 두드러진다.

적감루 관람을 마치고 나와 다시 담자면 가게로 향했는데, 가게 문앞에 다가가서야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브레이크타임이고 뭐고, 이 가게 자체가 리뉴얼 때문에 문을 닫은 상태였던 것이다. 도대체 이제까지의 발품팔이는 무엇을 위한 것이였을까? 한동안 우리 부부는 가게 앞 벤치에 앉아서 황망함을 금하지 못했지만, 지금 결과론적으로 생각해 보면 동과차도 마셔 봤고, 대만 최후의 그림포스터 영화관도 봤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던 듯하다.

 

담자면 가게에서 조금 더 걸어나오니, 마치 다이쇼 시대 언저리를 다룬 일본 고전영화에서 튀어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고층 건물이 사거리 모퉁이에 서 있다. 백화점 건물인 모양인데, 흥미롭게도 '하야시 백화점'이란다. 누가 봐도 일본인이 지었을 법한 이름이다. 나중에 자료조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전히 다이쇼-쇼와 시절의 그 느낌을 살린 채로 영업 중인 고풍스러운 백화점이라는데, 시간이 애매해서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 부부는 하야시 백화점 앞에서 버스를 타고 타이난 역 앞 광장으로 다시 돌아간다.

 

도쿄 어딘가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한 하야시 백화점 건물. 하긴 도쿄에 이런 게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공습으로 다 조져졌으니까.

 

마지막 열차는 타이난을 떠나 가오슝으로 향합니다

 

타이난 중심가에서 가오슝 중심부로 철로를 이용해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가. TRA 타이난역에서 구간차를 타고 샤룬역 하차 -> 고속철도를 타고 쭤잉역(종착역) 하차 -> TRA 구간차 혹은 가오슝 첩운 홍선을 타고 가오슝역에서 하차 (환승 2회, 이동 시간 고려하여 최소 1시간 15분 소요)

나. TRA 타이난역에서 종관선 하행 방향으로 가는 아무 기차나 잡아타고 TRA 가오슝 역에서 하차 (환승 없음, 열차 등급에 따라 소요시간 상이하나 구간차 기준으로 57분 소요)

 

상황이 이러할진대 아무리 고속철도 패스를 가지고 있다 한들 굳이 타이난에서 가오슝으로 이동할 때 고속철도를 타야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패스는 TRA 노선과 고속철도 노선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공용패스였기 때문에, 우리는 망설임 없이 TRA 타이난역에서 가능한 최고 등급의 기차를 타고 가오슝 중심가로 향하기로 했다. 공용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의 기차는 우리의 무궁화호/누리로급에 해당하는 '쥐광하오'다. 타이난역에 도착했을 때는 다음 쥐광하오 열차가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약간 남아 있었기에, 가까이에 있는 패밀리마트 편의점에 들러서 요기거리를 사들고 열차에 오르기로 했다. 다양한 과일을 포장해 둔 과일도시락이 있어서, 한 팩을 샀다. 

 

교통패스를 이용하는 외국인이라면 늘 겪는 일이기는 하지만, 일정 등급 이상의 기차들은 패스 이용객이 자리에 앉아 가기에는 영 호락호락하지 않은 혼잡도를 자랑하게 마련이다. 우리도 타이난에서 가오슝으로 이동하는 기차 내내 통로에서 캐리어 위에 엉거주춤하게 걸터앉아 있었다. 더운 날씨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지쳐서 우리는 말수가 퍽 적어졌는데, 그래도 과일을 몇 점 주워먹으니 그나마 기분이 좀 나아졌다.

 

타이난역의 승강장은 마치 1990년대 말 안산 근방의 아무 역에나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과일 도시락은 맛있었다.

열차가 가오슝 역에 도착한 것은 이미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두컴컴해진 뒤의 일이었다. 가오슝 역의 첫인상은 마치 타이중역에 처음 내렸을 때의 인상과 비슷했다. 거대하고 깔끔하게 정비된 역사는 공항과도 같은 느낌을 풍겼는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역 광장으로 나와 남부로 나오니 예전에 사용했던 야트막한 구역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일제풍 적벽돌 건물로 멋들어지게 지어져 있던 타이중 역과는 달리 구 가오슝 역사는 평범한 시골역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여기서 캐리어를 끌고 한참을 털털거리며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날 우리가 묵을 숙소, 저스트슬립 가오슝 스테이션 호텔이 나타난다.

