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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1005 Taiwan

대만유람기 2019 (18) : [8일차] 가오슝의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옌청지구와 보얼 예술특구를 둘러보고 치진 섬으로

by 집너구리 2021. 6. 13.

가오슝의 오래된 미래, 옌청鹽埕의 보얼예술특구駁二藝術特區

 

전날처럼 두둑하게 식사를 한 뒤 오늘은 귤선을 타고 다소 멀리까지 나가 보기로 한다. 멀리까지라고 하더라도 서쪽으로 달랑 세 정거장 가서 옌청푸鹽埕埔 역에 내릴 뿐이다. 어제에 이어 날씨는 무척 좋다. 말인즉슨 덥다는 뜻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낮의 거리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는다. 지하철 출구에서 점차 서남쪽으로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건물들이 점차 낮아지고, 더 낡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이상한 것이 아니다. 옌청푸역 근방은 1989년의 대화재로 한번 다 타 버린 시가지를 재건한 것이지만, 본래 이곳은 약 300년 간 항구로 활용되며 가오슝의 중심가로 기능해 왔던 곳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후기에는 보통 옌청푸역에서 출발해서 이 지역 근방을 쭉 돌아보는 여행 코스를 '옌청푸 관광'이라고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이 '옌청푸'에 페리를 타고 가야 하는 '치진 섬'까지 포함되는 웃지 못할 일까지도 있다. 후쿠오카 여행 후기에 '후쿠오카에 있는 유후인' 운운하거나, 도쿄 여행 후기에 요코하마나 카마쿠라까지 '도쿄'라고 적어 두는 경우도 제법 보는 만큼, 이렇게 '자기가 처음 출발하는 곳을 중심으로 그 근방은 전부 출발지에 종속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현상'은 아예 이름이라도 붙여 주고 싶을 만큼 빈번하면서도 과히 유쾌하지만은 않은 일이라 하겠다. 입장을 바꿔서 서울에 거점을 두고 경기도를 여행하는 외국인이 '서울에 있는 수원이라는 도시 말인데...'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라고 기분이 좋겠는가.

 

1893(메이지 26)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가오슝 일대의 지도. 옛 이름인 '타카오'라는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 오늘날의 치진 섬, 북쪽 구산 해안변에 위치한 것이 '외국인 조계(Etablissement des Etrangers)'이다.

 

이곳 '옌청鹽埕'은 바로 서북쪽에 붙어 있는 '구산鼓山'과 바로 앞바다에 떠 있는 섬 '치진旗津'과 함께 가오슝 구시가지를 이룬다. 가오슝 앞바다를 마치 방파제처럼 감싸고 있는 치진 섬 북단에 처음으로 포구가 생기고, 바로 맞은편 육지인 구산에 영국 대사관 등의 외국 공관이, 머지않아 구산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옌청 지역의 염전이 매립되고 근대적 부두가 들어오면서 가오슝 항구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갖춰지게 되었다. 지역의 이름 '옌청'은 소금밭, 염전을 가리키는 민남어 방언 표기를 따온 것인데('청埕'이라는 한자 자체가 표준 글자가 아니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타이난 근방에 조성된 염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넓은 규모로 염전이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때 소금을 수확하던 지역이 대대적으로 간척되어 육지가 되고 부두의 배후도시로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대도시가 되었지만, 지금은 항구가 전부 외곽 지역과 치진 남부로 옮겨가면서 본격 가오슝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공동도시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렇게 활기를 잃어 가던 옌청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구 제2부두의 시설을 재활용해 예술지구로 개발한 것이 '보얼예술특구駁二藝術特區'이다. '보얼駁二'이란 게 동네 이름인 줄 알았더니 '2부두'라는 뜻이란다. 한국에서도 인천 구항의 옛 건물들을 활용하여 예술특구로 꾸민 경우가 있고, 일본 요코하마의 구부두 건물들을 재활용한 '아카렌가 기념관' 등이 잘 알려져 있는데, 보얼예술특구는 이러한 구항 재활용의 가오슝 버전인 셈이다. 언제 지어졌는지 짐작도 하기 함든 오래 된 건물들 사이사이로 알록달록한 벽화와 장식으로 꾸며진 덩치 큰 건물들이 끼어 있다. 뭐랄까, 어딜 가든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서 새로 꾸미도록 한 재생지구의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옌청푸역에 내리면 아니나다를까 예쁘장한 미소녀 캐릭터가 길안내를 해 준다. 역에서 부두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중심지격 건물인 '보얼공창기지'
옛 임항선 선로를 활용해 만든 노면전차인 첩운 순환선. 아무렇지도 않게 길에 돌아다니니 선로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뭔가 거대한 친구들도 서 있다. 건담 비스무리한 친구도 있고, '애愛'라는 글자를 파자해서 무늬로 새긴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도 있고.
재미있게도 미니 열차가 예술특구 내를 돌아다닌다. 쬐그만한 게 기관차와 객차뿐 아니라 돌을 깐 노반과 건널목까지 다 구비되어 있다!
허름해 보이는 옛날 건물들마다 그려진 벽화와 장식들이 생기를 준다. 물론 여기서도 도교 사원은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와 국부천대 초창기의 모습이 남아 있는 폐역부지, 하마싱 철도문화원구哈瑪星鐵道文化園區

