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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90526 Fiji | Sydney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2. 피지 본섬에서 배를 타고 로마니 리조트로

by 집너구리 2021. 9. 23.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앞 에피소드는 여기)

 

[이것저것 다 하는 신혼여행] 1. 결혼식이 끝나고, 다음 날 밤 비행기로 피지 난디 공항까지

* 이 여행기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 있었던 일을 다룹니다. 출발 전, 짧은 휴식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토요일 오전에 있었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니 우리는 완전

sankanisuiso.tistory.com

 

우리 이러다가 어디 이상한 데로 가는 거 아냐?

 

앞 에피소드의 말미에서 '비행기가 다소 지연된 탓에 유심을 사지 못하고 그대로 항구까지 가는 배를 타러 가야 했지만' 이라고 가볍게 적어 두긴 했지만, 사실 그다지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당연하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통신 안 되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녀?

 

...이것도 사실은 가볍게 적은 거다. 한국에서야 핸드폰이 안 터지면 자연스럽게 공중전화를 찾아가거나, 가게 같은 데에 들어가서 전화를 빌려 쓰거나 하면 된다. 내국인이니까 그다지 의심받을 일도 없고, 말이 통하지 않을 일도 거의 없다. 그러나 외국에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긴급통화 기능이 붙어 있는 휴대폰이라 할지라도 내가 있는 나라의 경찰이나 소방에 연결될 거라는 보장이 100퍼센트 있는 것도 아니고,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손 쳐도 말이 안 통해 양껏 내 속내를 전달하기 어렵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에 갈 일이 있으면 항상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이 통신용 보조기기나 유심 카드를 구매하는 방법인데, 난디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한국인 가이드에게 붙들려 배를 타러 떠나야 하는 통에 유심 가게는 앞만 슬쩍 지나쳤을 뿐 들여다보지도 못하다시피 했다. 큰일이다.

 

우리를 포함하여 두 팀의 신혼부부를 태운 도요타 승합차는 빠른 속도로 공항을 빠져나와, 이윽고 한적한 지방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한국 여행사에서 잡아 준 가이드이긴 하지만, 현지 한국인의 인도를 따른다는 것은 생판 처음 겪는 일이라 우리는 사실 적잖이 불안했다. 이러다가 어디 이상한 데로 가는 거 아냐? 배 타러 간다는데, 그 배가 이상한 배는 아니겠지? 눈빛을 열심히 교환했지만, 어쨌든 차에 타고 있는 상태인 건 변함이 없으니 일단은 얌전히 실려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댄 가이드 아저씨가 모두들 내려서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정신없이 짐을 내리고 보니, '웰컴 투 데나라우(Welcome to Denarau)'라고 쓰여 있는 큰 터미널 건물 앞이었다. 여기에서 리조트로 가는 배를 탄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우리더러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건물 안으로 쓱 사라졌다가, 다시 쏙 나타나서 표를 한 장씩 우리에게 쥐어 주었다. 배를 탈 때 내고 타야 하니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곧 아저씨는 우리를 선착장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에서 배를 타면 된단다. 어버버하며 배에 올라타려는데, 선착장 입구에 대문짝만하게 쓰인 '출발 시간표'를 보니 왜 아저씨가 그렇게 서둘렀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탈 배는 현지시각으로 10시 30분에 출발하는 배였는데, 선착장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10분경이었던 것이다. 다음 배를 타려면 3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할 테니 서두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처음 오는 나라에 긴장한 나머지 그만 실례를 범했습니다.

 

말롤로레일라이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 '말롤로 캣'을 타기 위해서는 선착장을 잘 찾아가야 한다.

 

우리가 묵을 리조트가 있는 말롤로레일라이 섬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난디 공항에서 소형 비행기를 타고 말롤로레일라이 비행장까지 20분 남짓의 짧은 비행으로 들어가는 방법, 그리고 데나라우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50분 정도 들어가는 방법. 처음 피지 리조트를 예약할 때 이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지만, 비행기삯이 퍽 비싼 탓에 배편을 골랐다. 마치 몇 달 전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탔던 홍도 들어가는 배를 연상시키는 작은 페리를 타고 4-50분 동안을 항해하면 어느 새 내릴 곳에 다다라 있다. 쾌속선이긴 한 듯 한데, 따끈따끈한 날씨에 현지인들 마음도 느긋한 모양인지 배는 마실이라도 나온 듯 느그적느그적 물살을 갈랐다. 속이 터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좀 빨리 가면 어떻고 늦게 가면 또 어떠랴. 선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더라도 그저 좋았다.

 

 

(좌) 이렇게 생긴 배 내부에서 (우) 이렇게 멋진 파란 하늘을 내다보며 멍하니 있으면 된다.
(좌) 이제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저 멀리 보이는 섬이 우리의 목적지다. 하늘에 떠가는 작은 비행기도 보인다. (우) 선착장에 점점 다가간다.

 

어디서부터 하늘이고 어디서부터가 바다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피지의 바다는 끝모를 듯 푸르렀다. 바닥이 조금만 더 가깝다면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것만 같았다. 화산섬 치고는 굴곡 없이 평탄하게 펼쳐진 육지 위에만 '이 밑이 육지입니다'라고 말하듯이 구름이 몽글몽글 떠 있는 것이 귀엽게 느껴졌다.

온통 '나는 휴양지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광경이다. 이렇게 바닷물이 맑을 수가 있나?

선착장에 도착하자,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선내에 있던 사람의 대부분이 우르르 내렸다. 말롤로레일라이 섬에는 선착장이 두 군데 있는데, 먼저 가장 큰 플랜테이션 아일랜드 리조트와 그 뒤에 있는 로마니 리조트로 가는 사람들이 내리는 선착장에 배가 선 뒤,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 머스킷코브 리조트 선착장을 찍고서 본토로 돌아가게 된다. 머스킷코브 리조트는 다른 두 개의 리조트와는 달리, 투숙객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란다. 배에서 내리니 바로 근처에 현지인 직원이 서 있다가 로마니 리조트로 가는 승객들을 따로 불러모은다. 짐가방을 끌고 걸어서 들어가기에는 다소 먼 거리라 일종의 마중을 나온 셈이다. 마치 코끼리열차를 연상케 하는 길다란 전기 트롤리에 올라타고 5분 정도를 들어가니 마침내 '로마니 리조트'라고 영문으로 적힌 간판이 나타난다. 안내 직원이 말하기를, '로마니(Lomani)'는 피지말로 '사랑'이라는 뜻이란다. '사랑의 리조트'라니, 신혼여행 오기에는 딱 맞는 이름이 아닌가.

이런 트롤리를 타고 들어간다. 이쯤에서 내 캐리어 바퀴 하나가 맛이 가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체크인 전까지 잠시 기다릴 수 있도록 되어 있는 테라스.
의자 옆에 히비스커스 꽃이 놓여 있었다. 웰컴 드링크로 제공되는 코코넛에도 꽂혀 있었다. 사실 코코넛 맛은 평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