깔끔하고 널찍한 가오슝 신역사와 비교적 아담한 사이즈의 가오슝 구역사.

 

 

숙소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저스트슬립(JustSleep) 호텔 체인은 대만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비즈니스 호텔 체인이라, 일본이나 한국으로 치면 토요코인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방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건 토요코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의 훌륭한 방이었다. 제법 널찍한 공간에 깔끔한 구성품들, 널찍한 침대와 충분한 공간의 욕조, 샤워실과 분리되어 있는 화장실까지. 타이베이에서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고 타이중에서는 소규모 호텔에 묵었는데, 여행 막바지에 생각지도 못한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다니 너무나도 신이 났다. 아내는 내가 신나하는 사진을 찍으며 연신 즐거워했고. 나중에 호텔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는데, 제법 제대로 된 자체 체육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급이 높은 호텔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이런 시설이 비즈니스호텔 체인에 갖춰져 있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앞으로 대만에 올 때는 웬만하면 저스트슬립 호텔로 잡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게 된 우리 부부였다.

 

깔끔하고 널찍한, 시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방의 전경. 너무 신나서 이리저리 춤추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아내가 찍어 뒀다.

 

저녁의 작은 호사, 가오슝에서 먹은 첫 우육면과 입가심이라기엔 너무 고급진 호텔 카페의 타르트

 

짐을 부려 놓고 나니 그간 채 느끼지 못했던 배고픔이 일시에 몰려와,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여행을 계획할 적에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들 중에서 퍽 평점이 높아 예의주시하고 있던 우육면 가게, '원향우육라면'이었다. 그냥 길거리에 있는 평범해 보이는 우육면집인데, 구글 평점이 무려 4.1이니 가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갔을 때는 거의 마감 시간에 가까운 시간대였는데도 사람이 제법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들도 몇 명 눈에 띄었다. 김밥천국마냥 주문표에 먹고 싶은 음식을 표시해서 점원에게 전달해 주면 음식이 나오는 식인데, 나는 고수를 넣은 소힘줄 홍소우육면, 아내는 고수를 뺀 일반 홍소우육면을 시켰다. 힘줄을 얼마나 정성들여 푹 고았는지, 무척 질긴 부위임에도 불구하고 입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타이베이 융캉제에서 먹었던 우육면이 보다 표준화된 도시의 깔끔한 맛이라고 한다면, 가오슝에서 먹은 우육면의 첫인상은 보다 야성적이고 강렬한 맛에 가까웠다. 쇠고기의 육향과 향신료의 풍미가 입 안에 가득히 퍼지면서, 대강 뽑은 듯한 구불구불하고 쫄깃한 면과 어우러져 깊고 훌륭한 맛을 냈다. 말하자면 타이베이의 우육면과 가오슝의 우육면은 살짝 장르가 달라,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지만 둘 다 고유한 매력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또 한밤중에 쓰다 보니 배가 고파져 괴로워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

 

가오슝에서의 첫 식사를 아주 만족스럽게 마무리하고 호텔에 돌아오니, 아까 체크인을 위해 들어올 때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1층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Jessicafe' 라는 이름의 카페인데, 커피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구움과자 디저트류도 팔고 있었다. 강렬한 대만의 맛을 즐기고 왔으니 뭔가 상큼한 맛으로 입가심을 하고 싶어서 기웃거리던 참에, 구글 지도를 보니 놀랍게도 이 카페의 평점이 4.4점인 것이다! 그냥 호텔에 딸린 카페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평점이 높다는 건 뭐다? 뭔가 하나는 꼭 사먹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음료와 함께 라임 머랭 타르트 하나를 시켜 둘이 나눠 먹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척 훌륭한 수준의 타르트였다. 기분이 딱 좋게 달콤하면서도 파삭한 머랭에 라임 제스트와 라임 주스의 향이 어우러져 입가심하기에 딱 좋았다. 불현듯 단수이에서 먹었던 다소 실망스러운 호텔 케이크가 생각나 우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같은 호텔 카페인데 이렇게까지 수준이 다를 일인가. 

(좌) 원향우육라면 가게에서 먹은 야성적인 맛의 힘줄 홍소우육면, (우) 호텔 1층 제시카페에서 먹었던 라임머랭 타르트. 상큼하고 맛있었다.

 

이때 우리는 깨달아야 했다. 가오슝에서 우리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먹어 조지는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