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발단
언젠가는 잔여백신 등록을 해서 맞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어제인 7월 30일, 회사의 업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사실상 오전 지나고 조금만 더 일하면 퇴근인 상황. 혹여라도 이날 잔여백신 낚아채기에 성공한다면, 어차피 시간도 넉넉하게 남은 상황이고 하니 백신 맞고 다른 걱정 없이 느긋하게 오후와 주말을 보내면 된다는 완벽한 계획이 이미 머릿속에 들어차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심결에 카카오톡 앱을 켰더니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날아오는 잔여백신 알림! 득달같이 낚아챈 덕에 잔여백신 예약에 성공했다. 와, 이게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네.
예약되어 있는 시간이 카카오톡과 질병관리청 간에 각각 다르게 잡혀 있어서, 정확히 언제쯤까지 가면 될지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전화를 할 필요가 있다. 전화를 했더니, '폐기 시간이 임박해 있으므로 적어도 3시까지는 와 주세요'라는 안내를 받았다. 운영 종료 시간이 적혀 있더라도, 막상 가면 사람이 많이 몰려 있거나 하는 이유로 좀 기다려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먼저 이렇게 전화를 한 뒤 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편이 좋다.
나. 전개
회사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회사에 코로나 백신 접종 보고를 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접종 보고를 내면 접종일 당일은 출퇴근 기록 없이 8시간 근무가 기본적으로 인정되고, 추가로 접종휴가 이틀이 나온다. 이 휴가는 꼭 접종 후에 붙여 쓸 필요는 없기 때문에 주말에 맞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자잘하지만 해야 할 집안일을 마저 해 뒀다. 접종 후의 컨디션이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설거지나 청소 같은 것들은 다 해 놓고 가야 다음 날의 뒤탈을 최소화할 수 있을 듯했다. 집안일을 끝내고 나서는 잠시 앉아서 쉬다가, 드디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샤워를 하루 못 할 게 뻔했기 때문에 굳이 걸어서 가느라 땀범벅이 되기보다는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이럴 때만큼 따릉이가 고마운 적이 없다.
병원에 가니 접종을 위해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 이미 대기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개중에는 접종을 기다리는 사람도, 이미 접종을 마무리하고 쇼크가 오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도 있는 듯했다. 접수대에 가서 잔여백신을 맞으러 왔다고 하니, 이름과 접종예약 내역을 확인한 뒤 체온 측정을 한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나이가 지긋하신 데다가, 이번이 처음으로 올리는 잔여백신 안내였던 모양인지 생각지도 못했던 따뜻한 축하(?)를 한몸에 받으며 문진표를 작성했다. 문진표는 일반적인 독감 예방주사 문진표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코로나19에 예전에 걸린 적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는 것이 다소 달랐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이름이 불린다. 주사 놓기에 이골이 난 듯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마치 접종 라인에 서 있기라도 한 듯이 앉자마자 곧바로 팔을 걷고 접종 부위 소독을 하기 시작한다. "화이자입니다." "조금 따가워요." "오늘 하루는 샤워하지 마세요." 의 세 마디를 마치 녹음테이프를 틀어 놓은 듯이 무기질하게 내뱉는 의사 선생님에게 주사를 한 대 맞는다. "뭔가 조심할 것이 있나요?" 라는 질문에는 "오늘은 푹 쉬시고, 샤워하지 마시고, 술 드시지 마세요." 라는 대답을 받았다. 다른 예방접종과 크게 다를 것은 없는 모양이다. 아, 마지막에 "열이 좀 날 수도 있는데, 미리 해열제 드셔도 되고 열 날 때 드셔도 무방합니다."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혹시나 해서 집 서랍에서 타이레놀을 한 곽 꺼내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종을 한 뒤에는 10분 동안 자리에 앉아 대기하면서 문제가 생기는지 확인한다. 그 동안에는 질병관리본부의 COOV 앱을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에서 찾아서 깔아 두면 편하다. 개인정보 인증을 한 뒤 백신 접종 인증서를 불러오면 아래와 같이 디자인에 퍽 신경을 쓴 것이 느껴지는 접종 인증서가 화면에 나타난다.
질병관리청 COOV(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증명서) on the App Store (apple.com)
질병관리청 COOV(코로나19 전자예방접종증명서) - Google Play 앱
접종이 끝나고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장이라도 좀 봐 갈까 싶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그만 단념하기로 했다. 땀이 너무 많이 나면 가뜩이나 샤워도 못 하는 판에 찝찝하기가 그지없을 것이기 때문에.
3. 절정
백신을 맞고 돌아와서 한 1-2시간 정도는 평소와 큰 차이가 없었다. 주사를 맞은 팔뚝이 살짝 얼얼한 정도 말고는. 그러다가 접종 후 2시간 남짓이 지나자 슬슬 몸이 나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졸음이 미친 듯이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다.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다가 핸드폰을 보다 하고 있는데, 중간중간 기억이 끊기는 것이 느껴졌다. 안 되겠다 싶어 침대로 가서 한 3-40분 남짓을 누워 있었다. 나는 낮잠을 좀처럼 자지 않는 편인데도, 마치 뭐에라도 얻어맞고 기절하기라도 한 듯이 무척 밀도 있게 잠을 잔 듯했다. 그래도 잠을 좀 자니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식사를 차려 먹을 기운은 나지 않아 저녁은 치킨 배달을 시켜 먹었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나니 컨디션은 생각보다 많이 좋아졌다. 평소 같으면 저녁을 먹고 산책을 다녀오거나 링피트로 운동을 하곤 하는데, 무리하면 안 된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오늘은 느긋하게 컴퓨터로 뉴스나 보고 SNS나 하는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안산 선수가 신궁으로 거듭나는 장면을 보면서 즐거워하다가, 오타쿠 친구들과의 디스코드에서 열심히 떠들다가 하면서 평소와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저녁을 보내고 있자하니 슬슬 몸이 다시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에어컨을 틀어 놓았는데도 몸이 이상하게 뜨끈뜨끈한 것 같아, 체온을 재 보기로 했다.
슬슬 열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은 사실이었다. 평소보다 체온이 높아졌던 것이다. 뒤에 몇 번 더 재 보니, 최고 37.1도까지 올라갔다. 열심히 항체가 만들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열이 나는 것치고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서, 그 뒤로도 두어 시간을 더 앉아서 놀다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열이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타이레놀도 일단은 먹지 않아 보기로 했다.
4. 결말
그래도 몸이 제법 피곤했던 모양인지, 무려 평소보다 세 시간은 더 자고 일어났다. 제일 먼저 득달같이 체온을 재 봤더니, 다행히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체온으로 돌아와 있었다. 몸도 어제보다는 제법 가벼워져, 거의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온 듯했다. 다만 주사를 맞은 팔만큼은 어제보다 확실히 심한 근육통을 호소했다. 팔을 높이 들기가 아직은 많이 어려운 상황이다. 먼저 백신 접종을 끝낸 부모님께 들은 말로는, 근육통은 앞으로도 사나흘 정도 더 갈 거란다.
아무튼 무사히 잔여백신을 따내고 1차 접종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제 8월에 2차 접종까지 받으면 몇몇 나라에서 자가격리도 면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완전히 얻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를 마음껏 드나들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아직은 무서워서 다닐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조금씩 정상적인 나날로 돌아갈 수 있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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