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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20911 싱가포르

07. 토스트박스 토스트 아침식사와 포트 캐닝 공원 산책(3일차-01)

by 집너구리 2022. 11. 28.

 

싱가포르에서 맞는 세 번째 아침. 일어나자마자 창 밖을 내다봤는데 날씨가 영 꾸물하다. 아침을 먹으러 또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입고 호텔을 나선다. 오늘의 아침이 무엇이느냐 하면, 또 카야 토스트이다. 다만 이번에는 야쿤 카야 토스트가 아닌, 또 다른 토스트 체인인 '토스트박스'에서 사 먹어 보기로 했다. 두 체인의 맛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고 싶기도 했고, 궁극적으로는 나중에 기념품으로 사 갈 카야잼으로 어느 체인의 것이 더 적절할지를 알아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조사에 따르자면 야쿤의 카야 잼이 조금 더 달고, 토스트박스의 카야 잼이 조금 덜 달다고 하는데, 역시 맛을 직접 보는 편이 가장 정확하지 않겠는가. 

이번에는 호텔 입구로부터 바로 앞에 있는 지하철 출구로 진입해, 쭉 지하도를 건너 시티 스퀘어 몰 1층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우리가 맞이한 것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동남아시아 스콜이었다. 어찌나 비가 거세게 내리는지 이대로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가는 싱가포르 섬의 절반은 물에 잠길 것 같았다. 출근길에 오르던 사람들도 어느 새 귀신같이 다들 사라졌다. 비가 자주, 많이 오는 동네 사람들은 역시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야쿤은 시티스퀘어 몰 지하에 있고, 토스트박스는 1층 현관 바로 옆에 있다. 물론 어디나 아침 시간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간단한 식사를 파는 곳이다 보니 회전은 빠른 편이다. 마치 김밥천국마냥 이것저것 토스트 외에 다른 것도 파는 모양인데, 실제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토스트 외에도 국수 같은 것을 먹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카야 토스트 단품을 하나 주문하고 기다린다. 호텔 방에 어제 사다 놓은 과일이 좀 있어서, 토스트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가 과일과 토스트를 함께 먹으려는 생각이다.

오늘의 과일은 붉은색 용과. 용과는 살이 하얀 녀석보다는 붉은색인 녀석들이 더 맛있다. 어제 슈퍼에 갔더니 붉은색 용과를 커팅해서 팔고 있길래 옳다구나 하고 사 왔는데, 아니나다를까 한국에서 먹던 용과보다 훨씬 달고 맛있다. 용과는 으레 한국에서는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밍숭맹숭한 과일 취급을 받지만, 잘 익은 용과는 은은한 단맛의 여운이 길게 가는 맛있는 과일이다.

문제는 토스트이다. 봉투에서 꺼내 봤더니 뭔가 이상하다. 나는 분명히 카야 토스트를 시켰는데... 왜 여기 햄 치즈 토스트가 들어 있는 거죠...? 아무래도 주문한 뒤에 우리가 남의 토스트를 잘못 받아왔거나, 점원이 우리와 다른 사람의 주문을 헷갈렸거나. 둘 중의 하나인 듯하다. 뭐 무난하게 맛있는 햄 치즈 토스트이기는 했는데... 카야 잼 맛을 비교하고 싶어서 일부러 간 보람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셈이다. 그래도 토스트박스는 여기저기 많이 있는 체인점이니까. 돌아다니다 보면 언제든 한 번쯤은 마주할 수 있겠지.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왔더니 비가 많이 잦아들어 있었다. 여기서 동북선을 타고 이번에는 두 정거장 떨어진 도비 곳(Dhoby Ghaut) 역으로 향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이다 했는데, 예전에 무한도전 해외극한알바 특집에서 유재석과 황광희가 일하러 갔던 인도 빨래터 이름이 '도비 가트'였다. 모르긴 몰라도 이 동네도 예전에는 타밀계 인도인들의 빨래터였던 모양이다. 지금은 지하철 노선 세 개가 교차하는 싱가포르의 대표적 번화가 중 하나가 되어, 빨래터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도비 곳 역에서 나와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비가 언제 내렸느냐는 듯 다시 쨍한 햇볕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물기에 젖은 바닥에 반사되는 햇빛이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오늘 오전에 갈 곳은 '포트 캐닝 공원(Port Canning Park)'이라고 해서 예전에 요새였던 곳을 공원화한 곳인데, 그에 앞서 도비 곳 역 주위에 조성된 작은 공원 하나를 또 지난다. '도비 곳 그린(Dhoby Ghaut Green)'이라는 공원이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놀이기구 같은 것도 있고 원형극장 비스무리한 것도 있는, 그야말로 동네 공원이라는 느낌의 고즈넉한 곳이다. 여기서 페낭 로드를 건너서 포트 캐닝으로 이어지는 작은 보도 터널을 통과한다. 계단이 다소 가파르니 주의할 것.