 

보얼예술특구에서 큰길 하나를 건너 계속 들어가면 어느 순간 푸른 잔디가 펼쳐진 탁 트인 공원 하나가 나타난다. 수많은 철길들이 발밑의 풀 속에 뒤덮여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곳곳에 거대한 전시물들이 서 있는, 그야말로 그늘 하나 없는 땡볕뿐인 이곳이 바로 '하마싱 철도문화원구'다.

 

 

'하마싱'이라는 이름은 재미있게도 일본어에서 왔다. 하마싱 철도문화원구는 구 가오슝항高雄港 역의 부지를 활용하여 공원으로 꾸민 곳이다. 가오슝항 역의 역사도 제법 복잡한데,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대만을 식민지로 삼은 일본이 이미 부설되어 있던 대만종관선의 철로 시스템을 뜯어고치면서 이 곳에 처음으로 역을 세운 것이 1900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이곳이 종관선의 종점인 '타카오高雄' 역이었는데, 식민통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일제는 서해안의 종관선과 동해안의 이란선/북회선/타이둥선을 이어 대만 섬을 한 바퀴 빙글 도는 형태로 철도망을 재정비하고자 했다. 가오슝역이 지금의 위치로 이전한 것은 이 때인 1941년의 일로, 그 이후에도 이 '구 타카오역'은 '타카오항역'으로 이름을 바꾸어 여객영업과 철도영업을 하다가 국부천대 이후로 이름을 중국식인 '가오슝항역'으로 바꿨고, 최근에야 폐선하였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타카오항역까지 이어지는 구 종관선 철로를 '바닷가로 이어지는 철도선'이라 하여 '하마센浜線'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대만 사람들이 자기들 식으로 알아듣고 '하마싱哈瑪星'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껏 지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기실 '가오슝高雄'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그 유래가 배배 꼬인 셈이다. 이 지역에 살던 대만 원주민들이 부르던 동네 이름인 '따꺼우'를 한족들이 '따커우打狗'라고 음차해서 부르던 것을,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발음은 나쁘지 않은데 한자 뜻풀이가 '개狗 패기打'라서 영 듣기 거북하니까, 천황이 계신 교토의 명산 '타카오高雄'로 표기를 바꾸자"고 하여 새로 정한 한자 표기가 발음만 중국식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일본식으로 바뀌었던 지명을 대대로 뜯어고치고자 했던(그러나 퍽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던) 한국의 사례와는 상당히 다른 셈이다.

