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191005 Taiwan

대만유람기 2019 (20) : [9일차/최종화] 8박 9일 간의 대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by 집너구리 2021. 6. 20.

잘 된다 싶으면 꼭 마지막에 일이 틀어진다

 

청춘물 애니메이션을 보면 꼭 나오는 장면이 합숙 아니면 방학 여행이다. 신나게 놀거나 피땀눈물 흘려가며 연습한 뒤 마지막에 집에 돌아가는 장면에서 리더격의 인물이 빼놓지 않고 하는 대사. "집에 돌아갈 때까지가 여행/합숙이야!" 흘러가듯 지나가지만 빠지면 뭔가 섭한 이 대사를 정말로 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곱씹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전날 잔뜩 지친 몸에 맥주를 반 캔이나마 부어넣은 탓에 취기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 정말 죽은 양 잠을 자다가 아침 알람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듯 일어났다. 아침 여덟 시 기차를 타고 타오위안으로 올라갈 요량으로 맞춘 알람 시간이 새벽 여섯 시쯤, 맥을 못 추는 아내를 아슬아슬한 시간에 깨워서 식사를 하러 갔다. 타오위안에서 언제 식사를 하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 없더라도 나름대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는 쪽을 택했는데, 전날 저녁에 거하게 식사를 한 탓에 칼로리가 높은 음식엔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아 야채와 빵 위주로 먹기로 했다. 

마지막 날 가오슝 숙소에서의 일출. 든든한 듯 가볍게 아침을 먹음으로써 하루를 시작한다.

전날 짐을 미리 싼다고는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챙겨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주섬주섬 짐을 마저 챙겨 가방에 쑤셔넣은 뒤 나갈 준비를 마무리하는 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던 모양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 빠른 걸음으로 메이리다오 역으로 향했다. 첩운 홍선을 타고 북쪽으로 한참을 가면 고속철도 시종착역인 쭤잉역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둘 다 다리가 아픈 탓에 빨리 걷기가 어려운 상황인데다, 우리 숙소 앞의 지하철 출구가 하필이면 계단밖에 없는 탓에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낑낑매며 긴 계단을 걸어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지하철을 잡아타고 나서 구글 지도로 경로 계산을 해 보니, 지하철이 쭤잉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각이 7시 58분이었다. 과연 2분 만에 지하 승강장에서 지상 몇 층 위에 있는 고속철도 승강장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쭤잉역이 워낙에 큰 역이다 보니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아니나 다를까 쭤잉역 맞이방에 도착했을 때가 이미 아침 8시 2분을 넘긴 시점이었다. 우리가 타야 할 기차는 이미 떠난 상황. 다행히도 혹시 몰라서 타오위안 공항에 세 시간쯤 전에 도착하도록 스케줄을 짜 뒀기 때문에 그 뒤에 출발할 다른 고속철도편을 타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이미 놓친 기차 탓에 사야 할 새 기차표였다. 괜한 추가 지출을 하게 될 것이 아깝기도 하고 살짝 화도 난 채로 개찰구 직원에게 다가갔다. 짜증을 한껏 억누른 목소리로 "저희가 8시 기차를 놓쳐서 그러는데, 역시 새 표를 사야 할까요?" 라고 물었는데, 다행히도 직원이 "그러실 필요는 없고, 다음 차 타셔도 상관은 없는데 자유석으로 가셔야 합니다."라고 안내해 주었다. 추가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 끓어오르던 감정은 단순간에 사그라들었다. 직원은 친절하게 지정석이 몇 번 칸에 있고, 자유석이 몇 번 칸에 있으니 열차 칸수를 잘 확인하고 타라고 알려 주기까지 했고, 우리는 상당히 느긋해진 마음으로 잠시 맞이방에서 쉬다가 출발 10분 전쯤 해서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기왕 자유석에 앉을 테니까 미리미리 내려가서 좋은 자리라도 잡아 놓자는 심산이었다. 혹시 몰라 물과 간식도 좀 샀다.

(좌) 하마터면 예쁜 쓰레기가 될 뻔한 고속철도 티켓. (중/우) 출발하기 전에 미리 승강장으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언제 봐도 기차가 참 예쁘다.