 

지난한 계단을 타고 올라오면 바로 오른쪽에 동남아 영국 식민지 건축 느낌이 낭낭한 황토 기와에 백색 벽의 멋진 건물이 눈에 띈다. 5성급 호텔인 호텔 포트 캐닝(Hotel Fort Canning)이다. 여기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데, 구 영국 군정청사를 리모델링한 호텔이라 제법 규모가 큰 모양이다. 호텔 포트 캐닝 외에도 이곳 포트 캐닝 공원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에 세워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물들이나 시설들이 제법 많다. 야트막한 높이이기는 하지만 싱가포르의 관문이나 다름없는 싱가포르 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으니 좋은 전망은 들째 치고서라도 전략적으로 퍽 중요했던 지점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곳은 서양 세력이 들어오기 한참 전인 14세기 무렵부터 이미 말레이계 지배층이 거주했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좌)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몬스테라 델리시오사, (우) 거의 아내의 손목만한 굵기의 잎자루를 자랑하는 타우마토필룸 비핀나티피둠(셀렘).
먹을 수 없는 열대 고사리입니다.

싱가포르의 개척자로 익히 알려져 있는 토머스 래플스 경은 이곳 포트 캐닝에 거처를 두고 머물렀다. 래플즈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그 집까지는 이번에 가 보지 못했다. 그러나 래플스는 포트 캐닝에서 도시를 구상하는 동안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해 본 모양인데, 그 중에 하나가 포트 캐닝의 동쪽 권역을 식물원화하는 것이었다. 지금에야 그 때의 식물원 터는 완전히 도시화되어 있지만, 굳이 식물원을 힘써 조성할 것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사람 키를 한참 넘어갈 만큼 무시무시하게 자라난 식물들이 가득가득하니까.

 

우리는 아직 어제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도는 호텔 포트 캐닝 쪽 길이 아닌 시가지 쪽으로 가는 짧은 길로 공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호텔 포트 캐닝의 반대편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아세안(ASEAN) 국가들의 조각을 전시해 둔 곳이 나오고, 조금 더 걸어 나가면 갑자기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고딕 문'(The Gothic Gate)
싱가포르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Singapore)

깔끔한 흰색으로 채워진 고딕 양식의 문이 눈앞에 나타나고, 그 옆으로는 제법 현대적인 느낌의 국립박물관 건물이 나타난다. 사실 저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것은 국립박물관의 뒷편이고, 국립박물관 본관 자체는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제법 고풍스러운 건물이라는 모양이다. 확실히 싱가포르 초기 개발 시에 중심지였던 권역인 만큼 여기저기에 있는 건물들이 하나같이 고풍스럽기는 하다. 흰색의 고딕 양식 문은 정말로 이름이 '고딕 문'이라고 하는데, 싱가포르에서 가장 처음으로 세워진 고딕 양식의 문이라 다들 '고딕 문'이라고 대강 불렀던 이름이 굳어진 거란다. 아치문 위에는 십자가와 함께 'IHS'라는 글씨 세 글자가 적혀 있는데, 그리스어로 '예수'라고 적을 때의 첫 세 글자를 따서 이렇게 적어 놓은 것이다. 