 

하마싱철도문화원구에는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보다시피 전시물의 크기가 사람보다 훨씬 크다!

시설물이 모두 철거된 자리에 거대한 공원이 들어서 있는 셈인데, 역목 하나 남아 있지 않아서 이곳에는 엄청난 기세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늘이라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딱 하나 주변에 서 있는 큰 나무 그늘 밑에는 사람들이 이미 옹기종기 모여서 볕을 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더운 날씨에 하마싱을 찾고자 한다면 선크림과 양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냥 신나는지, 너른 부지 안을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거나, 연을 날리며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더러 보였다. 이렇게 탁 트인 공원에서 즐겁게 노는 경험을 할 일이 별로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나름대로 인상적인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길에 걸려 넘어지지만 않으면 완벽하겠지.

 

새삼스레 철도부지가 얼마나 넓은지를 체감하면서 문화원구 터를 가로질러 맞은편으로 다가가면 구 가오슝항 역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만큼은 예전에 역이었던 곳인 만큼 승강장과 옛날식 차양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구 승강장 앞에는 옛 철도선을 재활용한 첩운 순환선이 여전히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순환선 열차를 위한 새 승강장도 세워져 있고 여기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손님들도 제법 보였다. 경기도 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입장에서, 예전에 안산선 승강장에서 전철을 탈 때마다 늘상 보였던 옛 수인선 승강장이 생각나기도 해서 어쩐지 알 수 없는 아련한 기분도 들었다. 오래 된 증기기관차와 객차가 동태보존되어 있는 철로와 여전히 기차가 오가는 순환선 철로 건널목을 지나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그러나 대만 시골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의) 구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지금은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들어가도 무방하다. 아니, 에어컨이 틀어져 있으므로 웬만하면 들어가도록 하자. 열사병으로 쓰러지고 싶지 않다면!

 

옛날의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옛 가오슝항(타카오항) 역사와 승강장. 예전에 운행하던 열차들도 동태보존되어 서 있다.
내부는 자료관으로 꾸며져 있다. 공공기관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고급지게 꾸미려 노력한 듯한 역장실.
역장실에는 실적이나 물류 흐름 등을 표시한 그래프가 걸려 있고, 이런저런 장식품도 걸려 있다. 구식 에어컨과 쑨원 초상이 이채롭다.
영업 당시에 작성되었을 수많은 일지들과 각종 도구들.
1936(쇼와 11)년의 타카오(가오슝) 항을 표시한 지도. 역 이름이 '타카오'로 되어 있는, 역명변경 이전의 지도이다. 일본식으로 표시된 지명들과 산에 표기된 신사 위치가 눈에 띈다. 당시의 타카오신사, 오늘날의 가오슝 충렬사 자리이다.
국부천대 이후에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오슝항 노선도와 화물운임표.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갈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 나라의 언어를 알면 보이는 것이 더욱 많을 듯하여 아쉬워지는 때가 많다. 번체자와 중국어의 어순을 대강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해석은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 주위의 안내원 등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어 퍽 안타까웠다. 이런 곳이야말로 아는 만큼 보일 수밖에 없는 곳인데다 철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도 이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자료조사를 통해 공부할 수밖에 없으니 현지에서의 감동을 충분히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못내 헛헛한 기분이었다.

 

구 가오슝항역을 나오려는데 출입구 옆에 방명록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잠깐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리저리 뒤적이는데 일본인이 쓰고 그린 듯한 그림 메시지가 있어서 눈여겨보게 되었다. 제법 정밀하게 묘사된 구역사의 모습과 함께 자캐로 추정되는 두 명의 여자아이를 그린 그림이었는데, 철도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겨나서 우리까지 기분이 들뜨는 듯했다. 나중에 트위터 계정을 찾아보니, 일본 각지의 철도역을 찾아다니면서 이렇게 그림 메시지를 그리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 유저인 모양이다. 코로나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기 쉽지 않은 세상이라 오죽 답답할까. 우리도 마침 비어 있는 페이지 밑에 괴상한 중국어이나마 몇 자 적어 보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대만과 한국의 우호를 기원합니다! 민국 108년 10월 12일."