 

고속철도 타오위안 역에서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출국수속하고 마지막 식사와 공항 돌아다니기

 

여기서부터 적을 내용은 그리 많지는 않다. 기차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정신없어서 차마 손대지 못했던 모바일 게임들을 좀 하다 보니 어느 새 타오위안에 도착해 있었다. 기껏해야 두 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타오위안부터 고속철도는 지하를 달려 타이베이까지 간다. 아침에 제 시간에 출발했다면 아슬아슬하게 타이베이까지 가서 뭔가를 가볍게 사 먹거나 기념품이라도 사서 돌아올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다소 애매하여 그런 위험부담은 지지 않고 얌전하게 공항철도를 타고 타오위안 공항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마치 지하철역 같은 고속철도 타오위안 역. 여기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타오위안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는 정자체 한자로 써 있는 공공기관 이름을 보는 것을 이상하게 좋아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타오위안 국제공항의 첫 인상은 퍽 훌륭했다. 공항 카운터에 내려가자마자 대문짝만하게 써 있는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臺灣桃園國際機場'이라는 글씨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동시에 '아, 이제 진짜로 대만을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세상에, 이제 여기에서 비행기를 타면 다시 현실이 기다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3>에서 김영하 선생이 "집에는 일상의 상처가 있어서, 일상의 상처가 없고 오로지 즐거움만 있는 호텔 같은 곳으로 바캉스를 떠나는 것이 아닐까" 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내 나라와 우리 집을 제법 좋아하는 나이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은 일임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타오위안에서 취항하는 비행기들의 목적지를 전광판으로 표시하고 있다. 인천공항 비슷한 느낌이 나게 크고 멋지게 지어진 타오위안 공항.

공항 카운터에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다녀 본 나라가 많지는 않지만 이제껏 자동 수하물 수속은 해 본 적이 없는데, 타오위안 공항의 에바항공 카운터에서는 순서에 따라 자동 수하물 수속을 할 수 있도록 기계장비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라는 대로 티켓과 여권을 스캔하고 절차에 따르면, 사람 하나 없는 카운터에서도 내 짐을 문제없이 보낼 수 있다. 새삼스레 기술의 발전이 놀라워지면서도 이렇게 인간이 일자리를 하나 뺏기는구나 싶어서 마냥 즐거워하기에는 다소 겸연쩍었다.

 

못내 아쉬운 마음은 결국 식사를 통해서 달래야 한다. 결국 여행에서 남는 기억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식食의 경험인 탓이다. 짐을 부치고 난 뒤 마지막으로 출국 수속을 밟기 전에, 터미널 2층에 있는 대만식 식당에서 여행의 마지막 우육면을 먹기로 했다. 카운터에 갔더니 우육면 말고도 타이난에서 먹지 못했던 바로 그 담자면이 있길래, 우육면 하나에 담자면 하나를 시켜서 나눠 먹기로 했다. 납작하고 짧다락한 면이 말아져 있는 우육면은 안정적인 바로 그 맛이었는데, 면이 예전에 먹었던 것들과 다소 달라 신기한 식감이었다. 담자면의 경우, 얄궂게도 모양새부터 맛까지 희한할 만큼 일본식 간장 라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결국 타이난식 담자면의 진짜 맛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게 됐지만, 어쨌든 담자면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개선될 만큼 맛이 훌륭하고 독특하느냐 하면 딱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달까. 물론 맛있기는 했지만.

 

(좌) 이렇게 생긴 카운터에서 짐을 수속한다. 어린아이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우) 괜찮긴 했지만 다소 아쉬웠던 담자면과 우육면.

출국 수속을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와서는 면세구역을 둘러보면서 뭔가 사갈 것이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펑리수를 좀 사다가 가족들에게 주면 좋아할 것 같아, 우리가 먹을 것까지 포함해서 펑리수 세트를 몇 개 샀다. 그러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흥미로운 곳을 한 곳 발견했다. 공항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 기도실 삼종 세트가 그것이다. 요새는 규모가 큰 국제공항이면 적어도 이슬람 교도를 위한 기도실(무숄라)은 마련되어 있고, 때로는 장기 출장을 가는 천주교도들을 위한 소규모 성당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실제로 인천공항에는 이 두 가지가 다 있다!), 이렇게 삼대 종교의 기도실을 한 군데에 쭈루룩 배치해 놓은 것도 퍽 진귀한 광경이라 하겠다. 이거 뭐 주교좌 성당과 동남아 최대의 모스크가 한데 모여 있는 자카르타도 아니고, 동아시아 한켠의 작은 나라의 수도국제공항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만 여행의 마지막 즐거움을 장식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겉에서 보면 복사해서 붙여넣은 것마냥 생겼다. 문 위에 있는 각 종교의 상징을 제외하면 심지어 현판까지 똑같은 내용이다.
(좌) 십자가와 이콘이 준비되어 있는 기독교 기도실 (중) 방석과 작은 불상이 준비되어 있는 불교 기도실 (우) 메카 방향을 향하여 카페트가 깔려 있는 이슬람 기도실(무숄라).