 

벽 공동묘지(The Cemetery Walls). 포트 캐닝 센터를 둘러싸고 양 옆으로 늘어서 있다.
포트 캐닝 센터(Fort Canning Center).

이 '고딕 문'이 어디로 이어지는 건가 했는데, 갑자기 거대한 식민지식 건축물 하나가 눈앞에 빰 하고 나타난다. 뭔가 무대 설비 같은 것이 설치되고 있는 이곳이 포트 캐닝 센터라고 하는 문화공간인 모양이다. 사실 그보다도 더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고딕 문 바로 옆으로 나 있는 적벽돌 벽이다. 사람 이름과 내력이 적혀 있는 석판이 늘어서 있는 이곳은 '벽 공동묘지'라는 곳이다. 예전에 포트 캐닝의 동쪽 언덕에는 기독교인 공동묘지가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곳을 정비하면서 여기 묻혀 있던 유해들을 모아 벽에 안장한 것이라고 한다. 나중에는 부킷 티마 쪽에 있던 공동묘지도 재개발되면서 그곳에 있던 기독교도 무덤까지도 옮겨 이 벽 공동묘지에 안장했다고. 싱가포르 식민지 초기에 다양한 신고전 양식의 건축물들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아일랜드 출신의 건축과 조지 콜먼을 비롯해, 싱가포르 최초의 인공교배종 난초이자 싱가포르의 국화인 반다 미스 조아킴을 만들어낸 아르메니아계 정원사 아그네스 조아킴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이 벽은 포트 캐닝 센터의 양 옆으로 한 줄씩 길게 나 있는데, 하나하나 평지에 묻고 묘비석을 세우는 공동묘지 형태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모습이다. 벽 아래에 사람을 묻었다는 것 자체가 아무래도 동북아 문화권에서 온 사람에게는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나 싶은 것이다. 기실 따지고 보면 흙무지로 덮으나 벽으로 덮으나 매한가지일 텐데 말이다. 포트 캐닝 센터 마당을 가로질러 남쪽 벽 공동묘지를 지나는데, 바로 그 옆에서 웬 커플이 웨딩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거야말로 한국인의 정서에서는 신기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다. 남의 무덤 앞에서 웨딩 사진을...찍어...? 무덤인 줄은... 아시는 거 맞죠...?

 

아무튼 간에 여러모로 충격과 공포였던 벽 공동묘지 권역을 벗어나면, 여기서부터는 보다 본격적으로 조성된 정원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느긋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걸으면서 뭐가 있는지 둘러보는 정도로 구경하기로 했다. 어제 너무 많이 걸은 탓에 (주로 아내의) 발이 아직 채 풀리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래는 그 때 찍은 사진들이다.

인도네시아 월계수나무에 난초가 착생해 자라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지피식물도 싱그러운 색을 뽐낸다.
제 세상을 만난 몬스테라 델리시오사.
장인의 정원(Artisan's Garden). 안쪽의 건물에서는 포트 캐닝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호주 신혼여행에서도 만났던 보랏빛 꽃을 여기서도 만났다.
워터 코인(Hydrocotyle vulgaris)과 디오스코레아(Dioscorea)속의 식물들.
무늬 생강. 생강 주제에 이렇게 예쁘기 있나.
향신료 정원에서 만난 독특한 모양새의 꽃들. 
향신료 정원(Spice garden). 통로를 따라서 심어진 식물들이 거의 모두 향신료다. 익숙한 바질, 로즈마리, 박하, 고수 등등도 구경할 수 있다.
제법 커다랗게 자라난 나무들도 많이 있다. 왼쪽 아래와 오른쪽 구석에 있는 이파리가 처진 나무가 카카오나무이다.
엄청난 크기로 자라난 여인초(Ravenala madagascariensis)

이 외에도 포트 캐닝 공원에는 싱가포르의 마지막 현지세력 왕이었던 술탄 이스칸다르 샤의 무덤이라든지, 등대라든지, 래플스 경의 관저였던 래플스 하우스 등등 둘러볼 곳이 많다고 하지만, 우리는 일단 여기에서 만족하고 공원을 떠나기로 한다. 비에 젖어 싱그럽게 빛나는 나뭇잎들을 스치며 언덕을 내려간다. 늘여름의 도시임을 잊지 말라고 주장하기라도 하고 싶은 듯 어딜 가도 꽃이 피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아르메니아 거리로 내려가는 길.