 

제법 훌륭한 그림 실력의 소유자인 @f17_ekinote 님의 '역노트' 메시지. 실제 역사와 비교해도 제법 멋들어진 그림이다.

 

구산 옛 거리와 일본 통치기의 모습을 간직한 카페 '서점흘차일이삼정書店喫茶一二三亭'

 

오늘의 두 번째 목적지인 치진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구 타카오항역에서 서남쪽으로 꺾어 약 10분 정도를 걸어 내려가야 한다. 이때 지나가는 동네 이름이 '신빈新濱 옛 거리'이다. 치진 섬 북단에서 출발한 도시인 가오슝이 점차 본토까지 그 세력을 넓혀 가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본토 시가지인데, 위에 올려놓은 쇼와 시대의 지도에서 '신하마초新浜町'라고 적혀 있는 바로 그 곳이다. 지금은 비교적 새로 지어진 건물이 많은 옌청과는 달리, 신빈 옛 거리의 건물들은 말 그대로 '옛 거리'답게 족히 8-90년은 되어 보이는 듯한 녀석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이른바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고 불리는, 일본식 건물들이 특히 많았다.

신빈 옛 거리로 들어서자마자 이런 일본식 적산가옥들이 수두룩하게 나타난다.
인적이 없는 낡아빠진 골목길에도 사람 사는 흔적은 있다. 잘 가꿔진 화분을 보고 있자니 우리 동네가 생각났다.

날씨가 덥고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어딘가 들어가서 쉬면서 뭐라도 먹고 마시고 싶은 기분이 간절했다.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이 한 적산가옥 벽에 붙은 퍽 현대적인 간판이었다. '서점흘차 일이삼정'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는데, 어딘가 일본적인 느낌이 풍기는 이름이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구 앞에 노렌이 걸려 있고 가타카나 '히ㇶ', '후フ', '미ミ'를 형상화한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입구의 오른쪽 벽에는 일제 시대쯤에 찍힌 듯한 오래 된 사진(이상하게도 가운데 사람만 도려내어진)도 그려져 있었고. 흥미가 동해서 찾아보니 제법 평점이 높은 가게인데, 무려 버블밀크티 소스를 얹은 팬케익을 판다는 것이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안으로 들어가 한 번 시켜 먹어 보기로 했다.

 

옛 일본 요정料亭을 활용해 꾸며진 찻집이라고 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건물에 그렇지 않은 장식들과 화분들.
일제 강점기에 찍힌 듯한 사진들. 가운데에 찍힌 사람이 도려내진 이유는 모르겠다. 타카오 신사 앞에서 찍은 여학생들의 사진도 걸려 있다.

옛 일제강점기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분위기의, 퍽 정갈한 느낌의 카페였다. 예전에 일본식 요정料亭으로 쓰이던 건물을 1층은 창고로, 2층은 카페로 리모델링해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한 블럭만 나가면 사람들로 와글와글한 시내인데,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호젓한 느낌이 들었다. 손님도 간간이 앉아 있는 현지인들과 일본인 몇 정도밖에 없었다. 메뉴를 받으면 색연필로 먹고자 하는 메뉴 옆에 표시를 해서 돌려주는 시스템인데, 처음부터 궁금했던 버블밀크티 소스를 얹은 팬케이크와 함께 차가운 우롱차 한 잔을 시켰다. 팬케이크는 딱 상상 가능한 '단 것 위에 단 것을 얹은' 맛이었고, 우롱차는 차가우면서도 깊이 있는 맛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대만 카페 특색인지 모르겠는데, 항상 가벼운 식사류와 주류가 메뉴에 들어 있다. 우육면과 샌드위치가 눈에 띈다.
물은 셀프... 인데 물컵상자에 쓰인 글귀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기원 이천육백년'인데, 일본식으로 '황기 2600(서기 1940, 쇼와 14)년'을 가리킨다. 
단거 위에 또 단걸 얹은 버블밀크티 팬케이크와 차디찬 우롱차. 당을 충전하고 더위를 식히기엔 딱이었다. 소스의 맛 자체는 딱 상상 가능한 맛.
가게 내부는 깜박하고 못 찍었지만 실내와 발코니는 찍는 데 성공했다. 화분을 무척 느낌 있게 잘 가꿔 두었다. 딱 일본 느낌이 나는 실내도 볼만하다.