 

마침내 대만을 떠나 다시 한국 땅을 밟다

 

드디어 비행기를 탈 시간이 되었다. 거의 열흘 만에 타는 비행기다. 새삼스레 한국인이 대만에 이렇게 많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아쉬운 마음에 게이트 바로 앞에 승객용으로 비치되어 있는 신문들 가운데 대강 대만 신문 하나를 집어들고 돌아온다. 기념품 격인 셈이다. 

 

비행기가 대만 상공을 떠나갈 때는 아직 환한 낮 시간이었는데, 하지가 지난지도 벌써 서너 달 남짓인데다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해가 빨리 지는 특성상 한국 상공에 접어들어 육지가 슬슬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서쪽 하늘이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피처럼 시뻘겋게 물든 하늘이 점차 그 색을 짙게 해 갈 무렵, 마침내 우리는 한국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그저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눕고 싶은 마음에 급급하여,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짐을 찾고 입국수속을 한 뒤 버스를 타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까지 휴가를 잡아 놨기에 망정이지, 바로 출근이라도 해야 했다가는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아 한바탕 고생할 뻔했지 뭐야.

에바항공은 서비스는 좋은 편인데... 기내식은 살짝 애매한 편이다. 솔직히.
하늘에서 본 신베이 해변이 바로 방금 같은데, 어느 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송도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한오환 크흡

 

결산

 

이렇게 해서 8박 9일에 걸친 대만 서부 일주 여행이 끝났다. 이와 함께 20회에 걸쳐 두드려 왔던 <대만유람기>도 끝이다.

 

처음에는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떠난 장기 여행에서 본 것들, 먹은 것들, 느낀 것들을 빠짐없이 작성해 두고 싶은 마음에 여행이 끝나고 거의 바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른바 현생이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회사에서 사내 캠페인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한 달 동안 하기' 프로젝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거다 싶어 참여하게 되면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걸 어떻게 다 적나, 이미 2년은 지난 기억을 어떻게 다시 떠올리나 싶은 마음에 막막한 기분이 들던 것도 잠시, 잔뜩 찍어 둔 사진과 영상들을 보다 보니 그 때의 기억이 마치 어제 겪었던 것처럼 솔솔 되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도 신기한 탓에, 글을 적다 말고 아내와 함께 사진을 한참 동안 뒤적거리며 이 때 여기도 갔었지, 이런 것도 먹었지 하고 이야기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 이야기는 사랑하는 아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함께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여행을 계획하고, 실제로 여행을 떠나 많은 경험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여행기를 정리하는 과정에도 항상 첫 번째 독자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글에서 빠진 부분이 있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고 그것을 아내가 기억하고 있는 경우 다행히도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을 할 수 있었다. 바라건대는 앞으로도 아내와 더 자주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빌어먹을 역병이 창궐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야 별 뾰족한 수가 서지는 않는 상태다. 언젠가는 다시 하늘길이 풀려, 아내와 함께 대만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무엇보다도, 익숙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대만이라는 나라를 마음 속 깊이 좋아하게 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국제사회에서 갖은 설움을 당하면서도(그리고 송구스럽게도 한국이 그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서도) 꿋꿋이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 따뜻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흥미로운 역사로 가득 차 있는 나라 대만의 모습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나에게 상당히 소중한 그 무엇이다. 타이베이의 거위요리 식당에서 만난 아저씨가 그토록 추천했던 동부의 화롄과 더불어, 대만 동부 일주를 해 볼 날도 언젠가는 오겠지. 언제고 다시 찾아가 취두부 냄새가 풀풀 풍기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깔깔대고 웃고, 다양한 역사가 한데 얽혀 있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념에 잠기는 경험을 또 할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 끝나면 또 봅시다'는 말이 희망과 공허함을 동시에 담은 새로운 인사말로 기능하게 된 요즈음이지만, 시쳇말로서가 아닌 진심을 담아서 이 말을 건네고 싶다. "코로나 끝나면 또 갑시다, 대만으로."

 

 

<대만유람기 2019>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