이 동네에 의외로 숨어 있는 재미있는 곳들이 많다. 도심에서 살짝 떨어져 있지만 역사적 의미는 충분한 동네라서 그런가. 이를테면 이 결혼 증명서 발급소 같은 곳이다. '시민 및 무슬림'이라는 말을 굳이 따로 표기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무슬림의 혼인신고는 비무슬림 시민들의 혼인신고와는 다소 형태가 다른 모양이다. 참고로 '시민(Civil)'이라는 말에서 다소간의 오해가 빚어질 수도 있겠으나, 싱가포르는 동성 파트너의 법적 지위 및 권리를 낮은 단계에서 보장하는 이른바 '시민결합(Civil partnership)'을 인정하는 나라는 아니다. 당장 동성애 자체를 올 8월까지 금지하던 나라니까. 아마도 '비무슬림 간의 결혼'을 가리키기 위해 일부러 '시민'이라는 표현을 쓴 듯하다. 젊은이들이 앞에 우글우글 몰려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오늘 누가 혼인 등록을 하러 온 모양이다.

다음으로 골목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은 싱가포르 국가기록원(National Archives of Singapore)이다. 처음에는 제법 고풍스러운 느낌을 내는 건물이라고 생각하게 하다가,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면 아주 현대적인 모양새의 새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옛 것과 새 것을 조화롭게 이어서 하나의 기능을 하는 건물로 구성하다니 그야말로 '국가기록원'에 걸맞는 모습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화려하고 아기자기하게 칠해진 페라나칸 스타일의 건물이 하나 나타나는데, '싱가포르 어린이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다만 지금은 수리 중이라 아직 개관하지 않았다고.

포트 캐닝 다음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목적지는 싱가포르 아르메니아 성당(Singapore Armenian Church)이다. 한때 싱가포르에서 나름대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아르메니아계 이주민들에 의해 세워진 싱가포르 최고(最古)의 기독교 건축물이라고 해서 모처럼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구경해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싱가포르 아르메니아 성당의 후면 전경(왼쪽). 개방감이 있는 성당 건물과 그 옆의 방갈로 형태를 한 사제관의 조화가 아름답다.

아르메니아 성당에서 바로 길 하나만 건너면 있는 이 흰빛과 푸른빛으로 장식된 건물이 묘하게 눈길을 끈다. 잘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컴퍼스와 삼각대로 이루어진 문양이 벽을 빙 둘러 장식되어 있다. 그렇다. 프리메이슨이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 공동체 바로 옆에다가 이렇게 커다랗게 건물을 짓고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 상당히 이채로운 광경으로 다가왔다. 심지어는 이 안에서 식당도 운영하는 듯, 현관 앞에 웬 식당 메뉴판도 걸어 놨다. 역시 싱가포르는 일견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간간이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묘한 매력이 있다. 기껏해야 셋째 날이지만.

싱가포르 프리메이슨 센터 건물. 바로 앞에 웬 식당 메뉴판도 있다.

* 이 글은 [세계 성당 방문기] #7로 이어집니다.

https://sankanisuiso.tistory.com/177

 

[세계 성당 방문기] 07. 싱가포르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 그레고리오 계몽자 성당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 그레고리오 계몽자 성당 Armenian Apostolic Church of St Gregory the Illuminator 등급 공소 소재지 싱가포르 공화국 힐 가 60번지 (60 Hill Street, Singapore) 관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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