 

치진 섬으로의 길을 앞두고, 구산 페리 선착장과 구산 구 외국인 조계지 둘러보기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고 단 것을 먹어 기운이 난 우리는 다시금 가게를 나와 치진 섬으로 들어가는 길을 떠났다. 오래 된 건물들로 가득 찬, 마치 한국 여느 시골의 쇠락한 항구(그런데 중국어 간판을 곁들인) 도시를 걷는 기분으로 느긋이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구산 페리 선착장이 나타난다. 치진 섬을 오고가는 여객선을 타려면 이 곳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표를 사야 하는데, 벌써부터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잔도에 이미 사람들이 양산을 하나씩 펴들고 꽉 차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우리는 잠시 여기서 서서 기다릴까 하다가, 머리를 좀 굴려 보기로 했다. 배편은 약 10분에 한 번씩 있는데, 배의 규모와 사람이 늘어나는 속도를 보니 앞으로 배를 두 대는 더 보내야 무난하게 배를 탈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여기에서 서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배가 오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한 15-20분쯤 뒤에 다시 돌아와 줄을 서는 게 낫겠다 싶었다. 판단이 빠르면 행동도 빨라야 한다. 우리는 바로 줄을 이탈하여 잠시 근처에 있는 외국인 조계지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미친 듯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이십니까?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곳 구산 옛 조계지는 한때 가오슝 항구의 북쪽 입구를 차지하고 있던 곳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인 공관과 방어요새가 존재했던 곳이다. 항구 바깥쪽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관람할 수 있는 구 영국 영사관과 산상 관저가 나온다. 당시의 여느 서양식 관저와 다를 바 없는 양식으로 지어져 있는 건물로, 나름대로의 정취는 있지만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대강 내용 구성이 단수이나 타이난의 옛 서양식 건물들과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아 패스하기로 했다. 구산 옛 부둣가는 완전히 공원으로 탈바꿈했고, 근방에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도 많아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다만 바닷가에서 맞은편으로 바라보이는 가오슝 신시가지의 모습은 퍽 장관이었다.

구 영국 영사관과 멀리 보이는 산상 관저의 모습. 이 앞으로는 넓게 펼쳐진 부둣가 공원이 있다.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느껴 보자.
부둣가 공원에 서면 가오슝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오슝85대루를 비롯하여, 가오슝의 현대를 상징하는 건물들이 다수 보인다.
부둣가를 거닐다 보면 눈에 띄는, 재미있는 장식물들. 송신시설을 고양이가 장난치는 장롱으로 꾸며 놓거나, 모래로 꾸며진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게 장식 등이 무척 재치있게 느껴진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구산 구 조계지를 둘러보고 나서 다시 페리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아니나다를까 줄이 꽤나 빠져 있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배가 오면 들어가면서 표를 구매하는 시스템이다. 2021년 기준으로 성인 탑승권은 현금 30위안(1,200원)이고, 최대 배차간격(이 표현이 맞나?)은 약 15분 가량이다. 아래에 운영사에서 제공하는 시간표와 운임표를 첨부해 두니,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중국어 외에도 영어가 쓰여 있으니 참고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